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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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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풍경 : 새바지와 헌바지

새바지와 헌바지



교무부 신상미




  여섯 살 때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라는 아버지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믿고 몇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아버지의 농담 때문에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아신 어머니는 태몽에 관해 이야기해주시고 태어난 시간이 적힌 아기 수첩을 보여 주며 달래주셨다. 지금이야 이 이야기를 웃으며 하지만 그땐 심각했다. 아버진 내가 삐죽거리며 우는 모습이 귀여워서 농담하셨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그런 농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나는 다음의 우화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옛날 정나라에 복 선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복 선생은 자기 바지가 더럽고 헤지자 옷감을 끊어다 주면서 아내에게 새 바지를 지어 달라고 했다. 치수를 재던 아내가 물었다. “어떤 모양으로 지어 드릴까요?” 복 선생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헌 바지 모양으로 해주오.”
  아내는 곧이곧대로 헌 바지의 모양을 본떠서 구멍도 몇 개 뚫고, 기름 자국도 만들고, 쭈글쭈글하고,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많은 공을 들여 바지가 완성되었다. 아내는 바지를 남편에게 갖다주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맘에 드세요? 헌 바지와 똑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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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 우화는 옛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복고주의를 풍자한 것이다. 한비자는 새 바지를 짓는다면서 헌 바지 그대로 만든 복 선생의 부인을 새로운 상황에 맞추지 않고 낡은 규범을 그대로 적용하려는 사람에 비유하였다. 그렇지만 현재 관점에서 본다면 위 우화는 부부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해서 생긴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
  부인이 헌 바지의 형태, 크기뿐만 아니라 구멍과 기름때까지 똑같이 공을 들여 만들어 주면서 “맘에 드세요? 헌 바지와 똑같지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정말 남편의 말을 헤아릴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인 것 같다. 만약에 부인이 새 바지를 입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어땠을까.



  한편, 복 선생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그의 태도를 보면 아내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복 선생이 좀 더 관심을 기울여 곧이곧대로인 부인의 성향에 맞추어 대답을 명확히 했다면 본인이 원하는 새 바지를 입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 결국 구멍 뚫리고 낡은 새 바지를 받게 되었다.
  우린 복 씨 부부와 같은 일을 겪거나 가끔 보기도 한다. 고지식한 사람에게 농담을 진담처럼 한다거나 말을 빙빙 돌려서 일부러 오해하도록 해 놀리기도 한다. 아마도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농담하셨을 때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힘들어할지는 모르셨을 것이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께서 정확한 설명과 증거물을 보여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복 선생도 부인이 새 옷감으로 지을 바지를 말 그대로 헌 바지와 똑같이 만들어서 줄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과 부인이 좀 더 서로 관심을 가지고 그 성향을 배려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로 잘 표현했다면 깨끗한 새 바지를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면서 마음을 명확하고 신중하게 말로 표현하려 노력하는 것도 수도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하여 배려한 후 상황에 맞게 말하면 일이 뜻하는 대로 잘 이루어질 수 있다.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우리 수도에 있어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 성향이나 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말로 마음을 잘 표현한다면 더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소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01 김태완, 『우화로 떠나는 고전 산책』 (광주: 현자의 마을, 2014), pp.123-12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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