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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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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뿌린 대로 거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연구원 주현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더라도 영구불변하는 진리가 있다. 곧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주 평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진리를 자주 대하고 공감하면서도, 그 참뜻을 음미해 보거나 바른 마음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약한 것 같다. 그만큼 인간사회가 불합리하여 정의가 패배하고 신의가 인정받지 못하고 양심이 무시되어왔다는 방증이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정의가 승리하고 신의가 인정받고 양심이 중시되는 세상을 진정으로 바라면서도 인간은 이에 역행하는 모순의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이것이 현실세계의 암울한 단면임을 아마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천·지·인 삼계(三界)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시켜 이러한 상극(相克) 세상을 상생(相生)의 세상으로 바꾸시고 인사(人事)를 바르게 세우셨다.(공사 1장 3절 참조) 이로써 앞으로는 정의와 신의와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세상이 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바른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그릇 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온다는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의 냉엄한 진리를 인류에게 남기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또 다른 표현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과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있다. 이 모든 표현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법칙으로서,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필연적 당위성에 근거하고 있다. 이를 『전경』에서는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행록 5장 38절), 즉 좋은 꽃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꽃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잠시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올바른 것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드러나며 바르게 돌아온다는 것은 해와 달이 어김없이 번갈아 찾아오는 이치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인간의 법칙이자 자연의 법칙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道)가 아닐까! 도(道)란 거짓이나 편벽(偏僻)됨이나 사사로움이 없이 공명정대하므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豆瓜之理) 진리와 같기 때문이다.(『대순지침』, 91-92쪽 참조) 악하고 부정하게 일을 하고도 잘 되고, 선하고 정직한 일을 하고도 잘못된다면, 이것은 이미 도(道)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패배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바른 길보다는 그 길이 바르지 못하더라도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성향이 있다. 불의에 순응하고 타협하여 쉬운 길을 가면 잠시 편할 수 있으나, 쉬운 만큼 인생의 쓴 맛과 허망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정의를 좇는 것이 고통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여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인생의 참맛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역경 속에서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자,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며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평범한 말 같지만, 이것은 불변의 진리임에 틀림  없다. 이 진리의 실천을 방해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욕심(慾心), 위선(僞善)과 이기주의, 무사안일(無事安逸) 등 세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욕심(慾心)이다.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며,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해서 발동하는 욕심이다. 욕심에 눈이 멀면 사리판단을 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욕심은 자신이 파멸의 길로 간다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낳는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커진다. 작은 욕심이라도 처음부터 그 싹을 잘라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더 큰 욕심을 내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욕심에 대한 불감증으로 끝없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법이다. 진리를 망각케 하여 자신을 파멸케 하는 가장 강력한 적은 욕심이다.
 
 

  둘째, 진리를 가로 막는 것은 위선(僞善)과 이기주의다. 요즈음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지 우리 사회엔 ‘나만 편하고 잘 되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신의(信義)나 지조(志操) 없이 언제든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말을 바꾸고, 힘이 있는 쪽으로 옮겨 아부를 일삼는 위선자들이 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이기적이며 위험한 인간상이다. 특히 아부는 양날이 있는 칼과 같아서 아부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이기는 하지만 일반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대개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변심(變心)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명분 찾기에 급급하고, 때로는 자신과 뜻을 같이 했던 동료까지도 헌신짝처럼 버린다. 동료들을 인신공격하고 없었던 일을 조작하여 유포하고 불리한 일은 부인하거나 남에게 덮어씌우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한때 편하고 출세하기 위해 신의와 지조를 저버린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사회적 생명이 다하게 된다. 또 그때까지 자신이 쌓아온 덕과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 것이고, 평생 자신에게 짐이 되어 이름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
  셋째, 진리를 진리로 보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적은 무사안일(無事安逸)이다. 우리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채, 왜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주의는 공동분배라는 대원칙 하에서 평등을 내세우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빈부의 격차나 차별이 없는 이상사회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무사안일 정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과 무능력하고 요령만 피우는 사람, 이들 모두가 똑같이 분배를 받음으로써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무시됨으로써 사람들은 점차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 체제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속성이다.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체제에 살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속성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태만하고, 요령껏 시간만 보내고, 공동생활에서 자신만 편하게 지내려 하고, 대충 지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라는 생각 등. 이런 속성을 지닌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또 많으면 많을수록 그 집단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이런 집단에서는 솔선수범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고, 항상 오해 아닌 오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자신이 한 일이 옳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한때 바보취급을 받고 오해를 받음으로써 마음의 상처가 생겨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모든 일은 바르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많이 있다. 이들이 사회를 지켜나가는 버팀목인 것이다. 스스로 성실히 의무와 책임을 이행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현명하게 통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화합과 발전도 이룰 수 없다. 특히 남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세는 솔선수범이다. 내가 솔선수범하면 무관심하고 비웃고 불평불만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이 어떻게 평가하던 자신이 하는 일이 집단과 구성원을 위한 것이라면, 정당한 일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내의 힘이 인간을 한층 더 성숙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의 도(道)는 신도(神道)다. 인간이 내린 평가에 비해 신(神)이 내린 평가는 정확하고 완전하다. 옳은 일을 하고도 남들로부터 오해와 모함, 불이득을 받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신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신을 속일 수는 없다. 신은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 상제님께서는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예시 30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수도인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항상 진실하고 용기 있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진리에 따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처럼 목숨을 걸고 투쟁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관건일 따름이다. 상제님의 진리에 따라 마음을 바르게 닦기만 하면 된다. 욕심, 위선과 이기주의, 무사안일은 진리 실천을 저해하는 큰 장애물이다. 이것은 남을 배려할 조그마한 틈조차 허용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가 될 것이다. 진리를 배반케 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망치게 하는 적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다. 항상 모든 일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사에 양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 진리에 대한 각성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진리의 실천과 의무의 이행을 위한 촉진제가 될 것이고, 부정한 사람에게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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