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29년(1999) 3월

이전호 다음호

 

회보 1면 대순지침 상제님의 일대기 청계탑 고사 한마디 대순사상과 21세기(I) 대순칼럼 수기 28수 신명의 생애 종단소식 논단 지명 이야기 금강산 이야기 전경속 역사인물 알립니다

대순사상과 21세기(I) : 大巡思想과 21세기(Ⅰ)

大巡思想과 21세기(Ⅰ)

 

 

 백경갑<대진대학교ㆍ전자공학과 교수>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과학관에 견주어보면,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이 과거 어느 시기보다 강하게 대두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환원주의적 과학 프로그램에 대한 반항이 거세게 제기되었고, 각 분야별로 나름대로의 국소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분산적이고 민주적이며 심지어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과학 질서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과학의 내용면에서도 복합 체계와 생명 현상에 관한 분야가 부각되었고, 생물학,수학, 물리학, 화학, 전산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상호 포괄하는 학제간의 연구가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띠기도 했다.

  이외에도 날로 거대해지는 과학기술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거대 과학기술 체계를 거부하고 적정 기술을 옹호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늘 문제되어 왔던 환경문제도 이제는 단순히 산림과 자연경관을 보존하는 수준의 환경보전운동을 넘어서, 공장의 작업 현장에 나타나는 직업병 문제를 다루는 도시/산업 환경주의라는 새로운 환경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급기야 DDT를 비롯한 살충제를 남용한 결과로 인한 환경 문제가 도시와 농촌을 포괄하는 전 생태계로 문제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환경 문제들이 점차 심화됨에 따라 과학적 사고(思考)에서도 철옹성 같았던 기계적인 철학관이 다소 약화되기 시작했고, 이를 틈타 생태주의적이고 유기적인 과학관까지 부활되는 추세에 있다. 또한 생명현상에 대한 분자적 수준의 조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윤리 문제가 커다란 현안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분자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생물학이 등장하여 우생학과 관련된 논쟁이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또한, 탈 경계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세계관 역시 차츰 하나의 정보망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많은 영역들을 갈라놓았던 경계들은 점점 낮아지거나 희미해져 지금은 그 의미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국가, 조직 내의 여러 부서, 학문 분과, 예술의 장르, 매체, 학교와 현장, 가르침과 배움, 생산과 소비, 일과 놀이와 학습, 조직의 위와 아래, 직장(공적영역)과 가정(사적 영역) 등 그 동안 분리되어 있던 영역들이 이제는 자유롭게 트이고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 시너지(synergy),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미디어 융합(media fusion), 생산-소비자(prosumer), 정보유희(infotainment), 재택근무 등의 개념도 그러한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다가올 21세기는 우리에게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아울러 생명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가치관과 윤리 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정보화 시대인 21세기에 적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민첩하게 수용하고 기능적으로 잘 다루느냐 만의 차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보를 얼마나 적절하게 생산하고 유통하여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보화라는 것에 대한 추구는 과학기술과 문화를 하나로 묶어 얼마나 잘 융합하느냐에 관건이 있다 할 것이다.

  정보 그 본질은 기계 외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사회의 정보화의 성패 여부는 그 문화의 성숙도에 좌우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정보기기에 아무리 익숙한 신세대라 할지라도 정보화의 급격한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이 구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의 전철을 단번에 벗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구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지식들이 「하나의 이치」, 「하나의 묶음」으로 일관(一貫)되어 있는가? 서양의 지식과 동양의 지식이 일관되어 있는가? 우주-태양계-지구-생명-자연-사람-가치-과학-환경-기술-의학-교육-예술-종교가 하나의 이치로 일관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실제로 하나의 이치로 일관하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만약 그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이치는 무엇이어야 할까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이제 그 하나의 이치에서, 그 하나를 「자연」으로, 그 이치를 「자연의 이치」, 다시 말해서 「자연의 이치」는 「생명의 이치」라고 생각해 보자.

  무한한 우주는 하나로서 자연이며 생명이다. 자연은 보이지 않는 하나의 생명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은 합쳐서 하나의 살아 숨쉬는 우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이는 자연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이 말 그대로 「자연과학」이 되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이 발현하는 것이므로 자연과학은 동시에 「생명과학」이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지식은 모두 생명을 연구하는 것이다. 바람과 물과 돌을 연구하는 것도 생명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대립관계가 아니다. 생명의 발현인 자연 중에서 가장 정묘한 현상의 산물이 사람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인 우주는 모든 생명체와 공명한다. 그 공명하는 정도는 비슷하게 생긴 생명체간에 크고 다른 종 사이에서보다 같은 종 사이에서 더욱 크다. 따라서 같은 종 사이에서 생식이 이루어지고 그 종의 생명이 이어진다. 같은 종 안에서도 혈연관계 사이에서 더욱 크게 작용한다. 좁게 보면 쌍둥이 사이,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등이고, 넓게 보면 혈연의 확대 집단인 하나의 민족구성원 사이에서 또한 크게 작용한다. 그 다음에는 문화가 같은 집단에서 크고, 또 같이 살아온 기간이 길수록 크다고 할 것이다. 이는 몸의 생김새, 언어,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과 생활하는 방식이 비슷하거나 같을수록 생명이 발현되는 방식이 같아지므로, 생명의 공명이 더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얕은 사람은 몸매와 얼굴이 균형을 이루어 육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총명하다 해도 이미 마음이 병든 사람이니, 그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고 몸의 일부에 병이 있는 사람에 비해 더욱 험난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도 이미 사람됨을 포기한 것이니, 그는 반드시 그 재능으로 남의 생명을 해치고 자신의 생명도 잃게 될 수도 있다. TV수상기를 보더라도 모양과 부품이 좋다 해도 전파를 수신하는 기능이 나쁘면 화면이 선명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부품으로 되어 있어도 전파를 수신하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TV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21세기를 앞두고 국내외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생명윤리, 유기적 세계관, 정보화사회, 신과학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세계관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