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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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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단주(丹朱)의 꿈

단주(丹朱)의 꿈
 
 

연산 방면 정무 탁지현

 
 
 
《 일러두기 》
 이글은 어디까지나 개연성과 가능성에 근거한 소설로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전경(典經)』 (공사 3장 4절/ 6절)에 나타나는 내용에 입각하여 이야기의 틀을 구성하였고, 사료는 『서경』과 사마천의 『사기』를 위주로 하고 소설 『대동이』 등을 부수적으로 참고하여 사실적인 부분들을 서술하였습니다. 아울러 ‘요임금의 꿈’ 편에 나타나는 이서구(李書九)와 『채지가』의 등장은 작자의 허구적 상상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 1. 붕(崩) - 소상강에 내리는 비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공사 3장 4절)
 
  서녘 노을이 유난스레 붉었다. 태양을 품어 물든 대기는 붉디붉은 빛으로 산란되고 있었다. 황토의 지평선 너머로부터 둔탁한 말발굽 소리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마른 지축을 두드려댔다. 적갈색 말무리는 유독 털빛이 새하얀 어마(御馬)가 끄는 붉은 수레를 엄호하며 달려 나갔다. 바람에 휘날리는 백마들의 갈기만큼이나 임금의 검푸른 용안위로 하얀 눈썹과 수염이 태양 아래 빛났다. 몇몇의 호위 시종만을 거느리고 동정호를 지나온 지 이틀 만에 순(舜)은 이름 모를 잡풀로 우거진 창오(蒼梧)의 들판으로 들어섰다. 병풍처럼 에워싼 아홉 봉우리 아홉 골짜기가 흡사하여 이것인지 저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구의산(九疑山)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의 미간이 가만히 좁혀지고 방정하고도 두툼한 입술이 ‘구의’라는 산명을 허공에 곱씹어 본다.
 
- 구의(九疑)라…. 심히 의심스럽도다….
 
  5년마다 출궁하여 중원을 순회(巡廻) 시찰하는 것은 제후들을 다스리는 천자(天子)로서의 막중한 직무였다. 음력 2월에는 동방(東方)을 순수(巡狩)하고 5월에는 남(南)방을 시찰하고 8월에는 서(西)방을 11월에는 북(北)방을 시찰했다. 늘 그러했지만, 1년간 도성을 비워야 하는 이번 순방을 앞두고 우순(虞舜)은 마땅히 하늘의 뜻을 살피고자 했다. 먼저 선기옥형(璿璣玉衡)으로 일월성신을 관측하여 칠정(七政)을 가지런히 하고 상제(上帝)께 제사를 올렸다. 또 하늘과 땅과 사시(四時)에 제사를 지내고 명산대천과 뭇 신들에게 두루 제사 지냈다. 의례히 변함없는 천자의 소임을 다해왔건만…. 순은 어쩐지 이번 순수(巡狩)의 발걸음이 무겁고 불길했다. 막연한 불안감의 원천을 알 수 없었으나, 순은 전일(專一)한 마음과 고요한 기운으로 심기를 고르고 정신을 집중했다. 먼 길 떠나는 임금의 옥체를 우려하여 전에 없이 두 왕비가 따라나서고자 했고 사악(四岳)을 비롯한 22인의 대소신료들 마저 읍하여 아뢰고 근심하였다. 이미 백수(白壽)를 넘긴 물리적으로도 노쇠한 천자의 행보가 그들도 짐짓 불안한 모양이었다. 도성을 떠나기 전날, 밤하늘의 천문을 살피던 순은 자미원(紫微垣)과 북극성에 걸쳐진 상서롭지 못한 붉은 빛을 보았다. ‘악등녀(握登女)가 북극성의 정기(精氣)를 받아 순을 잉태했다’라는 위대한 탄생 설화를 언젠가 임금 자신도 구전으로 들은바 있었다. 깊고 깊은 중동(重瞳)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비록 아주 가늘고 희미했지만, 자미원으로부터 북극성을 침범하는 붉은 기운은 제요(帝堯)에게 선기옥형을 물려받은 이래 일찍이 본 적도 들은 바도 없는 하늘 현상이었다. 창오의 흐물거리는 석양이 스스로 곧 저물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문득 심상치 않았던 천체의 조짐을 떠올리며 순은 구의산을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륙의 여름 건조한 열풍이 황토를 휘몰아 어가(御駕)를 침범해왔다. 그의 중복된 검은 동공이 잠시 안정을 잃고 멈칫했다. 호위 무사들을 앞세우고 수레를 몰아가던 순은 광대한 벌판의 한 가운데 즈음하여 어마(御馬)의 고삐를 조여 멈추었다.
 
 
 
  이틀 전 어가의 행렬이 소상강(瀟湘江)을 지나치다 행보를 멈추었다. 소상 8경이라는 절경 앞에 비록 공무 수행 중인 대순(大舜)일지라도 거대한 동정호 남쪽 군산도(君山島)의 죽림(竹林)을 관통하는 청정한 소슬바람을 외면하여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대숲의 바람 소리는 신선이 연주하는 현(絃)과 관(管)을 타고 오묘한 율려로 공명되어 천상에 오르는 듯 했다. 심수(深水)에 배를 띄워 청아한 물빛을 흩어 손을 담근 채, 순의 이비(二妃)는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선상의 경관에 그저 감탄을 연발했다. 천자의 보필에 노심초사하던 궁에서의 엄중했던 생활을 일시나마 잊은 듯 풍류에 들뜬 소녀들 마냥 여인들의 함박 미소는 천진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주름진 늙은 지아비의 눈빛이 아련해지고 이내 촉촉해졌다. 아황과 여영…. 마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쳐져 하나의 물이 되듯 선왕의 두 자매는 언제나 일심동체로 의지하며 오직 부(夫)이자 군(君)인 순을 따랐다. 이번 남방 순시의 행보에서 두 비(妃)를 대동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연로한 부군(夫君)의 안위를 염려한 두 현처(賢妻)의 간곡한 바람을 이번만큼은 순도 만류할 수 없었다. 소상강의 풍취를 만끽하는 두 아내의 모습이 어여쁘고 즐거웠지만, 그러나 임금인 순은 곧 떠나야 했다. 전란의 조짐이 있는 창오의 실정을 시찰해야하는 일을 목전에 두고 마냥 머물러 지체할 수만은 없었다. 오뉴월 남쪽의 여정에 지친 모두의 흥취를 차마 깰 수 없었던 순은 이후에 사람을 보내어 두 왕비를 맞이하도록 하고, 다음날 원로대신들과 긴 어가(御駕) 행렬을 남겨둔 채 소수의 정예 무장과 시중들만을 이끌고 조용히 창오로 떠났다.
  순이 당요(唐堯)에게서 제위를 물려받고 천자로 등극한지 39년이 되었고 그의 나이 100수(壽)를 넘겼다. 늙은 농부가 격양가를 부르며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제요(帝堯)의 시대에 버금가는 치세를 누리고 있음에 뭇 백성들은 하늘이 선택한 천자(天子), 우순의 덕을 앙모했다. 곤의 아들 우(禹)에게 맡긴 치수 사업이 성공하여 극심한 9년 홍수의 재해로부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낸 지 30여 년이 지났다. 대륙을 삼켜 범람하던 황허와 양쯔의 강물이 제 물길을 찾아 바다로 흘러나갔다. 우(禹)가 해냈다. 등은 낙타처럼 굽은 채 허벅지의 살이 쭉 빠지고 정강이 털이 빠진 두 다리를 절룩대며 재촉하여 걷는 모양새를 사람들은 우보(禹步)라 칭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홍수가 사라진 땅, 윤택해진 백성들의 삶에 우의 혁혁한 공이 빛을 발하였다. 왕비 아황에게서는 소생이 없었다. 왕비 여영에게서 얻은 아들 상균(商均)은 임금인 아비가 보아도 천하를 맡길만한 영민한 재목은 아니었다. 비록 부왕이 천자라 할지라도 불초한 자식에게 천하를 맡길 수 없음은 이미 선왕이 그 본을 보이지 않았던가? 장자인 단주가 불초하다하여 자신에게 보위를 선양한 요임금의 아비된 마음도 이러했을까? 안타까운 부정(父情)을 동감(同感)하는 순간이 우순에게도 찾아왔다. 불철주야 치수 사업에 고군분투해온 우의 공훈이 백성들에 의해 나날이 회자되고 칭송되었다. 마침내 제요가 우순에게 그러하였듯이 순은 양위(讓位)를 결심하고 하늘에 우(禹)를 천거하였다. 선양을 천명한지 어언 17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고 그 도는 마음(心)을 근본으로 하니 그 마음을 얻게 되면 도와 정치를 진실로 말할 수 있음은 성군(聖君)인 요가 순에게 전수한 바이다. 그가 전수받은 ‘윤집궐중(允執厥中)’의 가르침에 ‘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12자를 덧붙여서 그 역시도 우(禹)에게 전했으니 순은 스스로 천명(天命)을 다했음에 안도했다.
  낮아진 대기는 서서히 보풀이 일듯 섬세한 깃털 구름을 형성했다. 여름 한낮 대륙의 열기를 일시에 뿜어내듯 기염을 토해내던 태양은 이미 서천(西天)을 벌겋게 장악했다. 수레에서 내려 창오의 남쪽을 묵묵히 바라보는 순의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도 익히 알고 있었다. 구의산 너머에 봉황이 산다는 단혈산(丹穴山)이 있었다. 봉황이 마신다는 단수(丹水)가 그곳에서 발원하여 구의산을 돌아 소수(瀟水)와 만나고 소수가 상강(湘江)을 만나 소상강을 이루었다. 선왕의 장자 주(朱)를 봉(封)하여 길이길이 단주(丹朱)라 불리게 한 단연(丹淵)이 구의산 너머에 있었다. 순이 시중들을 좌우로 물려 쉬게 하고 구의산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요의 명에 따라 주(朱)를 단수로 추방했고 삼묘(三苗)족과 반란하니 진압하여 평정했다. 격렬했던 전투 끝에 하수(河水)가 온통 피로 물들었던 수십 년 전 그때를 순도 기억하고 있었다. 선왕이 붕어하고 3년이 지나 순이 천자로 등극하자 얼마 후 단주가 단연(丹淵)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선대(先代)의 신하 후직(后稷)이 아뢰어 전했다. 붉은 망토로 무겁게 휘감긴 순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선양(禪讓)이 아니었다면 천하는 요임금의 장자 단주의 것이었다. 그러나 만인이 성군(聖君)이라 칭송하는 당요의 뜻이었다. 요는 순을 택했고 신하들도 순만을 찾았으며 백성들도 순만을 따랐다. 하늘의 뜻이었다. 멀리 구의산을 응시하던 그의 겹진 까만 동공이 일순간 초점을 잃었다. 순간 구의산 아홉 봉우리 너머에서 검붉은 적운층(赤雲層)이 온 하늘을 뒤덮었고 마치 주작(朱雀)의 날개가 하늘을 가리고 불을 뿜어 지상으로 질주하듯 맹렬히 폭주했다. 사방이 온통 핓빛으로 붉어졌고 후끈한 적토의 분진이 바람을 타고 억새풀 우거진 들판을 가로질러 세차게 순의 용포를 휘감는다. 순의 몸이 휘청거렸다. 젊은 날 열풍뇌우(烈風雷雨)에도 불미(不迷)했던 그였으나, 이미 쇠잔해진 정기(精氣)탓일까? 최후를 직감한 두려움의 엄습에 순도 의심하고 동요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나운 적운이 뇌전을 일으켜 제왕에게 돌진했다. 순의 중동(重瞳)이 일순간 검게 확장되어 번쩍였다. 온 몸을 태워 작렬하는 단봉(丹鳳)의 마지막 포효인 냥 찌르듯 날카로운 비명을 타고 번쩍하는 적광(赤光)이 번개처럼 순의 심장에 꽂혔다. 시간이 호흡을 멈추었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순(舜)의 백미(白眉)아래 검디검은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득한 우주로 향하는 중화(重華)의 눈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 해를 잃은 창오의 들판에서 대순(大舜)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무궁화 꽃잎은 해를 따라 지고 구의산에서 붕새(鵬)가 울었다. 붕(崩)~~ 붕새(鵬)가 날아올라 암전의 하늘을 덮었다.
 
소상주야우(瀟湘晝夜雨)
상수는 흘러 상수는 흘러,
구름의 구름이 지금에 이르러 추억하네.
임금께서 물으시니,
두 명의 왕비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영릉의 향초가 이슬 중에 가을이 되는 구나.
점이 찍힌 대나무의 가지,
눈물이 흘러 점점이 된 것이니, 님 생각이 떠오르고
초의 손님이 청하여 듣고자 하여 이를 원망하니,
소상의 깊은 밤 달이 밝은 때로다.    
                                - 죽지사(竹枝詞) -
 
 
 
 
  또다시 단수(丹水)는 단혈산(丹穴山)에서 발원하여 구의산을 돌아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소상강에 이르렀다. 순이 붕(崩)하였다는 부음(訃音)이 천지에 전해지고 소상강 푸른 물에 삼일 밤낮 비가 내렸다. 새 찬 빗줄기가 푸른 대숲에 쉼 없이 내리꽂혔다. 짙푸른 죽엽들은 갈갈이 찢어지는 비명 속에 몸서리치며 낙하했다. 굵고 날카로운 빗발이 대나무 마디마디 텅텅 울려 치는 소리가 마치 어로(御路)를 따르는 죽장(竹杖)의 행렬처럼 군산도(君山島)를 울려댔다. 낮이 가는 줄을, 밤이 가는 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삼일 밤낮, 해도 달도 그리고 별도 길을 잃어 사라졌다. 비 내리는 소상강가 아황과 여영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구의산의 신기루를 바라본다. 또다시 단수는 구의를 지나 소수와 상강에서 만나 소상강에 머물렀다. 끝없이 내리는 빗물에 적셔지고 쉼 없는 낙루(落淚)에 젖어들어 이비(二妃)는 물이 되어갔다. 아황과 여영은 문득 순(舜)이 있었기에 아름다웠던 두 얼굴을 푸른 강물에 비춰본다. ‘구의로 가자….’ 단수(丹水)가 역류하며 속삭이는 듯했다. ‘순이 있는 구의로 데려다 주겠노라….’ 소상강 물빛 속에서 단수가 속삭이는 듯했다. 순이 묻힌 구의로…. 구의로 돌아가고픈 이비(二妃)가 차례로 소상강 푸른 물로 낙화(洛花)했다. 아황과 여영…. 마치 소수와 상강처럼 물이 되어 구의로 돌아갔다. 뭇 사람들이 반죽(斑竹)의 흔적은 상군(湘君)의 핏빛 눈물 자국이라 구전했고, 떠돌이 시인과 묵객들은 상부인(湘夫人)의 핏빛 울음에 멍든 때문이라 서술했다. 얼룩진 반점은 소상(瀟湘)의 죽간(竹簡)에 비운의 서사로 새겨진 채….  아득한 시간을 흘러 끝없이 푸른 강호(江湖)를 유랑했다.
 
“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공사 3장 4절)
 
 
# 2. 요임금의 꿈
 
“…회문산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공사 3장 6절)
 
  평양부(平陽府)에 봄이 왔다. 궁실(宮室)의 지붕 공사로 궁인들의 움직임은 너나없이 분주했다. 잘 말린 띠[草]들을 엮어 길게 잇는가 하면, 겨우내 벌레들이 갉아먹고 해충이 알을 낳아 삭을 때로 삭은 지붕 띠를 장정들이 걷어내고 불에 태웠다. 새로 얹은 띠 지붕의 처마 끝은 가지런히 자르지도 않았고 흙이 떨어져 나간 몇 군데의 층계를 보수하는 공사로 임금이 사는 궁(宮)은 명색의 그 봄단장을 마쳤다. 제요(帝堯)의 궁은 흙을 발라 3층으로 쌓아 올린 허름한 초가지붕이었고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서까래는 임금이 손수 잘라 온 나무로 만들어졌다. 소위 천자(天子)라 칭하는 황제(黃帝)로부터의 제왕들은 나무나 돌로 쌓아 올린 아홉 층 궁전의 위용으로 천명과 권위를 상징하고자 했으나, 제요에게 권위란 오직 백성들의 태평성대 속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드러나지 않는 숨은 덕치(德治)였다. 그런 요의 치세에 대해 늙은 농부가 부르는 격양가(擊壤歌)는 그에게 있어 백성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최고로 흡족한 평가였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고                 日出而作 日入而息
우물파 물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鑿井而飮 耕田而食
임금의 혜택이 내게 무엇이 있다더냐       帝力干我何有哉
 
  요(堯)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100여 년을 통치하였으나 부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았고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겸양했다. 총명한 지혜가 신과 같았고 인자하기가 마치 태양과 같았다. 백성의 가난과 잘못을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근검하고 절약했다. 요의 가장 큰 치적은 역법을 알아낸 것인데 “역상일월성신(曆像日月星辰) 경수인시(敬授人時).”란 곧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1년은 366일이며 윤달이 있음으로써 사계절이 정해지니 하늘을 삼가 공경하고 따르며 일월성신의 역상과 운행을 살펴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이치를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농사와 일의 때를 알려주라 이른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그는 때마다 상제(上帝)께 제사 올리고 천지와 사시(四時)와 산천에 두루 제사 지냈다. 그의 지혜와 덕성에 백성들은 감화했고 극심한 홍수와 재난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백성들 누구도 요임금을 원망하지 않았다.
  빙설이 녹아내리는 춘절(春節)에 수면은 높아지고 강호(江湖)가 범람하여 천지가 수국(水國)이 되었다. 평지에 발을 딛고 살기조차 불안한 백성들을 위해 요는 불철주야 치수 사업에 골몰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요(帝堯)는 밤이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홍수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재위(在位) 50년이 다되어 가도록 장차 계통을 이어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물을 아직 얻지 못했다. 요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만약 부왕으로서 혈족에게 보위를 계승하자면 정비 산의씨(散宜氏)의 9남 중 장자 주(朱)가 마땅하였다. 그러나 그의 덕성과 자질을 생각하면 임금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질과 성품이었다. 맏아들 주는 어릴 때부터 얼굴은 봉(鳳)의 상을 닮았고 풍골이 준수했다. 또한 기백이 활달하고 지혜가 총명했다. 요는 그런 장자를 아비로서 아꼈고 장차 보위를 이어 자신보다 더 나은 성군(聖君)이 되어주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 자랄수록 그 총기가 지나쳐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길 좋아하고 겸양을 잃고 자만했으며 어울려 놀기 좋아하여 배우기를 멀리하니 덕성과 지혜는 더욱 빛을 잃었다. 오직 백성을 걱정하고 정사에 바빴던 요가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뒤늦게 행실과 학덕이 높은 대신(臣)들을 골라 스승으로 삼게 하여 주(朱)를 훈계하고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그가 듣질 않았다. 요의 근심은 커져만 갔고 밤이 깊도록 침전에 들지 못하였다. 춘삼월 밤하늘에 익성(翼星)이 빛났다. 천문에 밝았던 요가 문득 조용히 제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심기를 고르고 단에 올라 향을 피웠다. 북향한 요가 상제께 읍(揖)하여 심고하였다. 금계(金鷄)가 새벽을 알릴 때까지 향불은 밤새 하늘로 피어올랐다.
  춘분의 나른한 오후, 임금이 주침(晝寢)하는 처소의 초가지붕 아래로 따뜻한 봄바람이 창가로 스미어 들었다. 뜻밖에도 그는 빛으로 환한 꿈길을 걸어 말로만 듣던 동이(東夷)에 다다랐다. 요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돌산의 중턱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소매의 도련이 길게 늘어진 푸른 의관에 검은 두건은 동이인의 복식인 듯했다. 사내는 마치 아는 사람 대하듯 다짜고짜 요를 이끌어 당기며 신선들을 만나러 가자 재촉했다. 요(堯)도 거리낌 없이 사내를 따랐다. 옥빛의 맑은 물소리는 심신을 쾌청하게 했고 청아한 바람 끝에 솔 향이 그윽했다. 가히 신선이 머물만한 선경에 온 듯했고, 과연 계곡 아래 융단이 펼쳐진 듯 흰 빛의 너른 바위 위로 홍안백발의 다섯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평평하고 모서리 진 돌 판을 가운데에 놓고 네 신선이 판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두 신선은 각각 검은 돌과 흰 조개껍질을 쥐고 서로 마주했고 다른 두 신선은 각각의 편에 앉아 귓속말로 무어라 속닥이기도 하고 또 짐짓 알아듣지 못할 말로 서로 다투듯 수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한 신선만은 저만치 유유자적 빗겨 앉아 신령스러운 사슴 한 마리의 뿔을 쓰다듬으며 네 신선을 이따금 바라볼 뿐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이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던 요는 함께 있던 사내에게 숨 죽여 물었다.
 
- 이보시오 젊은이 저 돌 판은 무엇이며 흑 돌과 흰 조개껍질을 가지고서
   네 신선들은 대체  무얼 하는 게요?

- 아 예 그 돌 판은 동이에서는 바돌판이라 하고, 저 놀이를 위기(圍碁)라
   합니다. 저들이 평소 즐겨하는 소위 신선놀음인데 그 수법이
   무궁무진하고, 가히 그 이치가 오묘하니 좀 더 지켜보시지요.
 
  사내는 급히 소매 안에서 필묵과 푸른 천 두루마리를 꺼내어 글월을 써내려갔다. 요는 다시 다섯 신선들의 거동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바돌판은 열아홉 줄의 일정한 간격으로 씨줄 날줄이 평행한 검은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들끼리는 중앙의 한 점을 ‘태을점(太乙點)’, 4변(邊)에 있는 점들을 ‘매화점(梅花點)’이라 부르는 듯했다. 마주 앉은 두 신선이 검은 돌과 흰 조개껍질을 번갈아 가며 선과 선이 만나는 교차점에 올려놓으며 검은 집과 흰 집을 지어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편이 더 집을 많이 가지는 가로 승패를 좌우하는 놀이임을 알 수 있었다. 여유롭게 두 신선이 수법대로 한 점씩 두다가도 가끔 양편에서 관여하는 신선들의 묘수로 인해 판도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체로 훈수를 두는 신선들로 인해 서늘하고 조용한 다툼이 일기도 했다. 요는 처음에는 그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반전과 다양한 묘수가 사뭇 흥미로웠는데, 점차 오묘한 기변(碁變) 속에 우주의 질서와 이치가 담겨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흑점과 백점으로 수놓아진 바돌 판의 문양이 어쩐지 하도(河圖)의 역상(易像)과 흡사함에 주목했다. 요는 일찍이 태호 복희씨가 황하수(黃河水)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찍힌 점을 보고 팔괘를 만들어 하도(河圖)로써 역(易)의 이치를 전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요제(堯帝) 자신도 복희역(伏羲易)에 근거하여 하늘의 역상을 알아내고 일월성신 천체운행의 역법을 백성에게 가르친 바 있지 않았던가? 요가 속으로 감탄하며 신선들의 놀음을 지켜보는 가운데, 옆에 있는 사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두루마리에 기록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런 사내보다 특이한 이는 바로 나머지 한 신선이었다. 그는 바돌 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다만 때때로 진귀한 다과(茶菓)를 내어주며 유희의 흥을 깨지 않도록 네 신선의 비위를 맞추어 줄 뿐이었다. 붉은 옷의 그 신선은 부드러운 녹각(鹿角)의 융털을 쓰다듬으며 가끔 무료함에 졸기도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에 잠긴 듯 빙그레 웃기도 했다. 네 신선이 진지하게 몰입하는 세계와는 동떨어져 그저 자연과 풍류를 즐기는 그의 거동이 요는 참으로 기이했다.
  바돌판이 그득하니 흑점 백점으로 메워지고 점점 승패를 판가름할 때가 다가오는 듯했다. 두 신선이 각각 차지한 집의 수효를 계산하는 동안 요는 붉은 옷의 신선이 그저 수수방관할 뿐인 연유가 궁금하여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가 기록을 마치고 두루마리를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 그가 주인 신선이라 그러하지요.

- 주인이라면 무엇의 주인이라는 게요?

- 저 위기(圍碁)의 판을 벌린 것이 주인 신선이니 저 신선놀음이 끝나면
   바돌판과 바돌은 붉은 옷을 입은 저 신선의 차지가 아니겠습니까?

- 오호! 그래서 저렇듯 멀찍이 판밖에서
   신선들을 공궤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었구먼.
- 이제 곧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신선들이 판을 마치고 자리를 뜰 것이니
   저도 이만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 어허 이 늙은이가 덕분에 귀한 신선 구경하였으니 참으로 고맙소,,
   내 젊은이의 성명이라도 알아두어 이 기이한 인연을 기억하고자 하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요?

- 예 저는 조선(朝鮮) 사람으로 성은 이씨(李氏)옵고
    이름은 서구(書九)라 하옵니다.

- 이서구(李書九)라….
 
  어디선가 금계의 첫 울음소리가 들렸다. 과연 네 신선이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턱을 괴어 졸고 있던 주인 신선도 계명(鷄鳴) 소리에 긴 기지개를 펴며 따라 일어섰다. 두 번째 금계의 울음소리에 다섯 신선은 예를 갖추어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네 신선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남아있던 주인 신선은 흑백으로 꽉 메워진 바돌판을 차지하고 좌정하였다. 여기까지 지켜보던 요는 문득 서구라는 젊은이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다만 그가 있던 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푸른 천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그가 시종일관 기록에 몰두했던 것을 떠올리며 요는 호기심에 두루마리를 펼쳤다. 동이의 문자였지만 어쩐 일인지 요는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초당위에 높이 누워 일장춘몽 깊이 들어
한 곳에 다다르니 오선위기 하는구나
한 노인은 백기들고 한 노인은 흑기들고
한 노인은 백기훈수 한 노인은 흑기훈수
한 노인은 누구신고 주인노인 분명하다
주인노인 체면 보소 시절 풍류 그뿐이라
상승상부 결승할 때 양편 훈수 못 하고서
친가유무 공궤할 때 손님 접대할 뿐이네
수는 점점 높아가고 밤은 점점 깊어간다
원촌에 닭이 우니 태극성이 비쳤구나
개가 짖고 날이 새니 각자귀가 하는구나
주인노인 거동 보소 일장춘몽 깨어 보니
상산사호 네 노인은 저 갈 대로 다 가고서
바둑판과 바둑돌은 주인 차지 되었구나
 
  여기까지 대략 읽어 본 요는 자신과 함께 본 오선위기의 묘사가 일치함에 흡족했고, 노래하듯 율을 맞춘 서구의 재치 있는 문장에 빙긋이 웃으며 감탄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요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뇌전(雷電)이 일어난 듯 요는 전율했고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두루마리를 펼쳐 든 그의 양 손이 심하게 동요했다.
 
 
 
요지자(堯之子)는 단주로서 바둑판을 받을 적에
후천운수 열렸으니 해원시대 기다리라
정녕 분부 이러하나 이 이치를 뉘 알소냐
오만년의 운수로세 그 아니 장할시구

강구연월 격양가는 당요천하 송덕할때
만승천자 어데두고 바둑판이 웬일인고
자미원에 몸을붙여 후천운을 기다리니

할일없다 이내운수 지성발원 다시해서
구천에 호소하니 해원문이 열렸구나
 
두루마리를 끝까지 읽어 본 요가 방금 전 오선위기(五仙圍碁)가 펼쳐졌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주인 신선이 잔잔한 미소를 홍안(紅顔)에 가득 담아 백발의 요(堯)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색구름이 안개를 지어 은은한 홍예(虹霓)빛 운무(雲霧)가 피어올랐다. 선계(仙界)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세 번째 우는 금계가 새벽을 알렸다. 향불이 잦아드는 제단 위에 엎드린 채 요가 눈을 떴다. 요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새벽 여명에 익성이 서쪽 하늘 저만치 교교히 빛났다. 그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요는 용포를 가다듬어 북쪽으로 상제(上帝)께 분향했다. 사배의 예를 갖추고 심고(心告)를 마친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
 

# 3. 단주의 꿈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공사 3장 4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단혈산(丹穴山)에 봉황(鳳凰)이 산다했다. 오색 무늬 깃털 옷을 고고히 갖춰 입고, 부리로 죽실(竹實)을 머금어 흐르는 단수(丹水)를 마시며, 몸은 벽오동에 깃들어 산다했다. 봉황의 오색 깃털은 먼저 머리 무늬에 지덕(智德)을 얹어 관(冠)을 쓰고, 공손히 등을 굽혀 예(禮)를 표하니, 가슴은 활짝 열려 인애(仁愛)로써 안아 감싸면, 의(義)로운 두 날개가 힘찬 죽지를 펼쳐 오르니, 창공을 비상하는 배짱은 가히 하늘을 믿어(信) 의심치 않음이라. 오색 깃털 무늬가 다섯 가지로 행(行)하니, 봉(鳳)과 황(凰)의 그 울음소리는 율(律)과 려(呂)로써 오음(五音)을 조화하여 듣기에도 심히 황홀하고, 만약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춤을 사람들이 보게 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했다.
  부왕(父王)의 명으로 그는 단연(丹淵)에 봉(封)해졌다.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단주(丹朱)라 칭하기 시작했다. 단수(丹水)가에 탐스럽던 목단(牧丹)도 석양에 붉게 지고, 우두커니 홀로 앉은 그가 궁성(宮城)이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부왕이 없는 궐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돌아갈 곳이 아니었다. 순제(舜帝)의 천하 순이 머무는 도성은 하늘 아래 단주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게 하는 국경선 너머 금기의 땅이었다. 단주로서 영원히 봉해지는 단주의 땅에서 그는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었다. 단수가 시간을 역류하듯 멀고 먼 도성으로 흘러갔다. 단주는 흐르는 물소리에 눈을 감았다.
  지난 날 그의 풍류가 지나쳐 날마다 평양부의 분수(汾水)에 배를 띄우고, 동이(東夷)나 남만(南蠻)에서 흘러 온 시정의 잡배들과 벗하여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부왕의 엄한 단속에 주춤하다가도 주는 임금이 산천에 제사를 지내러 도성을 비우면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종고와 생황을 울려대며 주야를 구분치 않고 더욱 노래하고 춤추었고 그 방탕하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분수 일대를 들끓게 했다. 도성의 백성들은 그들 무리의 고약함으로 인해 무수히 파손된 배들을 놓고 원성하기도 하고, 번번한 물난리에 지친 백성의 심간(心肝) 따위는 아랑곳 않는 태자의 무심함을 원망했다. 떠도는 소문을 요임금이 모를 리 없었고 왕의 근심을 황망히 여긴 사악과 신하들이 먼저 그 잡된 무리부터 엄절히 문책하고 추방할 것을 간하였다. 공정한 요는 시정의 무리만을 탓하여 벌하지 않았고 주를 불러 간절히 타이르고 그의 스승들로 하여금 가르쳐 교화하게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그의 성품과 습성이 고쳐지지 않았고 주의 덕성은 날로 빛을 잃어 갔다. 어느 날 홀연히 요제(堯帝)가 주를 불러 무릎 꿇게 하고 그에게 삼가 오동나무로 만든 기변(碁變)을 받잡게 했다. 주가 나무판을 받고 보니 평평한 상판에 반듯하고 일정한 묵선(墨線)들이 그어져 있었고 그 위에 흑 돌과 흰 조개껍질을 나누어 담은 그릇들이 올려져있었다. 부왕의 눈치만 살피던 주가 처음 보는 기물(機物)의 쓰임이 궁금하여 길게 참지 못하고 물었다.
 
- 부왕이시여, 기이한 이 물건들은 무엇이라 하오며 
   그 용도는 또 무엇이옵니까?

- 기(碁)라 한다. 이는 위기(圍碁)라는 놀이로
   바둑 판 위에 흑백 바둑돌을 한 점씩
   올려 주위를 둘러싸고 집을 짓는데
   그 집(戶)을 많이 짓는 자가 이기느니라. 
  어떠냐 아비에게 기국(碁局)을 배워 보겠느냐?
- 예 지금 당장 배우고 싶습니다.
   하온데…. 부왕께서 친히 소자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옵니까?

- 그렇다. 기(碁)를 아는 자가 없으니 오직 내가 너를 가르칠 뿐이다.
   부디 바둑판에 담긴 이치를 터득하고 그 수법을 배우고 익히거라.
   너의 심신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니,
   이를 통해 지혜를 밝히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배우라.
   태자는 아비의 뜻을 알겠느냐?

- 예…. 소자 삼가 받들겠나이다.
 
  그날따라 자상하기 그지없는 요의 자애로운 음성에 주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자유친의 오륜이 있을진대 얼굴을 마주할 새 없이 정무(政務)에 바쁘기만 했던 부왕이 자신을 위해 이렇듯 흥미로운 기물을 선사하며 유희를 함께함에 한없는 기쁨이 샘 솟았다. 주는 어느새 바둑의 묘리에 깊이 빠져들었고 부지런히 쉬지 않고 수법을 연구하고 익혀나갔다. 기기묘묘한 수법은 무궁무진하여 주를 더욱 흥미롭게 했고 깊은 몰입의 가운데 그의 총기는 더욱 밝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측근의 소신들이나 궁인들 중에는 주를 상대할 적수가 없었다. 오직 바둑을 직접 가르친 요(堯)만이 주를 능가할 뿐이라, 주가 부왕을 찾아가 대국을 청하려 해도 정사에 바쁜 임금과 한가로울 수 없음에 주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차츰 바둑 두는 일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또다시 궁의 담장을 넘기 시작했고 잠시 잊고 지내던 벗들을 찾아 나섰다. 각국을 떠돌아 유랑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세상의 신기한 풍속과 물정을 나누고 자연을 즐겨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한바탕 놀이의 감동이 주에게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듣자하니 동이(東夷)라는 나라에서는 오히려 다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흥겨운 놀이마당에 여러 백성이 즐거워 일하고 풍류가 곧 신선의 도(道)라 하여 현묘히 여겨 자연을 숭상하고 즐겨 벗한다 했다. 주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천하에 없는 탕자로 비난받아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즐거움 없는 팍팍한 인간의 삶에 여유로움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는 것인지 주는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또다시 분수에 배를 띄우고 재미있는 놀이꺼리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홍수로 범람하는 언덕 아래 급류에 휩쓸려가는 백성의 아우성 속에서도 분수 위의 뱃놀이는 계속되었다.
  요의 재위 70년이 되었다. 9년 전 곤에게 맡긴 치수 사업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흙으로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곤의 치수 방식은 둑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설상가상이 되었다. 오히려 홍수가 거세게 창일(漲溢)하여 멀쩡하던 마을이 수장되어 사라지기 일쑤였다. 요제에게 있어 천하를 다스리는 대업이란 곧 물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때에 보위 계승의 문제를 놓고 신하 방제(放齊)가 태자 주를 천거하기도 했지만, 요제는 불가하다 천명했다. 그가 불초하여 어리석은 말다툼만 좋아하고 말과 행동이 충성스럽지 않아 천자의 재목으로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요는 은둔자와 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오직 덕이 밝고 어진 이를 찾아 등용하고자 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백성들 사이에 무수히 화제로 떠오르던 평민 우순을 천거했다. 그는 고수(瞽瞍)라 불리는 아비와 간악한 계모, 오만한 이복동생을 둔 집안에서도 지극한 효성을 다해 능히 화목을 유지하므로 뭇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하여 세간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에 요제가 순을 등용하였고 그는 임금의 부름을 받아 궁으로 입성했다. 요는 순의 덕성을 시험하고자했다. 아름다운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그의 효성과 제가(齊家)의 면모를 살피게 했다. 두 딸의 운명을 걸어 천자의 재목을 가늠하여 인재를 얻고자 했음은 참으로 파격이며 모험이었다. 만약 우순이 요가 찾는 계승자의 재목이 아니라 해도 요는 아끼는 두 딸을 희생해야만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요제의 이렇듯 담대한 처사에 장자 주는 경악했다. 도무지 부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인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는 불초한 자식을 믿지 못해 보위 계승에서 자신을 배제시킨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풍문으로 떠도는 사람들의 말만 믿고 천하를 물려주고자 일개 촌부에 지나지 않는 그를 등용한다는 것이 심히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해와 달을 보듯 어여삐 여기는 아름다운 두 누이를 아직 그 속심도 간파되지 않은 자에게 한꺼번에 시집보낸다는 사실에 주는 분기가 울컥 차올랐다. 그러나 주는 감히 항명(抗命)하지 못했다. 부왕의 단호한 결정에 주를 비롯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묵묵히 따랐다. 요제의 판단은 언제나 틀리지 않다는 절대적 신뢰란 그가 천하 사람들이 하늘같이 믿고 의지하는 성군이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요의 선택은 적중하여 천하의 만백성이 순을 좋아했고 그는 백성을 이롭게 했다. 그러나 주는 든든한 백성의 인망을 얻은 순을 내내 못 마땅히 여기고 섭정에 불복했다. 그리하여 요는 태자 주에게 기회를 주어 잠시 정사를 맡겨 보았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원망했고 오직 주 한사람만이 이로울 뿐이었다. 재위 90년에 이르러 요가 굳게 결심하여 주를 불러 훈계했다.
 
- 장자 주(朱)는 들으라. 짐이 100수를 넘긴지 이미 오래요,
  이제 그만 천하를 우순에게 맡기고 물러나려하노니
  이제 너는 마땅히 짐의 뜻을 받들어 신하된 도리를 다하라. 

- 부왕이시여 옥체 아직 이토록 강령하시온데 어찌 퇴위를 말씀하시옵니까?
  만수를 누리시어 길이 천하를 비추실 것이오니,
  부디 망극한 천의(天意)를 거두소서.

- 태자는 들으라. 천자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요,
  짐이 순을 얻어 하늘에 천거하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여 따름을 너 역시 보았을 터. 민심이 곧 천심이라.
  이 모두 하늘의 뜻이노라.

- 하오나 부왕이시여 소자는 ….

- 주에게 명하노니 짐이 이제 너에게 성지(城地)를 하사하여
  단연(丹淵)에 봉하노니
  삼가 명을 따라 단수 일대의 삼묘(三苗)족을 다스려 경계하고 아울러
  백성을 살피도록 하라.   
- ........

- 부왕으로서 내 너에게 깊이 당부하노니,
   장차 천하사는 우순에게 맡겼으니
  사사로이 권좌(權座)를 탐하지 말 것이며, 이제 단수로 내려가
  짐이 창작한 기변의 묘리를 더욱 깊이 살펴 우주의 이치를 궁구(窮究)하고
  천지 운행의 원리를 깨달으라.
  부디 심기를 전일하게 하고 도심을 밝혀 덕을 닦으며 하늘이 내려 주시는
  때를 잘 기다리라.
- 부왕 ….

- 짐이 명하노니 단주(丹朱)는 이제 곧 떠나도록 하라.
 
  마침내 요는 직관 후직(后稷)에게 태자의 수행을 명하여 단연에 성을 쌓게 하고 집을 지어 단주를 안치(安置)했다. 순이 섭정한지 20년 만에 요의 완전한 선위(禪位)가 이루어졌다. 요는 권좌에서 물러나 별궁에 머물며 8년을 더 살다가 붕어했다. 백성들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제후들은 3년간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3년 상을 마치자 순이 천하를 단주에게 넘기고 남하(南河)의 물가로 물러났다. 인적 드문 단주의 궁에 정적만이 흘렀다. 하늘이 허락지 않은 왕의 용좌는 홀로 침묵해야 했다. 천자를 알현하는 제후들의 발길이 순에게로 향했다. 시비를 소송하는 이도 순을 찾았다. 천자의 은덕을 칭송하는 이들도 단주가 아닌 순을 찬양했다. 천하가 순만을 찾았고 순만을 원했다. 이에 순은 비로소 하늘의 뜻임을 알았다며 회궁(回宮)하여 복위했다. 대순(大舜)은 다시 봉지(封地)를 하사하고 단주를 단수에 봉했다.
  바둑판을 마주 대하는 빈자리에 온기가 끊어진지 이미 오래였다. 바둑돌만 손에 쥔 채로 멍하니 앉아 단주의 하루가 가고 있었다. 단연(丹淵)은 오직 단주만의 세상이었다. 단혈산의 샘솟는 단수 마시며 오동나무 바둑판에 깃들어 좌정한 채로 단주는 홀로 노래하며 신천지를 꿈꾸었다. 일장춘몽에 소스라치듯 이 생(生)이 가면 또 어느 생의 끝에서 나락을 헤매일련지…. 단주는 시간을 달려가고 싶었다. 단수에 배를 띄워 바람 따라 흘러흘러 동해 바다로 영원한 신천지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를 태울 배가 단수를 거슬러 당도하고 있었다. 저 멀리 어디선가 뱃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배띄워라 배띄워라 만경창파 배띄워라
만경창파 너른바다 두둥실 배띄워라
일락서산 해가지고 월출동녁 달이떴다
상하천광 맑은물결 월수세계 이아닌가
천지로 배를모아 요순우탕 키를잡아
문무주공 돛을달고 안증사맹 노저어라
범피중류 띄워놓니 춘수선녀 천상좌라
걸주풍파 일어난들 이배파산 어이하리
제일강산 돛대로서 도사공이 누구신고

천하절후 삼변하니 그 이치를 뉘알소냐
뱃 노래 한곡조에 무이구곡 돌아드니
무궁무궁 저이치를 뱃노래로 화답하네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공사 3장 4절)
 
 
《 후기後記 》
  단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란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그에 관한 주제를 다룬 어느 논문 발표를 참관하고 부터이다. 사료에 입각한 역사적 고증이 어려운 상고사와 기존의 연구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대순 종학의 현실 속에서 섣부른 추론과 판단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 특히나 논문에 있어서 얼마나 무모한가를 알게 해준 기회였다. 어쩌면 논리적으로 빈틈을 허락지 않는 과학적 글쓰기의 구속이 나에게 차라리 소설의 자유를 꿈꾸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전경』의 구절 하나하나를 사실로 믿고 그에 입각해 진리를 깨달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면 진리를 궁리함에 있어 그에 반하는 다른 사실들에 대해 용감하게 접근하여 분석하고 종합해야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자세이다. 의심이 없어야 하는 수도인으로서 얼마 전 대순 종학에 입문했다. 학문의 세계로 들어 온 이상 모든 명제를 의심해보고 탐구해 보아야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많은 용기가 필요한 단계이다. 그러나 한 치의 의심이 없어질 때까지 궁구함으로써 진리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그 믿음을 견고히 하고자하는 수도인의 자세로서 귀결된다. 그래서 단주에 대해 소설의 형식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히는데까지 나에게는 적지 않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순진리의 핵심사상인 해원상생을 거론하는데 있어 원(冤)의 첫 장이 되는 단주라는 인물은 어쩌면 가장 먼저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대상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관계 이전에 도주님과 연관하여 해석되어지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단주에 대한 연구는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대순 종학에서뿐만 아니라 타 종단, 학계에서 지금까지 연구된 바가 극히 적고, 기본적으로 역사적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단주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우리의 의식 속에 전경 구절의 문자로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원(冤)은 심정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이다. 단주의 삶은 마음이 있는 인간의 삶이다. 마음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다. 삶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각종 역사 소설과 퓨전 사극의 열풍은 주어진 과거의 사실을 소재로 하여 서사를 만든다는 픽션(faction)이라는 장르를 부각시켰다.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인 픽션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해석되어지는 스토리텔링의 대세를 몰아 역사 열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자들은 역사 왜곡을 우려하는 반면 대중들은 꿈꾸는 픽션에 주목한다. 어쩌면 사실에 근거한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설명 듣기보다 삶으로서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가 반영된 자연스런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역사학의 위기라는 우려와는 반비례하여 역사의 스토리텔링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의 인식 저 너머에 있던 과거의 인물들을 끌어내어 현재의 우리들과 호흡하고 교감하게 하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전경』 속의 단주를 현재의 우리 곁에 불러내어 주목하게 하고, 단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원상생을 이야기하며 대순사상을 보편적으로 알리고 싶다.
  그 어떤 것도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수도인이자 대순종학도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감히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함부로 신성한 사실을 왜곡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역사 소설은 그만큼 큰 모험이다. 턱없이 부족한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그저 이러한 간절함을 상제님께 심고 드리며 용기를 얻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연구하는 정성을 다하고자 한다. 아직은 주어진 전경과 몇몇 자료에 의지해서 단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척박한 작업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희망은 소설을 쓰는 과정을 통해 단주를 연구하는 계기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다. 일반적으로는 학술적 연구와 수많은 논문의 기반 위에서 문학이나 혹은 인문학적 컨텐츠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사상적 문화적으로 견고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으로 소설이라는 창작의 자유로움이 오히려 사고의 유연함과 창의적인 발상을 북돋아 그 주제를 내면 깊이 들여다보고자하는 의욕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나에게 단주 연구의 동기를 유발하기도 했다. 이 글은 그저 시작이며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앞으로 소설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이루어지는 자료수집과 연구를 토대로 최종적으로는 단주에 관한 학술적 논문을 쓰고자 한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쓰지 못한 이야기,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앞으로 지면을 통해 나타날 때 까지 나는 눈을 열고 귀를 열어 많은 시간과 공간을 걸어 다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그저 소설로 읽혀지길 바란다. 짧은 시간동안 모은 자료로 스토리를 구성하였기에 사실 관계에 대한 오류가 있더라도, 혹은 억지스럽고 발칙한 상상력이 다소 불편스럽더라도, 부디 읽는 이의 깊은 아량을 구할 뿐이다.                                             
                                             
 
 
 2013년 10월 1일 왕방산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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