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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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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 말은 마음의 외침

말은 마음의 외침
 
 
글  교무부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정보를 전달하는 객관적인 체계다. 이것이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말로 인한 오해가 생기고, 말로 생사(生死)를 가르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는 일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가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이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하던 말이 실제로 어떤 사실을 가져오는 결과가 됨을 비유한 것이다. 한 예로, 삼인성호(三人成虎)의 고사는 말에 따라 상대방의 생각이 미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시대에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번화한 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을 생각해본 적 없었고, 심지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옆에서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라는 말을 했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지 않은 호랑이를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01 
  이런 경우는 비단 먼 옛날뿐만 아니라 근래에도 드문 일은 아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당시인 게티즈버그(Gettysburg)에서 행한 전사 장병 추도식 연설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구절로 유명하다. 링컨은 3분에 불과한 이 연설로 북부 진영의 단합을 끌어내고 남북통일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말은 그 속에 정보와 더불어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그리고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이 갖는 힘에 대해 너무 쉽게 여기는 것 같다. 간혹 어떠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을 때 스스로 한계를 결정짓는 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뇌에 지속적으로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망했다.’는 암시를 주는데 과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과 같을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뻔하다.
  이와 같이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말에 따라 우리의 심리는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사람이 말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말에 의해 통제된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사람은 사실과 관계없이, 언어가 주는 암시나 감정에 따라 사고의 판단력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말이 서로(너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를 관조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 등등의 말에 관한 태도와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교법 1장 11절)라고 하셨다. 우선 말은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인이고, 그 사람의 모든 언행은 마음의 표현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이라는 것은 양심(良心: 천성 그대로의 본심)과 사심(私心: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 있다.02 두 가지 마음 중에 어떤 마음으로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개인의 선악(善惡)은 곧 말에 의해서 남에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선(善)하게 한다는 것은 양심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양심은 인성의 본질로서 정직과 진실이다.03 정직은 사람의 성품이 바르고 곧음을 말하는 것이고, 진실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직과 진실이 없이 남을 잘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순하게 말 그 자체를 선(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직과 진실이 담겨있는 말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한 말속에서 남을 잘되게 하는 강한 힘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또 양심에 따라 정직과 진실을 말하여 상대방이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듣는 이는 과부족(過不足)을 살피고, 사심을 경계하여 일신(日新)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어떤 일을 묻는 자에게 그 사람이 듣고 실행하느냐에 상관하지 말고 바른 대로 일러 주라.”(교법 1장 59절)고 하셨으니 양심에 따른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양심을 숨기고 사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도리(道理)에 어긋난 언동(言動)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04 그렇게 되면 사심에 따라 거짓을 유포하게 되고, 상대가 그 말을 사실로 믿도록 조장(助長)하게 된다. 말의 힘이 이렇게 쓰이면 비극이다. 사심으로 눈앞의 이익은 얻을 수 있지만 꾸며진 말로 인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冤)을 맺게 하고, 심신의 상해(傷害)를 입히게 한다. 더 큰 문제는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 기운이 막힌다.(공사 3장 29절)”라는 사실이다. 결국, 사심으로 말한 것은 마음을 속이는 것이고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므로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이처럼 말은 마음의 외침으로 그것을 상대가 듣고 믿는 것이다. 그 마음의 소리는 여음(餘音)이 밀려서 다시 화(禍)와 복(福)으로 말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전경』에 “좋은 꽃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꽃은 나쁜 열매를 맺는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행록 5장 38절)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의 수도는 남을 잘되게 하는 일이다. 상생(相生)의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하면 말의 씨가 좋아야 한다. 말에 증오와 억지를 담으면 세상은 증오와 억지가 넘치고, 말에 사랑과 이해를 실으면 세상이 곧 사랑과 이해로 넘칠 것이다. 곧 이 마음의 소리인 말은 인과(因果)가 자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 “서로가 언덕(言德)에 힘쓸지어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되생각하고 말하라.”05라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01 위(魏)나라 혜왕(惠王) 때 그의 충신인 방총(龐蔥)이 조(趙)나라에 볼모로 가게 된다. 방총은 떠나기 전에 왕에게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거짓된 정보를 비유하여 간신들의 거짓된 말을 믿지 말라고 충언했다. 하지만 왕은 여러 간신의 비방을 진실로 믿고 방총을 의심하게 된다. 결국 방총은 의심을 받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72호, 고사 한마디, p.68 참조.
02 『대순진리회요람』, p.18.
03 『대순진리회요람』, p.18.
04 『대순진리회요람』, p.18.
05 『대순지침』,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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