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4년(2014) 4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청계탑 대원종 돋보기 지명소개(상제님 편) 고사 한마디 일각문 『典經』용어 만화 28수(宿) 신명 특별기획 대순광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 대순문예 상생의 길 민간신앙 퀴즈 및 퀴즈 정답자 알립니다

지명소개(상제님 편) : 금구(金溝)

상제님·도주님·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
 
금구(金溝)
 
글  종단역사연구팀
 
 
 
 
금구(金溝)
 
◎ 해당 『전경』 구절
 
  상제께서 갑오(甲午)년에 정 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永學)과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심이 비범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높았도다. 글방은 처남의 집이고 금구군 초처면 내주동(金構郡草處面內住洞)에 있었도다. (행록 1장 20절)
 
 
  이 해에 고부인(古阜人) 전 봉준(全琫準)이 동학도를 모아 의병을 일으켜 시정(時政)에 반항하니 세상이 흉동되는지라. 이때에 금구인 김 형렬(金亨烈)이 상제의 성예를 듣고 찾아뵌 후 당시의 소란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 가서 함께 글 읽으시기를 청하므로 글방을 폐지하고 전주군 우림면 동곡(全州郡雨林面銅谷) 뒷산에 있는 학선암(學仙庵)으로 가셨으나 그 곳도 번잡하기에 다른 곳으로 떠나셨던 바 그 곳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도다. (행록 1장 21절)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 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하략) (행록 2장 2절)
 
 
  금구 수류면 평목점(金溝水流面坪木店)에서 정 괴산(丁槐山)이라는 자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하더니 상제께서 어느날 우연히 주막에 들렀을 때 괴산이 상제께 올리려고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다가 질솥이 깨어지므로 그의 아내가 낙담하여 울고 섰거늘 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셔서 쇠솥 하나를 갖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그의 가세가 날로 늘어났도다…(하략) (행록 3장 19절)
 
 
  상제께서 임인년 가을 어느날에 김 형렬에게 “풀을 한 곳에 쌓고 쇠꼬리 한개를 금구군 용암리(金溝郡龍岩里)에서 구하여 오게 하고 또 술을 사오고 그 쌓아놓은 풀에 불을 지피고 거기에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내라” 고 이르시고 다시 형렬에게 “태양을 보라”고 말씀하시니라. (공사 1장 8절)
 
 
  상제께서 임인년 四월에 정 남기를 따르게 하시고 금구군 수류면 원평에 있는 김 성보(金聖甫)의 집에 가셔서 종도들과 함께 지내셨도다. 이 때 김 형렬과 김 보경이 찾아왔도다.…(하략) (교운 1장 6절)
 
 
  공우는 종도들이 모두 상투를 틀고 있는데 자신이 삭발하였기에 그들과 싸이기 어려우므로 불안하게 생각한 나머지 머리를 길러 솔잎 상투에 갓 망건을 쓰고 다니다가 금구(金溝)를 지나던 어느날 일진회의 전 동지 십여 명을 만나 그들의 조소를 받고 머리를 깎여 두어 달 동안 바깥 출입을 금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는 중이었도다.…(하략) (교법 2장 10절)
 
▲ 금구현(출처: 『해동지도』, 서울대학교규장각, p.53)
 
 
◎ 지명 유래와 변천사: 백제시대의 구지산현(仇知山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의 경덕왕16년 (757년)때 전주 금구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주의 속현(屬縣)으로 삼았다. 고려, 조선 시대에도 경덕왕 때의 이름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선시대의 금구면·황산면·봉남면·금산면 일대는 옛 금구현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여 전주부(全州府)에 예속되었다가 1896년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군, 면 폐합에 의하여 금구군은 폐지되고 김제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형태의 김제시 금구면이 되었다. 인구의 67%가 농업에 종사하며, 특히 임야의 절반 이상이 동남부의 금산면. 금구면에 치우쳐 있고, 기타 지역은 대부분 만경강, 동진강, 원평천 유역의 충적지에 속하여 호남평야를 이루는 전형적인 논농사 지역이다.
 
▲ 김제시 행정구역 및 옛 금구군 지역(사진: 위키백과)
 
 
◎ 문화유산 : 구한말 항일운동가인 장태수 선생을 모신 사당을 비롯한 수많은 충신, 효자, 열녀를 배출한 충효의 고장이며 금구산성,01 남강정사,02 금구향교 대성전 등 수많은 유산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 『전경』 관련 내용 : 금구는 상제님의 처가가 있는 곳으로 처남 정 남기(鄭南基)의 집에서 글방을 차리시고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셨다. 또한 금구에 사는 박공우 종도에게 이곳을 지나시면서 마음을 일깨워 주신 곳이다.
 
 

[참고문헌]
『전경』 
《대순회보》
『한국지명총람 11』(전북 편 上)
『두산동아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금구면 홈페이지: http://geumgu.gimje.go.kr/index.sko
 

01 금구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85호로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동편 해발 130m로 동남으로는 모악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위치에 있다.
02 구한말 충신 장태수(1841∼1910) 선생이 순국한 집.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