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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우리 놀이의 문화사 : 풍년을 향한 열망과 몸짓, 정월 대보름의 기풍(祈豊)놀이
풍년을 향한 열망과 몸짓,
그 아름다운 달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부터 양력 1월 1일의 해맞이 행사가 밀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붉게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동해안으로 몰리는 현상은 전통적 세시풍속에는 없던 기이한 일이다. 을미개혁 시 태양력을 받아들인 이후, 100년이 넘게 양력을 따르고 있다. 우리 생활이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에 맞춰 편성된 까닭에 해를 숭배하는 문화까지 번진 것일까? 전통적인 우리 문화는 달의 운행과 원리에 따라 이뤄졌으며, 전통적 세시풍속일은 대부분 음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늦은 밤, 대지를 교교하게 비추던 그 아름다운 달을 추구하던 문화는 어디로 갔을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도심 속 불빛으로 인하여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정월 대보름, 놀이의 박람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달보기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태음력이라는 동양의 과학적 월력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이다. 고대인들은 달의 차고 일그러짐을 보면서 세월의 변화를 인식하고,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였다. 깜깜한 시골 밤에 떠오른 밝은 달을 한번쯤 경험해본 분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달의 변화로 세월을 인식하는 사회에서 정월 대보름은 중요한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다. 정월 대보름을 도교적인 명칭인 ‘상원(上元)’이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순조 때의 유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보름날 밤에 온 집안에다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 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것과 같이 한다”라고 하였다. 정월 대보름은 그해 처음으로 완전히 찬 달을 볼 수 있는 날이니 설날처럼 한 해가 시작되는 기점이 된 것이다. 국제적 박람회에서도 포인트가 되는 전시장이 있듯이, 놀이의 박람회에서도 정월 대보름의 의미를 특별히 반영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풍년을 바라는 열망이 깃든 ‘기풍(祈豊) 놀이’이다. 기풍놀이의 근본에는 역시 풍만한 보름달이 있다. 대보름에 산 위로 뜨는 보름달의 형상을 가지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달보기는 전국적으로 성행한 풍속이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보름달의 모습, 달빛, 높낮이로 그 해의 농사일과 기후 등을 점치고 있다. 일례로 부산의 녹산동 산양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매년 달이 뜨는 것을 보기 위한 자신만의 고정된 위치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해에 달 뜨는 높이와 위치 등의 차이점을 쉽게 알기 위해서이다. 이 장소에서 대보름 저녁에 달보기를 하는데 달이 밑으로 뜨거나 희미하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달이 붉으면 그 해에는 날씨가 가물어 농사가 잘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달보기 풍속은 그 내용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전국적으로 분포된 전통 놀이였다.
승지들이 서로 이기기를 힘써서 다투니
한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민가에서는 마당에 높게 볏가릿대를 세웠다. ‘볏가리’는 볏단을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말하는데, ‘볏가릿대’는 풍년 기원을 위한, 높게 세운 장대를 일컫는다. 이 장대에 벼, 보리, 기장, 수수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싸서 매달아 두는 것이다. 장대를 높이 세우는 일은 ‘입간(立竿) 민속’의 하나로서 자신의 소망을 하늘에 전달하기를 바라는 기원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높은 장대에 오곡을 매달아 둠으로써 풍년을 기원하는 열망을 하늘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 볏가릿대 세우기는 마을의 공동체 행사로 진행되기도 한다. 충남의 당진·서산 지역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협동을 하여 들판에 커다란 볏가릿대를 세운다. 먼저 큰 소나무를 베어다가 맨 꼭대기에 오곡을 헝겊으로 싸서 매달아 세워두고, 동아줄을 소나무 장대에 달아서 길게 늘어뜨린 후에 땅에 고정시켜 둔다. 멀리서 보면, 흡사 알곡이 잔뜩 매달려 고개 숙인 벼와 같다. 볏가릿대 형상 자체가 풍년을 뜻하는 주술적 상징인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풍물패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로 이어진다. 이처럼 볏가릿대 세우기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서 마을 공동체의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 놀이였다. 조선시대 민가에서 볏가릿대를 세워서 풍년을 기원했다면 이에 비교할 만한 것으로서 궁궐의 내농작(內農作)을 들 수 있다. 내농작은 ‘가농작(假農作)’이라고도 한다. 이는 대보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농잠(農蠶)의 형상을 만들어서 궁궐 안에 세워두는 것이다. 농잠의 형상을 만드는 일은 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시경(詩經)』의 칠월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본뜬 것이다. 「빈풍」 칠월 편은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고, 누에를 쳐서 길쌈을 하는 농가의 일상을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빈풍」 칠월 편을 재현하기 위해서 기암괴석, 산천초목 등의 자연환경, 농사일하는 모습, 양잠과 길쌈하는 장면 등을 만들어 세워둔 것이 ‘가농작’이다.
풍년 기원의 진정한 열망과 몸짓
올해 구제역 여파로 인하여 대보름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지만 근래 들어 정월 대보름 행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마련하고자 대보름 행사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나 각종 문화기관에서도 대보름 행사를 만들고, 다양한 놀이를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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