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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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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코너 : 하얼빈 유학생활

하얼빈 유학생활

 

 

잠실13 방면 선무 허정승(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내가 중국유학을 결심한 것은 군대 말년이라고 할 수 있는 병장이 되었을 때였다. 병장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몇 개월 후 전역을 하고 나면 무엇을 할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전역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학교를 일찍 졸업하고 중국에서 유학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중국은 커다란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고 우리나라와 무역교역 1순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중국은 세계의 여러 나라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역 후 복학한 나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대진대학교에 “DUCC(Daejin University China Campus)”란 제도가 생긴 것이었다. DUCC 제도는 내가 본교를 졸업한 이후에 중국에서 다시 4년간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대진대학교와 협정을 맺은 쑤저우대학교나 하얼빈 사범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면 본교와 현지 대학교의 졸업장을 모두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곧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그에 따라 2007년 8월말에는 이곳 하얼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에 중국에서 연수를 한 번 받아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하얼빈이란 도시가 그렇게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내린 첫눈은 정말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10월 초에 눈이라니! 순간, 2006년 여름에 만났던 중국인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다.

  “하얼빈으로 유학을 갈 거야?” “응, 하얼빈이 중국에서 발음이 제일 좋다고 말한 건 너희들이잖아!” “물론 그렇지만, 그곳은 사람이 살기에 꽤 추울 텐데.” “괜찮아, 난 추운 거 잘 견뎌.” 이처럼 그때는 날씨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친구들의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그런데 새벽녘 잠깐이긴 하지만 눈이 내릴 정도로 날씨가 쌀쌀했고 그것이 하얼빈에서 질리도록 보게 될 눈과 얼음의 시작에 불과할 줄이야 ….

  어쨌든 하얼빈 유학생활 초반에 나는 이곳저곳의 지리를 숙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왜냐하면 강의 첫날부터 강의실을 찾지 못해 지각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처음 와본 나에게는 지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활의 여러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식사였다.

  물론 학교 내에 학생식당이 있긴 했지만 모든 끼니를 중국음식으로 때울 수 없어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한국식당을 많이 이용한다. 다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보통 아침은 간단하게 중국인처럼 고기만두[包子], 꽈배기[油],콩국[豆]을 먹고 점심에는 한국식당에서 배달 온 단체도시락을, 저녁에는 학생들 본인이 스스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다. 따라서 밥솥과 조리도구는 유학생의 필수품 중의 하나이다.

  하얼빈에서의 수업은 한국과는 다르게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수업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사먹으러 가면 대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초ㆍ중ㆍ고등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초등학생의 경우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의 부모나 조부모들이 아이의 책가방을 메고 함께 등하교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소황제’의 일면을 엿보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유학생들의 수업시간은 대개 12시면 끝나기 때문에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학교 근처 학원에 다니거나 학습지도자를 두어서 수업시간에 몰랐던 내용을 중국학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DUCC학생으로 와서 편했던 점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 제반 사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교학과 측에서는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시정해 준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학생들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고 하얼빈유적지 탐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기 중 한 번 소정의 금액을 지원해 주기도 하였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중국은 정말 거대한 나라이다. 세계인구의 4분의 1, 56개 민족이 엮어낸 역사와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곳. 국토는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3번째로 크고 1978년부터 약 30여 년간에 걸친 개혁개방을 통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방면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룬 나라. 그래서일까? 일개 대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는데도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5색 풍선뿐만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고 심지어 성화 봉송까지 …, 마치 올림픽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중국 학생들은 이날을 위해 얼마나 연습을 한 것일까? 딱딱 맞추어진 절제된 동작, 질서 정연하게 반듯한 줄, 각 과별로 준비된 응원 등. 이런 장면을 보면 ‘사회주의의 영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닌 게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 점심시간에 보면 친구들이 식당에서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반으로 돌아갈 때는 제식을 하면서 들어간다. 대학교 새내기들의 경우에도 군복을 입고 남녀 가릴 것 없이 일정기간 동안 실제 제식을 한다. 이럴 때면 내가 정말 공산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한편, 하얼빈은 동북지방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흑룡강성의 성도이자 중국내 한랭지의 하나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송화강의 강물이 어는데 이 얼음으로 세계인을 하얼빈으로 불러들이는 빙등제를 개최한다. 1985년부터 시작된 빙등제는 세계 3대 얼음 축제 중의 하나이다. 해 질 무렵에 관람하면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장식되어 신비로운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얼음조각들을 볼 수 있다. 신기한 점은 여름에는 오전 3시에 해가 뜨지만 겨울에는 오후 3시에 일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가는데 이때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붙는 다이아몬드 더스트 현상이 일어나 더욱 환상적인 야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전에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을 거라고 100%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지인들조차도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을 정도로 춥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발된 하얼빈과는 달리 차로 1시간만 교외로 나오면 고층빌딩은 사라지고 중국의 농가가 나타난다. 중국에서 알게 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차 버스를 타고 5시간 동안 이동해 농가문화를 체험해 볼 일이 생겼다. 중국이 비록 30여 년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 그곳에는 개방되지 않은 순수한 농민들을 만나서 잠시나마 그네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축의금을 내야 하는데 아직 은행이 없어서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 추억이 있다.

 

 

 

  이제 얼마 후면 귀국하게 된다. 많은 추억이 묻어 있는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문득 섭섭한 감정이 밀려온다. 영국인 학자 콜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친구를 선택하는 것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하얼빈의 유학생활은 분명 나에게 좋은 책을 선택한 것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좋은 책을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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