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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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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이제는 상생(相生)이다

이제는 상생(相生)이다

 

연구원 김오식
 

  서로 相, 살 生이 합쳐져 이루어진 상생은 조화 속에서 서로를 이롭게 하며 더불어 함께 산다는 뜻으로, 사람 인(人) 자의 모습처럼 사람이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서로에 기대어 사니 상대는 원망할 수 없는 존재이며, 또한 서로가 없으면 나 자신이 삶을 영위해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도덕경』 제2장을 보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있음(有)은 없음(無)에서 나오고, 없음은 있음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 상대적인 존재인데 모든 존재는 그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성립함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상대적인 너와 내가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노자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데 급급한 현대인들이 되새길 경구다. 그러나 단순히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모든 존재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상생의 삶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식과 아울러 근본적으로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의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지배하는 선천의 현실 속에서 상생의 삶은 이상에 그쳤을 뿐이며, 오히려 무수히 많은 원과 한이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진멸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셔서,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예시 6절)라는 말씀처럼 먼저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어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천지공사를 통하여 조성하셨다. 이것은 서로 간에 맺힌 모든 척이 풀려야 해원이 되며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공사는 우리 삶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요, 도수에 따라 점진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그리고 몸소 상생의 삶을 실천하신 상제님께서는 김형렬의 노비 지남식에게 예를 갖추어 경어를 쓰셨다. 반상의 구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이처럼 머슴에게도 존댓말을 쓰셨던 것을 볼 때 당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제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몸소 천인들을 우대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생을 실천하도록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남존여비의 차별을 없애리라 하시며 몸소 여인들에게 길을 비켜 주시고 여장군(女將軍)이라 글을 쓰셔서 여인들의 기세를 돋구셨다. 이 공사의 결과로 근래에는 남녀 차별이 없고 여인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자연스럽게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이 세상은 상극에서 상생으로 삶의 환경이 변하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자연스럽게 화합해가고 있다.
  화합과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특히 도인들 사이에 화목하여 잘 화합이 되면 그 기운이 가정을 통하여 사회에까지 미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도인들끼리 화합하는 이 마음이 커져 이웃에게 미치고 이웃끼리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줌으로써 척이 풀어지고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것이 뻗어 나가 국가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며 나아가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상제님의 덕화가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도인마다 상생 윤리를 실천하여 생활화함으로써 포덕천하가 이룩되어 우리가 바라는 지상선경이 빨리 성취되리라 믿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01
  위 말씀에서 수도인 상호 간에 화목하고 화합하는 상생윤리의 실천은 가정, 이웃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도인의 사명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상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사를 바라볼 때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를 대할 때도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상대를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이 먼저 앞서야 상생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선천에서와 같이 상극만 조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상생의 도를 세우신다고 선언하시고 일상생활 속에서 상생을 몸소 실천하셨으며 또한 도수로써 상생의 세상을 열으셨다. 따라서 우리 모두 남을 잘되게 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남을 잘 되게 하면 내가 잘되는 이 상생의 원리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던 지난 선천의 인류사를 화합의 시대로 전환시킬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장차 열리게 될 새로운 문명세계는 또한 상생으로 가게 되며 그 세상에서는 인간의 마음도 상생으로 흐르고,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등의 모든 관계도 상생으로 돌아갈 것으로 본다.
  미래학자와 동양사상가들이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맞아 상생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 종교와 종교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상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제 상생이야 말로 온 인류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삶의 양식이자 이념인 것이며 하루속히 상생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며 화합을 이뤄야 한다. 이처럼 상생은 대순사상의 세계화를 위한 기틀이자 초석이 될 것이다.

 

 


01 1986년 4월 16일 도전님 훈시, 『대순회보』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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