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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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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 대순진리회의 성지 바로보기

대순진리회의 성지 바로보기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교무부에서는 작년 여름 대학생 성지순례 행사 기간 중에 이준세의 정읍 통사동 재실(齋室)로 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학생들은 거의 폐허로 변해있는 재실에 대해 놀라면서 왜 종단에서는 이 재실을 돌보고 있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고 한다.

  도주님께서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를 받으신 직후인 1919년 초엽부터 몇 년 간 공부처로 삼으셨던 통사동 재실은 둔궤(遁櫃)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01

  둔궤란 상제님께서 1907년 4월 동곡약방을 여실 때 만드신 두 개의 궤 중 하나로서, 상제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通)이 숨겨져 있는 궤라고 알려졌던 매우 중요한 물품이었다.02 1919년에 어렵게 이 둔궤를 찾아오신03 도주님께서는 1920년 통사동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불휴 정성을 들이셨고, 드디어 2월 17일에 벼락소리와 함께 둔궤가 저절로 열리는 이적(異蹟)이 일어났다.04 이 일은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진주(眞主)이심을 증명해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통사동 재실은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도주님에 의해 장례가 치루어진 곳이기도 하다.05

 

 

 

  이런 점들로 미루어보면, 우리 종단의 입장에서 통사동 재실이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작다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사동 재실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거의 방치된 채로 지금까지 내버려져 오고 있으니, 괴이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상제님께서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신 대원사(大院寺) 및 천지공사를 보시던 여러 곳, 그리고 폐허로 변해버린 무극도장 터에 이르기까지 성지(聖地)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실제 성지로 대접받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장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매우 많다. 도대체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경기도 군포에 있는 수리사(修理寺)의 사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수리사는 도전님께서 1968년경에 49일간 머무시며 공부하셨던 곳이어서, 우리 종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성지로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런데 수도인들이 수리사에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자 이를 아신 도전님께서는 수리사에 갈 필요가 없다는 분부를 내리셨다.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대순진리회에서의 성지는 일반적인 개념의 성지와는 분명 어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성지에 대한 개념

  일반적으로 성지(聖地, holy place)는 ‘특정인들에 의해 신성시(神聖視)·금기시(禁忌視) 되는 지역·장소·건물 등’으로 정의된다. 성지는 다른 말로 성역(聖域) 또는 성소(聖所)라고도 하며, 불교에서는 영지(靈地) 혹은 영장(靈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성지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성인(聖人)의 탄생지, 깨달음을 얻은 곳, 돌아가신 곳, 묘소 등으로 주로 그 성인의 행적과 관계 깊은 장소이며, 다른 하나는 사원이나 신전이 있는 곳, 종교 유물이 있는 곳, 순교지 등으로 주로 그 종교의 의례나 역사와 관련 깊은 장소이다.

  각 종교에서의 성지를 살펴보면, 먼저 불교의 경우 룸비니 동산(석가 출생지)과 꾸쉬나가르의 니르바나 만디르(석가 입멸지),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석가 득도지), 사르나트와 영취산(석가 설법지),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신 여러 사찰06 , 그 외에 부처나 보살들의 영험함이 나타난다는 여러 사찰 등을 성지로 설정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루살렘이나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장소들을 성지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슬람교에서는 메카를 성지로 삼는데 특히 메카의 하렘 모스크 중앙에 있는 카바신전은 알라의 거처로 가장 신성시되어 순례의 달(이슬람력으로 12월)에는 25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집중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힌두교에서는 인도 땅 자체를 성지로 생각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힌두교의 모든 신들이 거처하고 있다는 바라나시를 최대 성지로 여긴다. 그리고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강가(갠지스 강) 역시 생명력과 정화력이 있다고 하여 매우 신성시된다.

 

 

 

  당연히 이런 종교의 성지들은 해당 종교인들에게 성스러운 공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특별한 관리와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통사동 재실, 무극도장 터, 수리사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통상적인 성지 개념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에서 말하는 성지는 과연 어디이며, 또한 대순진리회의 성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대순진리회의 성지는 영대(靈臺)가 있는 도장(道場)이다

(가) 도장(道場)은 성역(聖域)으로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여야 한다.(82. 3. 7)

(나) 도장내의 예의는 다음과 같이 시행하여야 한다. 「숭도문(崇道門) 안을 정내라 하고 그 안에 들어서면서 본전을 향해 읍배를 올린다. 영대 앞을 본정이라 이르며 본정에서는 최경(最敬)의 예로써 진퇴에 지성지경(至誠至敬)을 다하여야 한다.…」(82. 3. 7, 83. 5. 1)07

 

  위의 도전님 분부에서 알 수 있듯이 도장(道場)이 바로 성역(聖域) 곧 성지이다. 도장에 있는 많은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되는 곳은 영대(靈臺)이다. 영대는 상제님을 비롯한 15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서 대순진리회 최대의 성역으로 꼽힌다. 누구든 영대에 들어갈 때는 한복을 갖춰 입고 허리를 굽히는 국궁(鞠躬)의 예를 취해야 하며, 영대 앞에서도 항상 최경(最敬)·지성지경(至誠至敬)의 자세를 견지(堅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영대에 상제님과 천지신명이 계시고 이로부터 성스러움이 발현(發顯)되기 때문에 도장은 성스러운 공간 즉 성지로 규정된다.

  그 규모가 거대하고 한국적인 전통미(傳統美)를 발산하고 있다는 외형적 특징을 지닌 도장은 본질적으로 다음 두 가지의 신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도장이 ‘천장길방(天藏吉方)’이라는 것이다. 천장길방은 하늘에서 비밀리에 감추어 둔 길한 장소라는 뜻으로서, 원래부터 도장 자리는 천부적(天賦的)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때가 되자 하늘에서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도전님께서 전국에 존재하는 다섯 곳의 도장 자리를 잡아주실 때 일일이 도장이 하늘에서 정해주신 땅이라고 강조하셨다는 사실08 외에도, 도장 자리가 모두 풍수가들이 인정하는 희대의 명당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인간에게 발견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09

  또 다른 도장의 중요한 특성은 ‘도수(度數)에 따른 출현’이라는 것이다. 도수란 우주 운행의 원리(우주의 질서와 운동의 법칙)로서, 상제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법방(法方)이 적절한 시기에 이르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절차이자 프로그램을 말한다. 즉 100년 전에 천지공사가 있었고 도주님께서도 50년 전에 진법(眞法)을 짜는 공부를 마치셨으나, 상제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도수에 따라 대순진리회에 와서야 도전님에 의해 천장길방이었던 장소들이 비로소 도장 터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장이 성지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무릇 성지에는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도장의 중심이 영대이고 영대에서는 지성지경(至誠至敬)한 자세를 가져야 함을 생각해본다면, 대순진리회에 있어서의 성스러움은 15신위(神位)로 설명되는 상제님을 비롯한 제(諸) 신명들의 존재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성지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상제님 등 제(諸) 신명들이 기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신명은 진리에 지극하다.10 따라서 신명들이 응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대순진리회의 진리는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로서, 이것은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終畢)로써 짜놓으신 법인 유법(遺法) 즉 진법(眞法)으로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에서 제(諸) 신명들은 진법에 따라 응하게 되고, 인간들은 진법에 따라 수도를 하며, 진법에 의해 비로소 도통이 열리고 개벽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므로 ‘진법의 구현과 수호’는 상제님 등 제(諸) 신명들을 도장에 응하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며, 도장에 성지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엔진이라 하겠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在天)하고 성사는 재인(在人)이니라.”(교법 3장 55절)고 말씀하신 바 있다. 즉 하늘에서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일의 성사 여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에서는 하늘에서 한번 정해준 성지가 영원한 성지가 아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로서, 도장이 비록 도수에 따라 나타난 천장길방이었다 하더라도 ‘진법의 구현과 수호’라는 인간의 정성어린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 생명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순진리회 성지의 재생산 문제

  일반적으로 종교의 성지는 확대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예를 들면 불교에서 석가의 사리를 옮겨가면 새로운 성지가 만들어지게 되고, 마찬가지로 기독교에서도 순교자의 유해를 옮기면 새로운 성지가 창출된다.

  대순진리회의 경우에도 도장과 같이 상제님 등 제(諸) 신명들을 모시고 진법을 바르게 구현한다면 어디든 모두 성지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회관에서도 상제님의 진영을 모신 봉심전을 만들고 진법을 바르게 실천한다면 그곳도 대순진리회의 성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대순진리회의 성지도 얼마든지 확대되고 재생산될 수 있다.

  그런데 도전님께서는 각 회관의 규모를 도장보다 작게 지을 것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물론 여기에도 다른 숨은 뜻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 대순진리회의 중심은 회관이 아니라 도장이기 때문에, 회관과 도장을 같은 선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그 격(格)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도장은 도인들의 생명과도 같은 공부와 강식이 벌어지는 곳으로, 도수에 따라 나타난 천장길방이다. 이런 점이 도장을 회관들과는 구분 짓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생각된다.

 

 

성지와 성적지(聖蹟地) 구분 문제

  지금 남아있는 통사동 재실이나 무극도장 터 등 옛날 공사 보셨던 터는 건물이 거의 다 무너지고 곧 쓰러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모습들이다. 상제님의 생가도 옛날 본래의 집은 사라지고 없고 새로 지어진 두 채의 건물만이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교법 3장 2절)고 말씀하신 바 있다. 따라서 이런 장소들은 오래 전에 신명들이 떠나버려 텅 빈 공간이 되어버렸고 그에 따라 쇠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제님의 생가나 통사동 재실, 무극도장 터 등은 분명 그때에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배도자가 훔쳐가 버린 둔궤에 대해 도주님께서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교운 2장 20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공간들도 그 쓰임이 다한 후에는 즉 도수가 다 찬 후에는 성지로서의 생명력을 다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장소들은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내포하는 성지(聖地)라는 용어를 쓰는 것보다는, 성적지(聖蹟地)라는 용어를 별도로 제정하여 성스러웠던 공간이라는 과거완료형의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제님의 성골(聖骨)이 모셔져 있는 오리알 터와 도주님의 옥체가 모셔져 있는 감천 태극도장의 도주님 능소(陵所)는 이런 논의들과는 상관없이 예외로 성지로 분류함이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상제님의 생가 등 성적지는 비록 과거에 공사와 도수에 다 쓰였고 이제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기념하는 상징물을 세움으로써 수도인들의 도심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으므로 어느 정도 원형의 모습을 갖추도록 복원을 할 필요성은 있다 하겠다.

 

 

진법이 훼손된 경우 성지로서의 생명력 문제

  현재 중곡도장과 포천수도장, 제주수련도장 그리고 몇몇 회관의 봉심전에는 진법(眞法)이 훼손되고 난법난도가 자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9년에 난법난도자들이 이들 3개의 도장을 무단 점거하고 영대에 모셔진 15신위 중에서 서가여래를 퇴위시킨 뒤, 그 자리에 도전님을 박성상제라는 해괴한 신위로 모셔버렸던 것이다.

  영대에 모셔져 있는 신위는 상제님께서 공사로써 만들어 놓으셨던 것으로서, 도주님이나 도전님께서도 이를 일체 손대지 않으시고 그대로 따르셨던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도가 신도(神道)인데, 그 신위를 바꾸어 버리면 도의 근본이 흔들리게 됨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과거 도전님께서도 “서가여래를 내리고 그 자리에 도전을 모시자고 하는 자는 대역 죄인이다.”(1991년 2월 12일 훈시)라고 하시며, 15신위 즉 진법을 바꾸려는 자를 난법난도하는 자라고 크게 징계를 내리셨던 것이다.

  ‘진법의 구현과 수호’가 성지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엔진이므로 진법이 훼손되어 버린 도장은, 비록 상제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고 하더라도 상제님을 비롯한 제(諸) 신명들이 더 이상 응하지 않기에 성지로서의 자격이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진법이 실종되고 난법난도가 자행되고 있는 도장에 대해서는, 껍데기만 남아버린 도장에 대해서는, 수도인들이 배례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상제님의 유지와 도주님의 유법, 그리고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 빨리 이들 도장을 되찾아서 서가여래 신위를 복구시켜 양위 상제님께서 물려주신 원래의 15신위 법방을 회복한다면, 진법이 바로 서게 되므로 제(諸) 신명들이 모두 응할 수 있게 되어 그때는 성지라는 제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수도인들도 진법이 다시 구현된 도장에서 상제님과 천지신명 앞에 배례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지는 지존시대(地尊時代)의 유물

  이상과 같이 다른 종교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지에 대한 대순진리회의 독특한 관념들에는 땅에 대한 대순사상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상제님께서는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교법 2장 56절)고 말씀하셨는데, 천존시대란 신명들이 하늘의 영역에 거주하므로(神封於天) 그 권위가 하늘에 있다는 뜻이요, 지존시대란 신명들이 땅의 영역에 거주하므로(神封於地) 그 권위가 땅에 있다는 뜻이다. 인존시대란 이제 신명들이 인간과 신인조화(神人調化)를 이루게 되므로[神封於人] 그 권위가 인간에게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오는 세상은 인존시대이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하늘이나 땅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미래에, 도통이 실현된 후천 개벽의 세상에서는 성지라고 하는 특수한 공간이 크게 의미가 없게 되고 대신 성지가 가지는 의미를 인간이 가지게 된다. 따라서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것은 지존시대(地尊時代)의 유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실로 대순진리회의 성지는 상제님을 비롯한 제(諸) 신명들이 응해있는 곳이다. 그러한 곳 중에서 가장 권위있는 장소는 바로 도장이며, 도장 중에서도 중심은 여주본부도장이다. 그러므로 명실상부 종단 행정의 중심지이자 시학·시법공부와 강식으로 대표되는 수도공부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는 여주본부도장에는 연간 백만 명 이상의 참배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여주본부도장의 영대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 같은 종교학자들은 성지, 즉 성스러운 공간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성스러움이 발현된(이를 聖顯, 히에로파니hierophany라고 한다) 장소라고 하였고, 치데스터(David Chidester)나 스미스(Jonathan Z. Smith) 같은 학자들은 원래부터 성스러움이란 것은 없고 특정 종교단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뿐이며 성지 역시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성스러움이라는 의미를 부여받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이런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이 지금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학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대순진리회의 경우에는 성지가 천장길방과 도수에 따른 출현이라는 특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는 엘리아데의 이론을 떠올리게 되고, ‘진법의 구현과 수호’라는 인간의 작위적 노력이 없다면 성지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치데스터 등의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즉 대순진리회에서의 성지 관념은 기존 학계에서의 두 상반된 이론을 종합해야 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01 교운 2장 13절, 14절 참고

02 홍범초, 『범증산교사』, 범증산교연구원, 도서출판 한누리, 1988, 352쪽 참고

03 상제님 화천 후, 둔궤는 상제님으로부터 수부로 천거받은 김형렬의 딸이 보관하고 있었다. 1911년 9월 정읍 대흥리에서 차경석이 고수부를 내세워 선도교(仙道敎: 뒤에 태을교)를 만들었는데, 이때 고수부가 김형렬의 딸에게서 둔궤를 가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경석의 전횡으로 태을교가 분열되자 종도들은 태을교를 모두 떠나고 고수부마저 1918년에 태을교를 떠나게 되었고, 차경석은 둔궤를 깊숙이 숨겨 버렸다. 1919년 정월에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으로부터 이 둔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고 선돌부인의 권유에 의하여 1919년 9월에 차경석의 본부에 가셔서 둔궤를 찾아오셨다.

04 교운 2장 20절 참고. 공사 후 둔궤는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졌으나 조주일이라는 사람이 둔궤를 훔쳐 도망가 버렸다. 도주님께서는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로부터 60년이 훨씬 넘어서 도전님께서 둔궤를 다시 찾아오셨다. 도전님께서는 이 둔궤를 ‘성궤(聖櫃)’라 이름하시며, 3년 동안 성궤를 모신 날에 치성을 올리셨다.

05 교운 2장 22절, 23절 / 각주 2의 책 356쪽 참고

06 국내에는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취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5곳이 있다.

07 『대순지침』, 81~82쪽.

08 공주선감은 도전님의 명을 받들어 전국 5곳의 도장 터를 찾으러 다닌 분이다. 공주선감의 증언에 따르면 가장 먼저 중곡도장 터를 잡을 때 도전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중곡동으로 갔더니 그곳을 지키던 신선이 나타나 몽둥이를 들고 “주인(도전님을 말함)은 안 오시는데 왜 아랫사람들이 먼저 오느냐!”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도전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래, 하늘이 주셨다.”라는 말씀을 하셨으며, 그후 여주본부도장과 제주수련도장, 포천수도장,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터를 잡을 때도 모두 하늘이 정해주신 자리라고 일러주셨다고 한다.

09 여주본부도장은 매화낙지혈(梅花落地穴),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학사비천혈(鶴舍飛天穴), 포천수도장은 선인독서혈(仙人讀書穴), 중곡도장은 용마포태혈(龍馬胞胎穴), 제주수련도장은 선기옥형혈(璇璣玉衡穴)로 알려져 있다.

10 교운 1장 19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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