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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 신명의 생애 : 구순(寇恂) 神明열전
구순(牛星) 神明열전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두 장군께서 어찌 사사로운 다툼을 할 수 있소? 오늘 짐이 그대들을 화해시키리다.』 그리하여 구순과 가복은 함께 앉아 매우 즐거워하다가 끝내는 같이 수레를 타고 나가서 친구의 의리를 맺고 헤어졌다. 구순은 영천으로 돌아왔다. 구순은 본래 학문을 좋아하여 향교(鄕校)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좌씨춘추(左氏春秋)에 능통한 사람을 초빙해다가 몸소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다. 건무 7년 주부(朱浮)를 대신해서 집금오(執金吾)가 되었다. 그 다음 해, 왕을 따라가서 외효(隗囂)를 공격하였으나 영천(穎川)의 도적들이 떼지어 일어나 왕은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면서 구순에게 말하였다. 『영천은 장안(長安)에 가까우니 때맞추어 평정하는 것이 좋소. 그러나 오직 경만이 그들을 평정할 수 있을 따름이었는데 짐의 행렬을 쫓아 출병하였으니 그대의 우국충정(憂國忠情)을 알 수 있겠오.』 『영천의 도적들은 경솔하여서 폐하께서 멀리 험난한 지대를 넘어 농(朧)ㆍ촉(蜀)땅에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교활하게 그 틈을 타서 난리를 피우고 있을 따름입니다. 만약 폐하의 군대가 남쪽으로 향해 온다는 소식을 그들이 든는다면 반드시 놀라고 당황하며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원컨대 신이 무장하고 선봉대가 되게 하여 주소서.』 이전에 외효의 장수인 안정(安定)의 고준(高峻)이 병사 만여 명을 이끌고 고평현(高平縣) 제일성(第一城)에 근거하고 있었다. 왕은 대조(待詔) 마원(馬援)을 시켜 고준의 항복을 받아내니 그 이후로 하서(河西)의 길이 뚫렸다. 중랑장(中郞將) 래합(來歙)은 법제에 따라 고준을 통로장군(通路將軍)에 배수하고 관내후(關內侯)로 봉해주었는데 그 뒤 고준은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에게 속하여 함께 기(冀) 땅에서 외효를 포위하였다. 한(漢)의 군사들이 패퇴하자 고준은 옛 군대로 돌아가 다시 외효를 도와 농저지방을 지켰다. 외효가 죽게 되자 고준은 고평현에 근거하면서 주살 당할까 두려워 굳게 지키고 있었다.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 경합(耿盒)은 태중대부(太中大夫) 두사(竇士), 무위(武威) 태수인 양통(梁統) 등을 이끌고 고준을 포위하였으나 1년이 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건무 10년 왕은 관내(關內)로 들어와 장차 몸소 그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구순이 왕을 따라다니고 있다가 간언하였다. 『장안(長安)은 낙양(洛陽)과 고평(高平)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전하기가 가깝고 편리하며 안정(安定)ㆍ농서(朧西)지역도 반드시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을 터이니 이것은 한 곳에 조용히 거하면서도 사방을 제어할 수 있는 요새라는 뜻입니다. 지금 병사와 말들이 지쳐있어 위험한 때이므로 견고한 병사 만여 명으로 지난 해 영천을 치던 것과 다르니 경계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고준은 정예병이 만여명이고 모두 강한 궁수이며 서쪽으로 농(朧)으로 통하는 길이 막고 있어서 해가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를 항복시키려고 왔는데 도리어 그의 사신을 죽여버린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대가 보낸 군사(軍師)가 무례하여 이미 죽여버렸소. 항복하고 싶거든 빨리 항복하고 항복하고 싶지않거든 굳게 지키시오.』 고준은 두렵고 당황하여 그 날로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여러 장군들이 구순에게 경하하면서 말하였다. 『감히 묻습니다. 그의 사신을 죽이고도 성(城)의 항복을 받아냈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황보문은 고준의 심복(心腹)이라 바로 고준이 계책을 얻은 사람이오. 이제 와서 사양하며 굴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항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오. 그러니 그를 살려주면 계책을 짜낼 터이요, 그를 죽이면 고준이 기댈 바를 잃게 되어 그래서 항복한 것일 따름이오.』 『과연 저희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구순은 마침내 고준을 낙양으로 돌려보냈다. 구순은 경(經)에 밝고 행실을 잘 닦아 명망이 조정에서 두터웠으며 받은 녹봉은 친구ㆍ고인(故人)과 따르는 관리ㆍ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항상, 『내가 사대부(士大夫)의 몸으로 이런 위치에까지 이르렀는데 어찌 홀로 그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의 뛰어난 점에 감복하면서 재상(宰相)의 그릇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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