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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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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經』민속자료 : 시루

시루

 

 

글 교무부

 

  “… 상제께서 다시 주인에게 어김없는 다짐을 받게 하신 뒤에 공사를 보셨도다. 그 여인은 날마다 머리를 빗고 목욕재계한 뒤에 떡 한 시루씩 쪄서 공사 일에 준비하니라. …”(행록 1장 29절)

 

 

  시루는 떡이나 쌀 등을 찌는 용기(容器)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시루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 초도패총(조개껍질이 바닷가나 호숫가에 퇴적되어 있는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어서 황해도 안악(安岳)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한 여인이 긴 젓가락으로 시루 안의 음식이 익었는지 찔러보는 그림이 담겨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삼국시대 이전 농경시대부터 곡식을 익히는 도구로 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가 지나면서 시루에 음식물을 담거나 이동의 편리를 위해, 양 측면에 손잡이가 덧붙여진 것 외에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변형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근래에는 흙을 빚어서 만들기 보다는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난 스테인리스 용기가 쓰이고, 솥[鼎] 안의 물을 데우기 위해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폈던 것이 이제는 전기가 불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만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증기를 이용하여 시루 안의 내용물을 쪄지게 하는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시루는 바닥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뜨거운 증기가 올라와 시루 안의 음식이 쪄지게끔 되어 있으며, 내용물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윗부분의 테두리가 넓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음식을 찔 때 직접 열을 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솥[鼎]이나 다른 조리도구와 결합하여 사용한다.

  사용 방식은 내용물이 구멍을 통해 새지 않도록 안쪽바닥에 시루밑(시루의 구멍을 막는 깔개)을 깔고, 시루바닥과 둘레가 꼭 맞는 솥을 골라 물을 붓고 시루를 앉힌다. 이때 시루와 솥이 닿는 부분에서 김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시룻번을 바른다. 시룻번은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만드는데, 지름 1㎝ 정도로 가늘고 길게 만들어 솥[鼎]과 시루 둘레에 돌려가면서 밀착시킨다. 마지막으로 윗부분은 시루방석이라 하여 짚으로 두껍게 엮은 것을 뚜껑으로 덮었다. 이는 솥뚜껑이나 나무뚜껑으로 덮개를 하였을 때보다 내용물이 질지 않고 고슬고슬하게 쪄지게 하기 때문이다.

  시루는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기도 했다. 하얗고 고운 쌀가루를 앉혀 떡을 쪄낸 다음 신에게 시루 째 바치는 것을 ‘치성시루’라고 한다. 또 혼인이 이뤄지기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함(函)이 들어오거나 집안에서 고사를 지낼 때 쓰는 것을 ‘봉치시루’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콩나물시루·약(藥)시루·떡시루 등이 있다. 이렇듯 시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나 용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집안의 대소사에 필수적인 용기로 내려오고 있다.

 

 

 

참고문헌

ㆍ『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ㆍ『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ㆍ장상교, 『시루의 형태와 이용양상』, 생활문물연구 제9호, 국립민속발물관, 2003

ㆍ오후배, 『시루의 형식분류와 변천과정에 관한 시론』,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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