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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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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분수의 자각으로 욕망을 다스리자

분수의 자각으로 욕망을 다스리자
 
 

연구원 정지윤

 
  지금 우리 사회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사회적 합의가 어겨지고 사회적인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가장 청렴해야 할 공무원이 재물욕에 빠져 공금횡령을 한 후 도주하는가 하면, 사회적 지위 여하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지키겠노라고 히포크라테스 선언문을 낭독한 의사는 고위층의 청탁으로 양심을 저버린 진단서를 발부한다. 그리고 청탁을 행사한 사람은 그 진단서 덕분에 형집행정지로 죄에 대한 대가를 초호화판 병실에서 보낸다. 이미 상제님께서도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01라고 안타까워하셨듯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위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욕망은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어 간절히 바라고 원함, 또는 그 마음”으로 결핍된 무엇인가를 바라면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내면적인 상태를 말한다.그런데 이 내면적인 상태를 말하는 욕망의 단어는 ‘승리욕, 지식욕’ 등과 ‘열망, 기원, 희망’ 과 같이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지만 ‘욕심, 욕, 탐욕’에서 느껴지듯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이처럼 다의적 의미를 가진 욕망은 상제님께서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기 때문에 항상 사욕을 버리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고 말씀하셨으므로02 인간이 버리고 다스려야 할 욕심, 욕, 탐욕의 의미로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욕망을 버리고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나의 방법으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 범위 내에서 행동함으로써 욕망의 다스림이 시작된다. ‘분(分)’이란 사물을 분별하고 헤아리는 지혜, 곧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다.’, ‘분수를 지키다.’는 주로 자기 신분이나 처지에 맞는 한도를 안다는 것으로 쓰인다. 즉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제를 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물론 예전에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라는 말들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분수라는 말이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고 남을 억압하는 단어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으로 사용된 예라 생각한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일화를 소개하면, 아인슈타인은 1950년대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돼 달라는 요청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어쩌면 독일 태생으로 유대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유대 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직을 거절한다. 거절한 이유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나는 평생을 물질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지금까지 행정업무나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일을 해본 경험이 없으므로 그와 같은 고위직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그래서 오로지 그가 잘 할 수 있는 그것에 몸담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무능한 대통령이 됨으로써 수없이 어리석은 일들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이 지금처럼 위대한 과학자로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맞는 한도를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잘 안다는 것과 유사한 의미라 하겠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과 자기의 임무를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03가 주어진다. 이 임무는 양이 적은 자에게 과중하게 주면 배가 터질 것이고 양이 큰 자에게 적게 주면 배가 고플 터이니 각자의 기국(器局)에 맞추어 맡게 되어 있다.04 그러므로 자기가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거기에 걸맞은 임무가 맡겨지기 때문에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면 자기의 임무를 모르는 사람이다.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몫이 있고 자기의 형편과 처지, 자기의 실력과 정도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맞게 언행하는 것이 자기 분수를 자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신 이유는 삼계의 원한을 풀어 앞으로 원한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여 세상을 화평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자기 도량에 맞지 않는 인간 의욕(意慾)의 발동은 허영과 야망으로 넘쳐 허황된 꿈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허황된 꿈으로 화하면 실망과 후회는 물론 자기도 남도 원망하게 되어 한을 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분수 자각을 통한 욕망의 다스림은 인간의 의욕 발동을 반성하고 조정하여 앞으로 원한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세계가 상생(相生)의 화평세계(和平世界)로 나아가기 위한 시발점이라 할 것이다.
 
 

01 교법 1장 1절.
02 교법 3장 24절 참조.
03 교법 2장 17절 참조.
04 교법 2장 54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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