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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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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45) : 호소신 공사와 복솥

호소신 공사와 복솥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해가 바뀌어 1906[丙午]년이 되었다. 정월 초사흘, 김형렬(金亨烈)과 그의 맏사위 정성백(鄭成伯) 등 여러 종도들이 동곡(銅谷=구릿골)에서 상제님을 시좌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 동안 말도 하지 말고 담배도 끊고 있으라는 상제님의 명을 받아 그대로 따랐다. 초닷새가 되자 상제님께서 종도들을 둘러 앉히고 “오늘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는 웃지 말라. 만일 너희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웃으면 그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것이고,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지 모를 일이니 깊이 명심하고 주의하라.”고 당부하셨다.

  종도들은 상제님의 명을 좇아 조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백이 큰 웃음을 터뜨리니 모두들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오후 성백은 오한이 일어나 몹시 고통 받다가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성백은 3일을 앓았고, 상제님께서는 그를 앞에 눕히시고는 어떤 글 한 구절을 읽어주시니 그는 즉시 쾌유하여 일어날 수 있었다.

  ‘호소신’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웃음을 좋아하는 신명’이라는 뜻이다. 이 신명이 어떤 신명인지 알려진 것은 없고, 또 호소신 공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며칠 후 상제님께서는 동곡 근처 용화동(龍華洞)에 있는 주막에 들르셔서 술을 드시고자 하셨다. 마침 주막에는 술이 떨어지고 없었다. 상제님께서는 주모에게 그 주막에서 술을 빚는 데 쓰는 빈 항아리를 가져오도록 이르셨다. 의아하게 생각한 주모가 빈 항아리를 들고 오자 상제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물을 부으신 뒤 손으로 휘휘 저으셨다. 그리고는 그 항아리의 물을 받아 드셨다. 옆에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도 상제님께 그 물을 얻어먹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맛이 본래의 술맛과 똑같았다고 한다.

  이 무렵 동곡마을 바로 앞에 정괴산(丁槐山)이라는 사람이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성은 정씨(丁氏)인데 충북 괴산(槐山)에서 살다가 동곡으로 이주해 왔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정괴산이라 부르고 있었다. 괴산은 집안이 무척 가난하였지만, 상제님을 믿는 마음이 극진하여 매번 상제님께 극진히 공양을 올리곤 하였다.

 

 

 

  어느 날 상제님께서 지나시다가 이 주막에 들르셨다. 이번에도 괴산은 상제님께 올리려고 정성스레 개장국을 질솥에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질솥이 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질솥은 쇠가 아니라 질흙으로 만든 솥이었다. 질솥이 깨어져서 더 이상 국밥을 팔 수 없게 된 괴산의 부인은 크게 낙담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상제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는 살림 밑천으로 튼튼한 쇠솥 하나를 가져다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이로부터 괴산은 장사가 잘 되어 가세가 넉넉하게 되었다.

  훗날 괴산은 태인(泰仁) 방교(方橋)01로 이사하게 되자 그 쇠솥을 수류면(水流面) 환평리(環坪里)02에 사는 정동조(鄭東朝)에게 팔았다. 그랬더니 그로부터 괴산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도리어 동조의 살림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상제님께서 가져다주신 그 솥을 ‘복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01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방교리

02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환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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