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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2년(2012)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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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 일신수습 중천금 一身收拾 重千金 경각안위 재처심 頃刻安危 在處心

일신수습 중천금    경각안위 재처심

一身收拾 重千金    頃刻安危 在處心

 

글 교무부

 

  이 시의 뜻은 ‘한 몸을 수습하는 것이 천금보다 중요하지만, 순간의 안위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01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수도인은 물론이요, 자아의 본질을 망각하기 쉬운 현대인이라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경구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일신수습중천금’이란 인생에 있어서 나 자신의 한 몸을 거두어 살피는 일이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말이다. ‘나의 일신’을 살피는 것은 나 자신에게 주어진 본질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소임이기 때문이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김형렬에게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 만일 애석히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면 따라서 몸마저 망하게 되리니 잘 깨달아라.”02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 구절에서 볼 때 망하려는 세간살이보다 제 한 몸을 잘 건사하는 것이 진실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내 몸이 망하고서 천만금이 있은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현대인들은 일신을 수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되찾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 그 원인은 그들의 감각기관이 외부의 물질세계가 자극하는 끊임없는 욕망을 향해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에 이끌리는 인간은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흔히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어릴 적 읽던 배 터진 개구리의 우화가 주는 교훈이다. 아기 개구리가 본 황소 이야기를 듣고 어미 개구리가 자신의 배를 불려 황소 크기만 하게 흉내를 내다가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다. 이 어미 개구리는 큰 몸집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자신보다 수백 배나 큰 황소 이야기를 참지 못하고 헛된 욕심을 부리다가 배가 터져 죽게 되었다. 왜 우리 인간이 당치 않은 허욕에 정신과 마음을 팔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우화다.

  인간이 욕망의 길을 추구하다 보면 탈이 나는 법이다. 인간의 욕망에는 중용이 없고 배려가 없으므로 욕망을 추구하는 자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다. 이로 인해 타인과 척을 맺고 신명(神明)에게 척을 맺게 된다. 남을 억울하게 하고 원통하게 한 그 원척(冤㥻)이 쌓이면 결국 다시 본인에게 돌아와 터지는데 그것이 사건, 사고이고 질병이라 할 수 있다.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에 이것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인간이 제 살길을 도모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이익에 사로잡혀 죽음을 재촉하고 있는 그림이다.03 이 그림은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그림 속의 인물이 달콤함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코끼리를 피해 밧줄을 타고 벼랑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리라. 몹시 위태로운 환경속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살 길을 도모하지 않고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그릇된 마음가짐이다. 진실로 현대인의 삶이 이 그림과 흡사하다.

 

 

 

  이처럼 내 한 몸을 수습하는 길은 재리(財利)나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간직하는 데 있다. 몸은 마음의 표현이니 일신의 안위가 마음가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일신의 주(主)로서 만기(萬機)를 통솔 이용한다. 그러므로 인사(人事)의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일신을 수습하는 길은 안신(安身)에 있고 순간의 안위를 좌우하는 마음을 올바르게 간직하는 길은 안심(安心)에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나오는 안신에 대한 정의는 “마음의 현상(現象)을 나타내는 것은 몸이니 모든 행동(行動)을 법례(法禮)에 합당케 하며 도리(道理)에 알맞게 하고 의리(義理)와 예법(禮法)에 맞지 않는 허영(虛榮)에 함부로 행동(行動)하지 말아야 한다.”04이다. 이처럼 내 한 몸 올바르게 건사하는 데서 예법과 도리를 법례에 맞게 합당하게 지켜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 한 몸이 예법과 도리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신의 주인인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 나 자신의 순간의 안위가 마음가짐에 달렸으니, 내가 간직해야 할 마음은 부나 명예의 추구에 있지 않고 오직 안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편벽되거나 사사로움이 없이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으로 돌아가서 허무한 남의 꾀임이나 헛된 욕심에 정신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항상 마음을 안정케 하는 것이다.05 결론적으로 나의 안위가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인데 이를 위한 수행의 이율령(二律令)은 안심·안신이다.

  상제님께서는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06라고 진단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큰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지 못하고, 작고 가까운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어 한 치 앞에 있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못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  다.

  이 혼란한 시대에 내 한 몸을 잘 건사하는 것이 천금을 희롱하는 것보다 진실로 중요하다. 그러나 내 몸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이므로 순간의 위태로움과 안전함이 다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인들은 수행의 훈전인 안심·안신이 대병지약(大病之藥)이며 자신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임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01 교법 3장 47절.

02 교법 1장 8절.

03 안수정등(岸樹井藤):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비유로 안수정등이란 절벽의 나무[岸樹]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井藤]이라는 뜻이다. 이 벽화는 인생을 불교적인 교리로 해석한 것으로 코끼리에게 쫒긴 사나이가 마침 절벽 아래 우물에 드리워진 넝쿨에 매달려 있고, 아래에는 독룡과 4마리의 독사가 있으며, 넝쿨은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갉아 먹고 있는데, 벌집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벌꿀을 사나이가 혀로 받아먹고 있는 장면이다. 『아함경』에서는 이 그림을 해석하여 한 사람은 고해에 빠진 중생의 고독한 모습, 코끼리는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殺鬼),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 4마리의 뱀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을 상징하고, 등나무는 중생의 어리석은 무명, 덩굴은 생명줄,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교차하는 세월, 꿀은 오욕락으로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04 『대순진리회요람』, p.15 참조.

05 상동.

06 교법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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