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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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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대순한마당의 ‘비상’이 있기까지

대순한마당의 ‘비상’이 있기까지
 
 
 

연구원 조광희

 
 
 
 
  9월 28일 오후 8시경. 날은 어두워지고 날씨는 어느새 가을을 느낄 만큼 제법 쌀쌀했다. 걷어붙인 소매를 내리고 옷깃을 세우려는 순간 “제4회 충주시 전국 모둠북 난타 경연대회 일반부 대상….”이라는 사회자의 멘트에 이천 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은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이날 오전부터 열띤 경연을 펼친 경연대회 참가자들과 관람객 모두가 기다려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비상을 공연한 경기도 여주시의 대순한마당!” 결과가 발표되자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고 관람객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대순한마당 단원 분들 멀리서 오셨는데 정말 축하 드려요.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요.” 여기저기서 대회에 참가한 다른 팀들의 격려도 잇달았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의 기계음, 사회자의 마이크 울림, 그 외 공연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때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도 나의 귀를 잡아끄는 소리가 있었다. “어머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어.” ‘대순한마당’ 여성 단원의 울먹이는 듯한 탄성이었다. 그것도 잠시 나지막한 울먹임은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서로 얼싸안고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 자국을 마주 보며 고대하던 결과를 재차 확인했다. 평소 말 없고 근엄해 보이던 ‘대순한마당’ 풍물단장인 신기철 보정도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며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현장 취재를 갔던 나의 기억 속 한 편에 자리 잡은 ‘대순한마당’ 풍물단의 감격스러운 수상 장면이다. 그날 ‘대순한마당’ 풍물단은 공연제목처럼 정말로 ‘비상’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며칠 뒤 ‘대순한마당’ 풍물단의 제4회 충주시 전국 모둠북 난타 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을 기념하여 단장인 신기철 보정과 풍물단원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대순한마당’ 풍물단의 수고와 열정을 듣고 보았던 터라 짤막한 단신 기사로 그치기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인터뷰는 대순한마당 풍물단이 10년간 걸어 온 과정과 그동안 말로 다하지 못한 애환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오늘의 영광을 조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남들이 보지 못한 ‘대순한마당’ 풍물단의 숨은 정성과 노력을 지면에 담아내어 대순진리회의 많은 수도인에게 알리는 것이 그분들을 위한 것이라 여겼다. 다음 내용은 ‘대순한마당’ 풍물단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Q. ‘대순한마당’ 풍물단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A. 신기철 보정: ‘대순한마당’ 풍물단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였습니다. 2004년 여주본부도장에서 열린 추계체육대회에서 부전 방면 수호 임원이 저에게 방면 장기자랑으로 풍물을 해보면 좋지 않겠냐고 제의했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6명의 단촐한 인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부전 수호자 중 대학교 동아리에서 풍물을 배운 사람에게 조금씩 조언을 들어가며 거의 독학 수준으로 연습을 했었습니다. 사실상 일반 동아리 수준보다도 미흡했지만 장기자랑 당시 의외로 호응을 많이 해주셨고 그때부터 도장의 크고 작은 행사에 부족한 저희를 불러 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처음 시작할 당시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있었나요?
 

A. 신기철 보정: 저희 풍물단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장에 계신 여러 임원의 적극적인 주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악기와 의상 등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원해주셨고 정신적인 밑거름이 되어 주셨습니다. 또 현재 ‘대순한마당’이라는 이름은 개인적인 기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이 어울려 ‘신명’나게 놀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 풍물이 추구하는 가치인데 화합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한마당’이라고 생각해서 팀명을 ‘대순한마당’으로 정했습니다. 그때를 2008년도로 기억합니다. 도장과 외부의 크고 작은 행사지원과 각종 대회에서의 입상 경력, 특히 2006년도 종교지도자 대회에서 활약한 것을 바탕으로 도장에 대순진리회의 정식적인 풍물단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져 현재의 ‘대순한마당’이 된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를 비롯하여 모든 풍물단원들이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현재 ‘대순한마당’ 풍물의 형태가 자리 잡기까지 많은 분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신기철 보정: 2004년 장기자랑 이후 풍물단이 어느 정도 안착을 하게 된 것은 사회 동아리에서 사물을 배웠던 이○○  선무의 도움이 컸습니다. 갓 입도한 상태에서 도장 수호를 잠깐 올라온 시기에 풍물을 배우는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마디 일러 준다는 것이 인연이 되었죠. 그 후 악기를 치는 모습이 너무 뻣뻣해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 선무의 스승이신 이원만 선생님께 직접 ‘호남우도 굿’을 전수받게 되었고 상모 분야의 권위자인 여주의 김○○선생님께 ‘상모 판 굿’을 전수받았습니다. 그 후로 상모와 사물놀이를 같이 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대순한마당 풍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단순무식하게 연습했습니다.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풍물을 배우고 나니 열정만으로 무모한 도전을 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웃음도 나지만 젊은 날 아름다웠던 한편의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의 ‘대순한마당’이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그동안의 주요 활동이나 입상경력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신기철 보정: 주로 종단에서 주최하는 행사인 체육대회, 대순진리회 복지법인의 어르신 생신 잔치, 정월 대보름 놀이, 전국 게이트볼대회, 종단대순진리회배 축구대회 등에서 공연했습니다. 특히 2006년도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저희 풍물단이 신명 나는 흥겨운 공연을 펼쳐 박수갈채를 받은 것은 지금도 큰 보람입니다. 외부에도 저희 ‘대순한마당’이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러 행사에 초청공연을 하고 있고 주로 여주시 행사에 나갑니다. 대표적으로 여주 도자기 축제, 경로잔치, 어린이날 행사, 강천면 체육대회, 금사면 참외축제 등 여주시에서 열리는 축제나 행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여 공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 3월부터 현재까지 5년여 동안 ‘강천면 주민자치 센터’에서 풍물 무료 강습도 해오고 있습니다.
  주요 입상경력은 지난 여주시 풍물경연대회에서 강천면 대표로 참여하여 연 2회(2005, 2006)에 걸쳐 대상을 수상한 것과 경기 민속대회 장려상을 탄 것입니다. 무엇보다 풍물이 아닌 모둠북 난타 분야는 이번 대회가 첫 출전이었는데 대상을 수상하게 되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Q. 이번에 충주시 모둠북 난타 경연대회에 참여하셨는데 기존에 해왔던 풍물과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여한 동기와 모둠북 난타 공연과 풍물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A. 신기철 보정:
10년째 ‘대순한마당’을 유지해오고 있는데 지금의 풍물단을 새롭게 발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경연대회 참가를 통해 우리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아야 했고 비록 입상은 못하더라도 다른 팀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으면 지금보다 풍물 실력이 한층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A. 풍물단원: 모둠북과 풍물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풍물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로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제천의식의 일종인 ‘굿’의 형태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풍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풍물 굿’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하늘과 사람, 즉 신명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음악이자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이죠. 예를 들면 꽹과리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상징해서 뇌공(雷公)이라 하고 장구는 비가 내리는 소리라 하여 우사(雨師)라고 합니다. 또 북소리는 구름이 둥둥 떠가는 모습을 말하여 운사(雲師)라고 하며 징은 바람 소리를 상징하여 풍백(風伯)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풍물에서 사용하는 전통악기 네 가지는 뇌공, 우사, 운사, 풍백의 사신(四神)을 상징하는 소리이며 이를 연주함은 신을 부르는 의례이지요.
  반면에 모둠북 난타 공연은 현대공연음악 예술입니다. 풍물은 자진모리, 휘모리 등의 전통리듬을 주로 쓰는 반면에 난타는 주로 팀이나 개인이 직접 북을 두드리면서 리듬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에 기반을 둡니다. 악기를 쓰는 것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유리병, 항아리, 북, 쓰레기통에 이르기까지 소리 나는 그 무엇이든 다 쓸 수 있습니다. 공연요소에서도 한국무용, 대중가요 등 여러 가지 형태를 접목해 자유롭고 다양한 퓨전공연을 선사하는 것이 장점입니다.
 
 
 
Q. 이번 충주시 전국 모둠북 난타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이라는 쾌거를 거두셨는데 연습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A. 신기철 보정: 원래는 도장의 체육대회에서 공연할 목적으로 준비했었는데 취소되어서 이번 대회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4월이었으니까 연습은 약 5개월 정도로 아마 저희가 여태 다녔던 행사와 대회를 모두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준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연습은 주로 저녁 6시부터 9시 사이에 모여서 했습니다. 복지재단 종사자, 수호자, 종사원 등 서로가 맡은 일들이 있다 보니 풍물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어 전체적인 호흡을 맞추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대회 당일까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실전이 되니까 거짓말처럼 서로 장단을 딱딱 맞추고 춤사위도 한사람이 하는 것처럼 잘 맞아떨어져 ‘평소 같이 연습했던 그 사람들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저희 풍물단원 모두가 무대체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웃음)
 
 
Q. 공연의 시나리오 및 안무의 구성은 어떠한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계획하셨습니까?

A. 신기철 보정: 이번 대회에서 선보인 공연의 제목은 ‘비상’이라고 합니다. ‘비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우리 민족 특유의 ‘신명’을 표현해 ‘대순한마당’이 민족의 기상을 알리는 풍물단이라는 강한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 주된 포인트였습니다. 그래서 풍물놀이의 전통 가락과 신나고 경쾌한 윤도현의 록 버전 ‘아리랑’을 삽입해서 지루하지 않은 흥겨운 리듬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힘차고 박진감 넘치는 모둠북 군무와 화려한 부채춤 퍼포먼스로 보고 있는 관객들이 저절로 어깨춤을 들썩이게끔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습니다.

A. 풍물단원: 안무는 우리 풍물단의 에이스이자 전직 에어로빅 강사였던 황○○ 교령이 맡았습니다. 에어로빅을 해서 그런지 타 팀에 비해 힘차고 경쾌한 율동을 보여줄 수 있었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 밖에 상모를 돌리면서 모둠북을 연주하는 모습을 본 사회자가 “이 분야에서 30년을 일했는데 상모를 돌리면서 북을 치는 건 처음 보았다.”면서 감탄을 했었죠. 모둠 북 연주에 상모를 도입한 것은 저희가 처음일 겁니다. 아마도 그러한 독창적인 부분에서 많은 점수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A. 신기철 보정: 한편으로 대회 참가 전 치밀한 검증작업도 거쳤습니다. 풍물을 오랫동안 하셨던 분에게 저희 공연이 담긴 녹화 비디오를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보시고는 ‘아마추어 풍물단이 어떻게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느냐?’ 며 크게 감탄을 하고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풍물단 식구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수만 없다면 뜻밖에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Q. 대회 당시 또는 준비과정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풍물단원: 에피소드를 말하기 전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대회 참가하는 날 새벽 5시에 최종 리허설을 하는 바람에 종사원 사택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풍물소리가 매우 시끄러운데도 불평 한마디 안 하시고 오히려 응원해주신 부분에 대해 지면을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 풍물단원: 저희 풍물단에 부산에서 올라와 같이 연습하는 내수가 있습니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대회 당일 까지도 장단이 맞지 않아 단장이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당사자도 자신이 없다며 빼 달라고 요청 했었죠. 그때 우리 단원들이 “이왕 같이 시작한 일이니 잘 되든 못 되든 끝까지 함께하자.”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신명께서 도와주신다.”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연습할 때는 그렇게 맞지 않던 장단이 무대에 오르고 연주가 시작되니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것을 보고 ‘이 모든 것이 상제님의 덕화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A.신기철 보정: 대회 당일 제비뽑기로 공연 순번을 정하는데 뒷번호가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몸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어 좋은 공연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첫 번째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세 번째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네 번째에 뽑혀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공연 팀이 대회 참가를 포기하는 바람에 순서상 저희가 세 번째가 되었습니다. 그때 ‘오늘 일이 잘 풀리겠구나.’ 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는데 대상까지 받게 될 줄 몰랐습니다.
 
 
Q. 지금의 좋은 결과가 있기까지 그동안 말 못할 고충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대순 한마당’을 유지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A. 신기철 보정: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첫 번째가 인원 수급 문제입니다. 풍물 공연을 하려면 일단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현재 열두 명의 인원으로 감당하는 것이 벅찰 때가 많습니다. 공연 시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맡아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좋은 기획이 나와도 사람이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풍물단을 원활하게 유지하려면 공연하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보조인원까지 합쳐서 최소한 3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풍물단을 거쳐 간 사람은 족히 100명은 됩니다. 하지만 각자가 할 일이 있어서 풍물에만 전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보니 연습시간을 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또 풍물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자기와의 힘겨운 싸움입니다. 체력적으로 고될 뿐만 아니라 공연에 내보낼 수 있는 실력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인내심과 정성이 없으면 결코 풍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정 수준의 인원유지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A. 풍물단원: 저희 풍물단 모두가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한 번도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풍물에 대한 열정과 풍물단 식구들 간의 단합된 정으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하기가 힘든 건 사실입니다.
 
▲ 풍물 연습실
 
 
Q.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풍물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나 각오가 있다면 한마디 해 주십시오.

A. 신기철 보정: 지금까지 풍물을 하면서 ‘이것은 하늘의 뜻이구나.’ 라는 점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풍물단원이 네 명만 남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데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최소한 사물놀이라도 할 수 있으니 끝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견뎌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사람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풍물단을 근근이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풍물단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인원이 필요한 시기마다 항상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풍물을 포기해선 안 된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잘하는 사람이 빠지면 풍물의 수준이 나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풍물 자체는 더욱 발전해 갔습니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훌륭한 결과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희 풍물단은 미흡한 점이 많고 헤쳐나갈 일을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원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앞으로 대순진리회가 해외로 진출할 때 대진 국제자원봉사단의 문화공연예술팀으로서 세계인에게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리는 데 공헌하여 종단과 대한민국을 빛내는 ‘대순한마당’이 되겠다는 꿈 말입니다. 끝으로 이번에 도장에서 노후된 북을 교체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대진 국제자원봉사단 사무실을 나왔다. 1시간 정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그분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전경』의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히며, 그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고, 굶주리게 하며 궁핍하게도 하고, 행하고자 하는 일을 어그러뜨리고 어지럽게 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을 길러 그의 역량을 더욱더 증진키 위함이다.”01라는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번 대상 수상이 앞으로 ‘대순한마당’의 ‘비상’을 알리는 초석이 되기를 빌어본다.
 
 
 

01 『행록 3장 50절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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