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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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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코너 : 상한 우유 2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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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우유 2병

 

 

원대 10방면 평도인 이정선 (대구 한의대 한문학과)

 

 

 

  일하다가 허기를 느끼게 되면 마시려고 사무실 책장에 쪼르륵 세워 둔, 사은행사 1+1 덤으로 딸려온 모 회사에서 제조된 노란 딱꿍의 200ml 우유 2개.

  가난한 자취생이 그것을 아낀답시고 지난주에 미처 마시지 못하고 그냥 남겨두었다가 주말을 훌쩍 넘긴 오늘에야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식사 대신 카페라떼(커피우유) 만들어 마셔야지 하며 학교에 가져왔다. 저녁 여섯시에나 수업이 시작되는지라 퇴근하자마자 학교로 달려가기 바쁘고 딱히 먹을 만한 것도 없는 터에 퇴근하면서 가방에 챙겨 넣을 때까진 아주 뿌듯했었더란다.

  오늘은 5월 7일이건만 유통기한은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070505라고 쓰인 우유병 표면 고딕체 표기가 눈에 와 닿았지만 고민은 잠시, ‘어차피 날짜 지나도 하루 이틀은 괜찮아!!!’ 라는 마음의 외침을 따르기로 했다.

  라떼용 커피분말과 우유를 섞기 위해 우유의 개나리색 플라스틱 뚜껑 테잎을 도르륵 뜯어낸 다음 병을 흔들어 고체와 액체를 섞어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우유병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들이켜 마시는 과정까지는 무탈했고 순조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얀 소젖을 들이키는 순간 입 안에는 신선한 우유도 아니고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우유도 아닌 몽글몽글 시큼 떨뜨름한 비린내 100% 단백질 타피오카가 굴러들어온다. 우유를 최후의 최후까지 상온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니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날씨에 그만 상해버렸던 것이다.

  “꽥 !!!”

  그 순간에도 목젖은 움직여 “꿀꺽” 시큼한 요구르트 향과 비릿한 단백질 덩어리로 이루어진 액체도 고체도 아닌 물체를 삼키고야 말았다.

  “어쨌든 치즈도 상해버린 우유잖아.”

  한 입 더 마셔볼까 하고 부글대는 하얀 반고체 우유병에 입을 대려는 순간,

  “너 미쳤어!!!”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의해 먼저 저지당하고 딱 한입 빨아 마신 1/3요구르트, 1/3 치즈, 1/3 우유를 화장실로 달려가 가열차게 뱉어내고 수세식 변기물과 함께 씻어내 버려야 했다.

  조금 누렇게 변색해 가는 오물받이 도자기 위로 우유 빛이 완연한, 과거엔 분명 쓸모 있었던 소젖이 사람의 변 대신에 채워지고 가볍고 아쉬운 발길질로 쓸모없음을 인정받은 채 버려진다. 공짜로 딸려온 것이지만 시가로 따지자면 천원의 값어치가 썩은 내를 두르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강의실로 돌아와 안타까운 마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려니 혀가 종전의 뭉클한 감각을 기억하고 계속 거부반응을 보였다. 후각도 덩달아 아기가 토해놓은 젖비린내에 젖어있었으니, 시큼하고 비릿한 감각을 누가 덤으로 딸려온 우유 아니랄까봐 더해준다. 과연 내가 그 우유를 다 마셨다면 큰 탈이 났을까? 늘 나를 괴롭혀오던 장을 다독거려 장 청소를 도와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주인의 무관심과 “음식은 아끼면 똥 된다.” 라는 중요한 격언을 망각한 결과물로 탄생해버린 제 본분을 다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무참히 패배해 버린 상한 우유 2병.

  이 일이 윤동주가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내며 나를 반성하고 성찰할 녹이 슨 구리거울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우유들은 제때 해야 할 과업을 수행하지 않고 미루어만 두다가 이도저도 되지못한 나와 닮은 것 같았다.

  똑같이 발효되었지만 오물로 버려진 오늘의 내 우유 두병과 뱃속에서 유익하게 삭아 변으로 변신했을 우유, 혹은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었던 결과로의 요구르트나 치즈. 둘이나 셋 모두 마지막 행선지는 화장실의 변기였을지라도 갖게 되는 의미나 값어치는 다르다.

  현재 나는 오늘 상해서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던 우유처럼 상해가고 있다. 변질되고 부패해서 스스로를 화장실의 변기 속으로 소거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통해 도장이나 회관을 드나들며 가까이 했고 공기 같았던 道라는 진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바빠’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 ‘귀찮아’ 정도의 나태함으로 싹터서 ‘왜?’ 라는 의구심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아니야’ 식의 도피를 감행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돌아서서 내 소리만 지르고 무조건 부정하려 들었다. 그런 식으로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다 후에 어머니의 끝없었던 꾸짖음과 잔소리, 회유 그리고 개인적인 학구적 호기심과 여타의 계기들 덕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게끔 되었지만 아직도 확신과 불신을 오가고 있으며 확신을 가질 실마리를 잡았다가 매번 놓치곤 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와 道에 대한 믿음이 기저부터 흔들리고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고는 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두 변하고 상할 수 있다. 허나 사람과 타물(他物)이 다른 점은 타물(他物)은 변질되거나 부패하면 버리는 것이 상책이지만 사람은 갱생(更生)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 여겨진다. 얼마든지 교화나 혜안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개심(改心)하고 개심(開心)하여 부패해 가는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모르고 변질되어 가는 것 또한 가여운 일이지만 알면서도 스스로의 어둠에 농락되어 오물탱크 속으로 흡입되는 것은 달갑지 않다. 누가 뭐라하든 내게 있어 나는 오늘의 상한 우유 2병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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