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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코너 : 상생(相生)은 작은 온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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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은 작은 온정에서…

 

 

오천3 방면 보정 김영진

 

현대를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휴대하고 자가용을 타며 집집마다 가스나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등 과학문명의 이기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 저편에서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그것도 힘들어 난방도 되지 않는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2011년 현재 쌀이 남아돈다고 합니다만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 점점 심해지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기부문화가 많이 정착되어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자선의 온정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특히 연말연시가 되면 연중행사처럼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어김없이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사랑의 열매달기 운동이 요란하게 벌어집니다.
  그런데 자선의 순수하고 고귀한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속담처럼 불우한 이웃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구만을 충족시킨 사례들이 매스컴에 종종 오르내립니다. 얼마 전 아이티 지진 때 97억의 모금액 중 6억 원만을 구호성금으로 보낸 모 단체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또 워크숍이라는 미명하에 취미생활에 성금을 유용한 ○○모금회가 그 사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금으로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따뜻한 집에서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잘 살지만 정작 그 돈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심하면 싸늘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발각되면 당사자야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겠지만 겨울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과 죽음에 맞서 싸워야 하는 불우한 이웃들을 생각하면 상생을 실천하는 수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픈 마음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우리 대순진리회에서도 3대 중요사업 중의 하나인 구호자선사업(救護慈善事業)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의 사례와 같은 사회 부조리는 우리 도(道)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도는 신도(神道)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신은 인간사의 모든 일을 샅샅이 살피고 있어서 사람이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신을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도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입니다. 신을 속여 사회의 부조리에 동참하면 그 동안의 수도는 물거품이 되어 궁극적 목적인 도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도인들은 신을 속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인들은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이타심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일이 곧 자신을 잘 되게 하는 일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남을 잘 되게 함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基本原理)요 구제창생(救濟蒼生)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라. 남을 위해서는 수고(手苦)를 아끼지 말고, 성사(成事)에는 타인(他人)과의 힘을 합(合)하여야 된다는 정신(精神)을 가져 협동생활(協同生活)에 일치(一致) 협력(協力)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상생의 대도를 펼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이며 천하 창생을 구제하기 위한 근본적인 이념이라는 말입니다. 남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함과 안녕을 생각하기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과 협력하여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 하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배려의 실천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도인들 중에도 사회의 소외계층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냉방에서 잠을 자지는 않더라도 끼니가 여의치 않아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는 도인은 있지 않은지 먼저 우리 주변부터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 생각이 기우(杞憂)01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선각은 후각을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차이를 관찰한 독일의 사례가 있어서 먼저 소개를 할까 합니다.

 

 

  1948년 엘지 위도슨(Elsie Widdowson)이라는 과학자는 두 군데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각 시설은 4~14세의 아이들을 약 50명씩 양육하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에 영양실조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 키나 몸무게가 제 나이의 평균 수준보다 훨씬 못 미쳤다. 고아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전쟁 기간 동안 아이들이 겪은 끔찍한 식생활에 비하여 나은 것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양 요구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위도슨과 동료들은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식사가 조금이나마 향상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고 싶었다. 고아들의 키와 몸무게가 또래 아이들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뒤처질까? 그리하여 두 고아원 중 하나인 비에넨하우스(Bienenhaus)에 6개월 동안 빵과 잼과 오렌지 주스를 추가로 지원해 주었다. 한편 대조 집단의 역할을 맡은 다른 한 고아원인 보겔네스트(Vogelnest)에는 식품을 추가로 지원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를 보고 연구 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가 식품지원을 받지 않았던 보겔네스트의 아이들은 잘 자란 반면 상당량의 추가 식품을 지원받았던 비에넨하우스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6개월 동안 연구자들은 조건을 반대로 해 보았다. 비에넨하우스는 다시 표준 식사량으로 되돌리고 대신 이번에는 보겔네스트가 식품을 추가로 할당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연구자들을 또 한 번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더 이상 추가 식품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 비에넨하우스의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 반면 보겔네스트의 아이들의 성장은 점차로 둔화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추가 식품이 아이들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결과이다. 그래서 위도슨은 고아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위도슨은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이 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원장인 슈바르츠였다.
  연구를 시작했던 1948년에 슈바르츠는 비에넨하우스의 운영을 맡고 있었다. 엄격하고 강압적인 이 여인은 강철 같은 의지와 불같은 성미를 가지고 어린이들을 다스렸다. 어느 날은 아이가 장갑을 꼈다고 호되게 야단을 치고 그 다음날은 그 아이가 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혼을 내는 식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제심을 길러 준다는 명목으로 식탁 앞에 놓인 음식이 차갑게 식도록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도록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원장이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공포 속에서 살았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운 좋게 추가 식품을 지원받게 되었으나, 그것은 슈바르츠의 차가운 횡포가 아이들의 성장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반면 보겔네스트는 밝고 따사로운 성품을 지닌 그룬이라는 원장의 손에 운영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아이들 역시 원장을 사랑했다. 보겔네스트의 아이들은 추가 식품 없이도 원장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그룬이 다른 고아원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녀를 대신해서 보겔네스트로 발령을 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슈바르츠였던 것이다. 우연하게도 원장이 바뀐 시점은 비에넨하우스의 추가식품 지원이 중단되고 대신 보겔네스트에 식품을 지급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했다.
  슈바르츠의 후임으로 지에넨하우스의 원장을 맡은 사람은 바이스(Weiss)라는 여성이었다. 그녀의 성품은 많은 면에서 그룬과 비슷해서 곧 고아원 아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비에넨하우스는 추가 식품의 지원이 중단되었지만 아이들은 바이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으며 잘 자라기 시작했다. 한편 보겔네스트의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슈바르츠를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슈바르츠는 비에넨하우스에 있을 때 나름대로 몇 명의 아이들을 특별히 귀여워했다. 그녀는 이 여덟 명의 아이에게만 칭찬과 편애를 듬뿍 쏟았다. 슈바르츠가 비에넨하우스를 떠나 보겔네스트로 옮길 때 이 아이들을 같이 데려갔다. 이 아이들은 보통 차갑고 무관심한 슈바르츠의 칭찬과 관심을 독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1년 동안이나 추가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처음 6개월은 비에넨하우스에서 그 다음 6개월은 보겔네스트에서). 그 결과 성장 속도를 측정했을 때 이 여덟 명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하게 키가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02
  작은 애정과 보살핌으로 위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두 고아원이 각각 50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사랑과 애정은 무척이나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따뜻하고 애정 어린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작은 사랑은 값비싼 추가 식품보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데 훨씬 더 큰 효과를 보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은 보살핌의 힘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가한 강압이나 학대가 충분한 음식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짓밟아 버리는 것을 보면 억압이나 공포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03
  자모지정(慈母之情)이란 어머니께서 어린 아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면서 행여 다칠세라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키운다는 뜻입니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심하게 아파서 신음하고 짜증까지 부리던 저를 위해 밤을 꼬박 세워가면서 위로하고 간호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고달픔보다는 어린 자식이 아파하는 모습이 더 안쓰럽고 힘드셨을 것입니다. 이런 어머님의 모습이 후각을 대하고 도(道)를 가르치는 선각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후각을 아들처럼 보살펴야 하는 것이 선각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추운 겨울에는 없는 사람이 살기가 더더욱 어렵다고들 합니다. 수도인이라면 전혀 모르는 불우한 이웃도 돌봐야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자신의 선ㆍ후각과 연운으로 연결되어 있는 도인들을 더욱더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꼭 도통(道通)을 받겠다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뭉친 사람들입니다. 이런 소중하고 고귀한 사람들끼리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면서 상생(相生)을 실천해 간다면 아무리 혹독한 추운 겨울이 닥쳐온다 해도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상생의 온기로 거뜬히 이겨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1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

02 셜리 테일러/ 임지원 역, 『보살핌』, 사이언스 북스, 2008, pp.18~20.

03 같은 책, p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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