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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종
사군자(四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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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도장 여러 곳에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사군자’를 찾아볼 수 있다. 유교에서는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불렀으며,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를 탐구하고 덕행을 쌓음으로써 인격적으로 가장 성숙된 군자가 되기를 갈망하였다. 또한 선비들은 식물 중에서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네 가지를 지조와 절개, 인품을 고루 갖춘 군자의 덕을 가지고 있다 하여 ‘사군자(四君子)’라 불러왔다. 

  중국에서는 송(宋)나라 이전부터 대나무, 난초, 매화를 각각 ‘군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여기에 국화를 추가하여 ‘사군자’라고 부르는 관습이 생긴 것은 명대(明代)에 이르러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명나라뿐 아니라 조선의 많은 사대부와 문인(文人)화가들도 사군자를 직접 가꾸고 그리면서 이것에 담긴 뜻을 본받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일들을 수양의 한 방법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한편 사군자는 매(梅)·난(蘭)·국(菊)·죽(竹)의 순서로 불리는데 그것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화는 ‘설중매(雪中梅: 눈 속에 핀 매화)’라는 말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만물이 눈에 덮여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추위를 꿋꿋이 이기고 꽃을 피우는 점 때문에 매화는 불의와 세속에 굴하지 않으며 홀로 우뚝 서는 선비 정신과 상통한다고 여겨져 왔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도 ‘호당매화(湖當梅花)’라는 시조에서 ‘천연한 옥색(玉色)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넘고, 고고한 기질은 뭇 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여들지를 않네’라고 하여 매화가 세속을 초월한 고결한 선비정신을 가진다고 읊었다.      

  여름을 상징하는 난초도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난초는 숲 속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덕을 닦고 도를 세우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군자에 비유되어 왔다. 정도전(鄭道傳, 1337∼1398)도 “난초는 그 본질의 됨됨이가 양기(陽氣)를 많이 타고 났으므로 그 향기로움의 덕을 군자에 비길 수 있다.”고 하여 난초를 군자와 대응시키고 있다.  

  국화는 모든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기 때문에 선비들은 그 모습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겼다.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이정보2)도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 나뭇잎이 다 떨어진 추운 계절)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은 너뿐인가 하노라’는 시조로써 국화의 절개를 예찬하고 있다.  

  대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곧게 자라는 성질 때문에 충심과 강직,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예로부터『시경(詩經)』「위풍(衛風)」에서는 ‘훌륭한 저 군자여, 잘라내고 다듬고 쪼고 갈아 자신을 닦는도다’라고 하여 대나무를 군자라고 하였으며, 조선중기 문신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도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리도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고 하여 대나무를 칭송하였던 것이다.

또한 옛 선비들은 군자의 취할 바인 ‘대쪽같은 절개’를 중히 여겼는데, 100년 전 을사늑약의 체결로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충신 민영환이 자결로써 일제에 항거하였을 때 그가 숨을 거둔 곳에서 돋아난 것이 ‘혈죽(血竹)’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옛 선비들이 군자의 품격을 부여하여 늘 가까이하고 본받고자 하였던 ‘사군자’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그림의 소재가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사군자의 그 품성(稟性)만큼은 우리 수도인들이 적극 취하여 수행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무부>

 

                                                                                                                                         

1)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림은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벽화에 있는 그림임.

2) 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영조(英祖)의 신임을 받아 이조판서까지 오른 인물로 성품이 강직하여 직언을 서슴치 않아 수차례 파직당하였으며, 시조에 뛰어나 78수의 작품을 남긴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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