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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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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도교방문단 취재기 : 대만 도교 정일도(正一道)대표 이유곤 외 15명의 대순진리회 방문 취재기

대만 도교 정일도(正一道)01대표 이유곤 외

 

15명의 대순진리회 방문 취재기

 

 

글 교무부

 

지난 5월 4일 ~ 8일 동안,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대만의 정일도교단심홍도회장인 이유곤 도사를 대표로 한 총 16명의 도교 관련 인사들이 도장을 방문하였다. 종단에서는 교무부장과 2명의 연구위원 그리고 통역을 위해 중국에서 학업을 마다하고 달려온 박마리아 선감(양산방면)이 방문단의 안내를 맡았다.

 

 

▲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둘러보고 있는 일행들

 

 

5월 4일

  오전 11시 대만의 중정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1시 45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12시 30분이 되어서야 방문단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이유곤 도사 부부가 나오고 뒤이어 낯익은 그의 제자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문단 일행은 이유곤 도사를 비롯해 총 16명(남 10명, 여 6명)이었고, 일행 중에는 제법 젊고 앳된 친구들도 있었다.

  일정에 따라 첫 행선지인 대진대학교를 가기 위해 도장에서 마련해 주신 45인승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인솔을 책임진 교무부장의 간단한 인사 소개가 있은 후 방문단 일행의 개인별 인사가 있었다. 일행 중에는 한국을 50번이나 다녀간 분도 있었고, 대만사범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도 있었으며, 대만의 보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인 4명의 학생들도 있었다.

 

▲ 대진대학교 방문

 

 

  3시 20분에 첫 방문지인 대진대학교에 도착하자, 학교 본부에서는 총무처장과 대외협력과장이 본관 입구까지 나와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본관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학교 홍보 동영상을 시청한 후에 도서관과 체육관, 예술관 등을 두루 관람했다. 모두들 학교의 첨단시설과 큰 규모에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후 5시가 되어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방문하기 위해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미시령고개를 넘을 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어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오후 8시 40분에 저녁식사를 위해 횟집에 도착해서 미리 마중나온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총무부장(선감 정경진)등과 함께 밤이 늦도록 만남의 기쁨을 나눴고, 숙소인 하일라비치 콘도에서 여장을 풀었다.

 

 

5월 5일

  긴 시간의 여행으로 피곤도 했을 법한데, 모두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위한 준비를 서둘러 마쳤다. 오전 7시, 고성의 한 식당에서 순두부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난 후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방문했다. 먼저 도장의 참배 대기실에서 배례하는 요령을 익히고 나서 영대에 올라가 참배를 했다. 참배를 마치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원장(선감 김주석)과 총무부장의 안내로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처음엔 모두들 긴장한 눈빛이었으나 도장의 아름다움에 이내 감탄을 연발했다. 미륵불 참배와 각 건물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응접실에서 토성수련도장 원장의 주재로 간단한 다과를 가졌다. 짧은 대화 시간을 예상했으나 방문단 일행의 종단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질문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졌다. 특히 일행 중 한 명인 사총휘 교수(대만사범대학 종교학과)는 금강산 연수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 오대산 월정사에서

 

 

▲ 여주본부도장에서 읍배를 드리는 일행들

 

 

  오전 11시에 방문단의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토론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대산 월정사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월정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산채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한국의 음식 맛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한국의 전통사찰 중 하나인 월정사를 관람하고, 다음 행선지인 여주본부도장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오후 4시, 여주본부도장에 도착하여 연구위원들의 안내로 도장을 관람했다. 숭도문(崇道門)에 들어서서 본전을 향해 읍배를 드리고, 청계탑(靑鷄塔)과 돌병풍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마침 이날 도장에서는 입하치성(立夏致誠) 참례를 위해 많은 수도인들이 분주한 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특히 내수들이 입은 한복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도장 관람을 마친 후 여주본부도장 원장(선감 윤은도)과 총무부장(선감 김경근), 수도부장(교감 곽동섭) 등이 방문단을 접견하고 서로 인사를 나눴다. 6시가 되어 방문단은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다음날 입하치성에 참례하기 위해 일찍 숙소(일성콘도)로 들어갔다.

 

 

5월 6일

  오전 4시, 방문단 일행은 이른 새벽에 도장에 도착하여 여러 임원들의 도움으로 한복을 갈아입었다. 그들 중 몸이 불편한 두 사람과 덩치가 너무 커서 한복이 맞지 않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치성에 참석했다. 치성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더니, 이들은 2시간 동안을 거의 꼼짝 않고 시립해 있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치성을 마친 후 정성을 드린 소감에 대해 물었더니,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힘들지 않고 오히려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중 한 젊은 학생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보다 강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서 꼭 대순진리회에 입도를 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전 8시부터 신축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이날 토론은 교무부장과 차장을 비롯해 여러 연구위원들이 함께 했으며, 여러가지 질의와 응답이 오고 갔는데, 특히 이들은 이토록 짧은 시간에 대순진리회가 경이적인 발전을 이룬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하였다.

 

▲ 여주본부도장원장과의 담소시간

 

 

▲ 연구위원으로부터 도장소개를 경청하는 방문단

 

 

▲ 입하치성을 모신 후

 

 

  오전 11시에 음복이 마련되었는데, 음복하는 내내 치성과 토론에 참석했던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일행 중에 도교를 연구하는 사총휘 교수와 보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생들의 질문이 유난히 많아 2차 토론을 한 후에야 비로소 숙소로 자리를 옮겨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중 7명은 휴식을 마다하고 대순진리회를 체험하기 위해 자청하여 입도치성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몇 명의 일행들은 자신들에게는 입도치성을 권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삐친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방문단이 오후 4시에 여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자기축제를 둘러보는 것으로 여주에서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5월 7일

  오전 7시, 용인 민속촌을 관람하기 위해 숙소에서 짐을 챙겨 출발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9시에 민속촌에 도착했다. 우리 조상의 전통 생활모습을 재현한 민속촌을 관람하고 나서 오후 2시에 서울 종로에 위치한 경복궁에 도착하였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가장 중심이 되는 궁궐로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설명과 함께, 중국어 안내 도우미로부터 경복궁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궁 관람을 마쳤다. 곧이어 한국적인 문화가 산재한 인사동거리와 서울 시내를 관광했다.

  오후 7시, 한국의 전통 민속공연과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한국의 집’에서 만찬을 가졌다. 한정식 뷔페로 차려진 전통음식을 먹고난 후 공연무대로 장소를 옮겨 전통 민속공연을 관람하자 그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모두들 한국의 맛과 멋에 푹 빠진 밤이었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5월 8일

  이제 방문단이 대만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에 호텔에 도착하니 모두들 식사를 마쳤다고 했다. 혹여 시간이 늦을까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출국장에 도착하고 수속을 마친 뒤, 이런 저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 못내 이별의 아쉬움이 남는다. 출국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이유곤 선생님으로부터 대순진리회가 놀라운 종교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대순진리회가 신들의 축복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 믿어집니다. 이 세상에 대순진리회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다음은 5월 6일 아침, 입하 치성을 마치고 난 뒤 신축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있었던 대만 정일도 관계자들과 연구위원들과의 질의·응답 중 중요한 것을 간추린 것이다.

 

 

문 : 대순진리회가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큰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떤 큰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사실입니까?

 

답 : 돈이 있었기 때문에 대순진리회가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종교라는 것이 돈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순진리회의 발전은 오직 도인들의 진실한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문 : 대순진리회가 어떻게 짧은 시간에 큰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 무릇 한 종교의 발전에 대한 평가는 외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순진리회 도인의 입장에서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우리들에게서 대순진리회의 발전 이유를 듣고 싶다면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서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대순진리회는 신명의 기운과 신명의 조화로 인해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상제님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천지신명들의 조화와 기운이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누구든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뒤 주어진 법방에 따라 정성을 드리고 수도를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심(一心)을 가진 바에 따라서 신명의 큰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겪어보지 않은 도인들이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습니다. 신명의 기운이 있고 신명의 조화가 있으니 대순진리회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 대순진리회에는 어느 종교도 갖지 못한 위대한 진리가 있기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신명의 조화가 있다 하더라도 현대인들이 당면한 제반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위대한 절대 진리가 없었다면 대순진리회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순진리회의 진리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도주님께서 종교적 법리로써 정립한 것으로, 크게 보아 종지·신조·목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 체계는 종교와 이념 차이로 인한 분쟁 등 인류가 겪고 있는 제반 문제나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등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까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상이며, 또한 미래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진리입니다. 짧은 시간에 이 모두를 설명해 드릴 수 없음이 매우 유감스러우며, 이에 대한 것은 추후 다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대순진리회가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이끄신 도전님의 탁월한 영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거대한 단체가 형성되고 이것의 운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조직 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조직을 제대로 체계화시키지 못한다면, 그 단체는 결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각종 조직과 법방을 통해서 도인들을 이끄신 도전님의 영도력이 대순진리회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의 답변이 종단의 입장에 치우쳐서 설명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 답변을 신도의 체험, 진리 체계, 조직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이해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문 : 대순진리회는 어떤 사회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답 : 대순진리회는 사회와 민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구제신앙에 따라,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종단의 3대 중요사업으로 지정하여 연차적인 계획에 따라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호자선사업은 불우이웃돕기, 신체장애자 돕기, 양로원·고아원 돕기 등 소외된 사람들의 구제에 힘쓰는 것이며, 사회복지사업은 제생병원 등 의료사업과 경로잔치, 자연보호 사업, 거리정화운동 등 국민건강의 증진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사업입니다. 교육사업으로는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교법인 대진대학교를 설립하였고, 종합대학 1곳과 6곳의 고등학교를 설립·운영 중이며, 대순장학회에서는 우수 및 불우학생들에게 막대한 장학금을 매번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은 모두 도인들의 월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도인들이 매월 1회씩 모시는 성금은 70% 이상이 사회에 환원되며, 이 모든 것은 투명한 회계감사를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문 : 입도의식을 행하고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죄가 되는 것입니까?

 

답 : 우리의 경전인 『전경』에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쫓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입도치성을 하였다 하더라도 도를 닦아 도통할 수 있는 인연이 없다면 결국 수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입도치성 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순진리회에서는 입도치성 후 3개월 이상 성을 모시지 않으면 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문 : 치성을 모실 때 장엄한 주문을 읽는 것을 봤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 주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아마 정일도에도 읽는 주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순진리회에서도 여러 종류의 주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문을 우선 ‘신명을 부르는 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주문을 읽으면 신명이 응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주문을 보면 진법주, 운장주, 24절주, 28수주 등 많은 부분이 신명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문을 읽으면 신명을 부르는 것이므로 신명이 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이 응하면 그 기운을 받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주문을 ‘신명을 응기시켜 신명의 기운을 받게 하는 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신명의 기운을 받으면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 주문은 ‘신명을 응기시켜 그 기운을 받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문 : 대순진리회의 교리에는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 종교를 지향하는 대순진리회가 이런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세계종교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까?

 

답 : 대순진리회의 교리를 보면, 한국 사람만이 도에 통한다거나 한국 사람만이 구원받는다는 식의 국수주의적인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전경』에 따르면 상제님께서는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주리니…”라고 하셨으며, 피부색이나 국적을 전혀 따지지 않으시고 천하 창생을 모두 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는 한국 사람들만을 위한 종교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전경』에 따르면 상제님께서는 한국을 상등국으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 한국이 세계의 문명을 주도하여 나간다는 의미이지, 결코 한국이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이용하여 타국의 머리 위에 군림한다는 상극적인 패권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시민 모두가 해원상생·보은상생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곧 포덕천하가 실현된 개벽시대입니다. 이런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면 새 시대의 패러다임인 상생대도의 사상적 뿌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의 문명을 주도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두고 한국이 상등국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상등국이 된다는 교리가 있다고 해서 대순진리회가 세계종교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재 세계종교라고 인정받는 불교나 기독교도 원래는 인도나 이스라엘의 지방색을 많이 담고 있는 민족종교였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세계 포교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한국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한복을 입고 한국어로 주문을 읽는 등 한국의 문화를 담고 있는 한국의 민족종교입니다. 대순진리회도 해원상생과 보은상생, 포덕천하의 이념을 전 세계에 널리 실현시킨다면 기존의 불교나 기독교를 뛰어넘는 세계종교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 국제회의실에서 가진 질의·응답 시간

 

 

▲ 대순진리회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정일도회원

 

 

▲ 음복을 하고 있는 대만 보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생

 

 

문 : 신앙의 대상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의 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 정일도에서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을 모시며, 그분의 능력을 ‘비와 번개를 다스리는 것’ 정도라고 믿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이분의 능력이 단순히 비나 번개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모두 주재하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시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 삼라만상을 주재 관장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문 :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께서 그렇게 절대적인 하느님이시라면 왜 이제까지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까?

 

답 : 병, 재물, 수명 등 각각 한 부분을 다스리고 주재하는 신들이나 혹은 산신, 토지신, 용왕같은 특정 지역을 맡아 다스리는 신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유는 인간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께서는 원래 ‘구천대원조화주신’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정사(政事)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전경』에 ‘신성·불·보살 등이 상제가 아니시면 혼란에 빠진 삼계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 하므로’라는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즉 예전에 삼라만상을 관리했던 분은 신명들이었지 구천상제가 아니셨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명들만 알았지 구천상제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들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 잡아주시도록 구천상제께 하소연하였고, 이에 따라 구천의 상제께서는 비로소 천지인 삼계의 대권을 다시 주재하여 세상을 구하게 되셨으니, 그 이전의 인간들이 구천상제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개벽시대를 맞이하여 구천상제께서는 삼계의 모든 대권을 주재하여 새로운 천지를 열어나가시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순진리회에서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를 최고신인 하느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01 정일교(正一敎)라고도 불리는 정일도(正一道)의 연원은 후한(後漢)말 장릉(張陵, 또는 張道陵)이 만든 오두미도(五斗米道)이다. 원래 태학의 학생이었던 장릉은 만년에 유학이 장생(長生)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장생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금단(金丹)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사천성의 어떤 산으로 들어가 도서(道書)를 만들고 주문을 개발하여 병의 치료에 이용하여 수많은 제자를 모았다고 한다. 장릉에 의해 기초가 만들어진 오두미도를 확고한 체제를 갖춘 종교 조직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그의 손자 장로(張魯)였다. 오두미도란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이들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 대가로 쌀 다섯 말 즉 오두미(五斗米)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세력을 형성하여 한중(漢中, 지금의 섬서성(陝西省))에 독자적인 종교왕국을 건설하였다. 장로가 그의 조부를 천사(天師)로 불렀기에 후세 이 계통을 천사도(天師道)라고 하였다. 1271년 몽고의 원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난 후 천사도는 도교 교단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았고 정일교(正一敎)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양자강 이남을 장악했다. 이러한 형세는 명·청 시기까지 지속되었지만 5·4운동 이후에 세력이 급속히 하락하였으므로, 사실상 오늘날 정일교의 명맥은 중국이 아닌 대만에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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