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4년(2024) 1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전경 속 이야기 도장 둘러보기 고전 에세이 울타리 대순광장 지방 회관 소개 역사 문화와 함께 읽는 전경 생각이 있는 풍경 세상을 구한 발자국 대순문예 알립니다

역사 문화와 함께 읽는 전경 : 문명개화(文明開花)

문명개화(文明開花)



교무부 이호열



만국 활계 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 명월 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花三千國) 도술 운통 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  (예시 14절)

(만국을 살릴 계책이 남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속에 밝은 달은 금산사를 비춘다. 문명은 삼천국에 꽃을 피우며, 도술의 운은 구만리에 통하리라.)


  위 『전경』 성구는 상제님께서 금산사에 갔을 때 종도들에게 외워 주신 구절로서 남조선에서 세상을 살려낼 계책이 나오며 이와 함께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제님께서 인용하신 이 성구의 유래는 ‘금산사가(金山寺歌)’로 알려져 있는데,01 이는 4ㆍ4조의 한글 가사로서 한자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문명개화’의 한자표기는 문헌마다 일정하지 않으며, 『대순전경』을 비롯한 증산 교단의 다른 문헌에서는 대부분 ‘文明開化’로 표기하고 있으나 『전경』만이 거의 유일하게 ‘文明開花’로 표기하고 있다.02
  당시 조선에서는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화를 이루자는 ‘서구적 근대화’를 의미하는 ‘문명개화(文明開化)’의 흐름이 시대적 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때의 ‘개화(開化)’는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의 문물과 제도, 사상을 받아들임’의 의미가 있는데, 『전경』에 나타난 문명개화(文明開花)에서 ‘개화(開花)’는 ‘꽃이 피어남’의 의미로부터 ‘문화ㆍ예술이 한창 번영함’을 비유하는 말로써 표기된 것이다.03 따라서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문명개화(文明開花)가 문명개화(文明開化)와 어떻게 다른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구한말에 나타난 문명개화(文明開化)라는 시대적 조류의 흐름을 알아보고, 천지공사를 통해 펼쳐지는 후천 문명과 문명개화(文明開花)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전경』의 표기가 『대순전경』 등 다른 경전과 달리 상제님 말씀과 그 취지를 적확(的確)하게 표현하였음을 밝혀 보고자 한다.



구한말 문명개화(文明開化)의 흐름과 그 평가


  19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서구 문명 수용에 대한 태도는 이른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문명개화론(文明開化論)’, ‘유교개신론(儒敎改新論)’ 등으로 나타났는데,04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문명개화론’이라 할 수 있다.05 여기서 문명개화(文明開化)는 일본의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06가 처음 사용한 말로서, ‘civilization’의 번역어인 ‘문명(文明)’과 근대적ㆍ서구적 문물에 대한 개방의 의미를 지닌 ‘개화(開化)’가 결합된 것이다.07 이는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이 밀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낡은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서양의 문화와 사상, 종교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의 자강(自强)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흐름을 말한다.08 문명개화론은 1880년대 초부터 한일병합(1910) 이후까지 한반도의 변화를 이끈 중요 흐름의 하나였으며, 통칭 ‘개화기(開化期)’로도 불리는 이 시기에 천지공사(1901~1909)가 행하여졌다.


▲ 1899년 흥인지문 전차 개통식,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서울의 전차』 (2019년 12월)


  문명개화론은 일본 메이지 유신의 근대화 과정을 모델로 하여 서양 문명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한 근대화 개혁을 추구했던 갑신정변(1884)의 주역들에 의해 제기되어 확산되었다.09 그러던 가운데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던 일본이 청일전쟁(1894)에서 승리를 거두자 문명개화를 긍정하던 지식인들은 더욱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청나라로부터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넘겨받은 일본은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 정부를 내세워 갑오개혁(1894)을 단행하였고,10 문명개화 정책의 하나로 단발령(1895년 11월)을 시행하였다.
  이후 러시아나 일본 등의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근대적 자주 국가의 지위를 획득하려는 시도로써 나타난 것이 바로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선포(1897)였는데, 고종은 황제에 등극하여 군주권을 강화하고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외세의 간섭 없는 대한제국의 자주적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고, 문명개화는 대한제국 시기의 중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제국은 서구 기술 문명만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그 운영까지도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서구 문명을 수용하였으며, 교육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각종 학교를 설립하고 근대적 화폐제도[금본위 제도]와 은행 및 해운ㆍ철도ㆍ방직 회사 등 각종 회사를 만들어 상공업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11 1896년에 창간되었던 《독립신문》과 독립협회(1897)도 국민계몽에 나서며 문명개화 운동의 추진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12 한성에 최초로 전차(1899)와 가로등(1900)이 설치되고, 경인선(1899) 철도가 놓여진 것도 대한제국의 적극적인 서양 문물 수용의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었다.
  하지만, 문명개화론이 긍정적인 측면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문명개화론은 ‘선진’과 ‘야만’으로 문명의 위계를 구분 짓는 구조 위에서 인류 역사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를 ‘문명개화국’으로, 다른 권역의 문명을 ‘미개 문명’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가진다.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바탕으로 서양 열강은 우월한 문명을 가진 서구 문명이 미개한 비서구인들을 문명화(文明化)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그들의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하였다.13 즉 문명개화론이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였기에 혹자는 이를 ‘문명개화론의 덫’이라 표현하기도 한다.14
  상제님께서는 서양인이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에 대해 창생의 편의를 위해 그대로 두도록 하셨을 뿐, 기본적으로는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15라고 말씀하시며, 서구 근대문명의 폐단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이제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대신문(大神門)을 열어 四十九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어 일으켜 서양 세력을 꺾으리라” 16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서양 세력의 팽창을 막고 동양을 지켜내리라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여기서 서양 세력의 침략은 문명화를 명분으로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모습이기도 하므로, 만약 앞에 소개된 『전경』의 시 구절에서 문명 개화 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이라고 표기한다면 그것은 서양 세력을 물리치려는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취지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문명에 비유되는 꽃의 상징성


  흔히 고대 중국의 찬란했던 문화를 중화(中華) 문명이라 표현한다. ‘중화문명’이라는 표현에서 중(中)은 고대 중국이 발원했던 중원(中原)지역을 의미하며, 화(華)는 ‘꽃, 빛나다, 찬란하다’17의 뜻으로 화려하게 번창했던 문화ㆍ문명을 나타낸다. 금문(金文)과 소전(小篆)은 한자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인데, 금문에 나온 화(華) 자를 보면 단순히 꽃잎을 활짝 펼친 ‘꽃’이 그려져 있고, 소전에는 여기에 풀 초(艸) 자가 더해지면서 화(華) 자가 꽃과 관련된 글자라는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다.18 꽃이 활짝 피어난 모습에 비유하여 고대 중국의 융성했던 문화를 중화(中華)라 표현한 것이다. 일상적으로도 ‘문화를 꽃 피운다’라는 말이 있듯이 문화, 문명의 융성은 대개 꽃이 피는 것에 비유되어 표현되고 있는데, 『전경』에도 문명개화(文明開花) 이외에 꽃 화(花)의 글자가 문명의 의미로 해석되는 글귀가 있다.



  상제님께서 수륙병진의 도수를 행하실 때, 군항(群港, 지금의 군산)으로 떠나시기 전 김병선(金炳善)이라는 종도에게 “영세 화장 건곤위 대방 일월 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건(乾), 곤(坤), 간(艮), 태(兌)는 팔괘의 명칭을 말한다. 대개 문왕 팔괘는 감(坎)괘와 리(離)괘를 제외한 모든 괘가 부조화 상태에 있어 주역(周易) 세상의 현실은 언제나 조화와 부조화, 균형과 불균형이 공존하게 된다고 설명된다.19 반면, 정역(正易)의 팔괘는 건(乾)ㆍ곤(坤)과 간(艮)ㆍ태(兌)가 각각 사방위(四方位)의 정위치에 놓여지고, 감(坎)ㆍ리(離), 진(震)ㆍ손(巽)의 다른 괘들도 서로 마주 보며 화합하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어 조화와 균형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영세화장건곤위(永世花長乾坤位) 대방일월간태궁(大方日月艮兌宮)”의 글귀는 곧 후천에 도래하는 정역 세상과 관련되며, ‘영원한 문명의 꽃은 건곤(乾坤)의 새 질서 속에서 길이 만발하고, 대도(大道) 20인 일월은 간(艮)방과 태(兌)방에 자리하네’라고 풀이되는데, 이 글귀에 나타나는 꽃 화(花) 역시 정역 세상에서 펼쳐지는 후천 문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또한, 개화(開花), 개화기(開花期) 등의 의미도 ‘문화ㆍ예술이 융성하고 번창함, 또는 그러한 시기’에 비유되는데, 이때 개(開)는 닫혀 있거나 감추어져 있던 것이 열린다는 뜻이며, 개화(開花)는 꽃봉오리에서 꽃잎이 벌어지며 피어나듯이 준비된 무언가가 열리며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표현과 사례에서 문명과 꽃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짐을 알 수 있다.




천지공사를 통한 문명개화(文明開花) 


  천지공사(1901~1909)는 한반도에서 자주적인 문명개화 정책이 시도되었던 대한제국(1897~1910) 시기에 실행되었다. 이 시기에 상제님께서 문명개화(文明開花)를 언급하셨지만, 이는 서구 문명을 선진문명으로 보고 그것을 추종하고자 했던 시류로서의 문명개화(文明開化)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문명개화(文明開化)의 문명이 서구 문명을 뜻하는 반면, 문명개화(文明開花)의 문명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써 여시고자 하는 후천 문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해 후천 문명과 관련된 상제님의 말씀과 공사를 살펴보며 후천 문명의 특성과 문명개화(文明開花)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새로운 후천 문명 건설이 필요한 까닭과 그 특징은 다음에서 나타난다.


세계의 모든 족속들은 각기 자기들의 생활 경험의 전승(傳承)에 따라 특수한 사상을 토대로 색다른 문화를 이룩하였으되 그것을 발휘하게 되자 마침내 큰 시비가 일어났도다. 그러므로 상제께서 이제 민족들의 제각기 문화의 정수를 걷어 후천에 이룩할 문명의 기초를 정하셨도다. (교법 3장 23절)


  위 성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세계의 각 족속은 제각기 생활 경험의 전승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이룩하였으나, 그것이 만나 서로 충돌하게 되어 큰 시비가 일어났기 때문에 상제님께서는 시비로 인한 상극을 막기 위해 각 족속의 문화의 정수를 걷어 후천 문명의 기초를 새로이 정하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탕에서 형성되는 후천 문명이 여러 문화의 정수가 모여진 융합을 통해 상극과 시비에서 벗어난 상생 지향의 문화적 특성을 가지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여주본부도장 돌병풍>


  새로운 문명의 건설과 관련하여 상제님께서는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21라고 하시며,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사상이나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모산(父母山)의 정기를 비롯한 각처의 정기를 뽑아 합치는 공사를 행하셨다.22 문화란 사람들의 관념 즉, 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형성되는 것이므로 상제님께서 그러한 사상과 문화가 서로 엇갈리지 않도록 근원적인 공사로 지기(地氣)를 통일하신 것이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최수운(崔水雲)을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으로, 진묵(震黙)을 불교(佛敎)의 종장(宗長)으로, 주회암(朱晦庵)을 유교(儒敎)의 종장(宗長)으로, 이마두(利瑪竇)를 서도(西道)의 종장(宗長)으로 각각 세우셨다.23 이는 상제님께서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며 지상천국을 세우고자 했던 인물들로 도(道)와 교(敎)의 종장을 새롭게 하신 것으로 각 문화의 정수를 융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상제님께서는 서양 사람이 발명한 문명이기(文明利器)에 대해서 차경석 종도와의 대화 속에서 창생의 편의를 위해 그대로 두고 사용하도록 공사를 처결하셨고, 이로써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지속되도록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진묵(震默)이 … 원(冤)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화 계발에 역사하였나니라.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故國)으로 데려와서 선경(仙境) 건설에 역사케 하리라”24라고 하시며 진묵을 불러 선경 건설에 참여케 하셨듯이, 상제님께서는 모든 도통신과 문명신을 거느리고 각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文化)의 정수(精髓)를 뽑아 통일하시고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으셨다.25 따라서 이러한 상제님의 공사와 도수를 통해 형성되는 후천 문명은 여러 문화의 정수의 융합으로 형성되어 문화적 포용력과 확장성을 가지는 문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나니…”(교운 1장 65절)라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역대 성인이 펼친 도는 곧 세계 여러 족속의 문화의 바탕을 이루었다. 노자의 도가 무위자연과 불로장생을 지향하는 도교문화를 형성하였고, 석가모니의 도가 자비의 실천과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불교문화를 형성하였으며, 또한 공자의 도가 인과 예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를 이루었고, 예수의 가르침이 하느님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성인의 도는 대체로 성인의 탄생지로부터 문화를 형성하고 그로부터 세계 각 지역에 전파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곧 상제님께서 펴신 도와 천지공사를 통해 건설되는 후천 문명의 발상지가 될 것이며 이로부터 새로운 문명이 세계 각지에 꽃피우는 흐름의 전개가 예상된다. 문명개화(文明開花)에는 천지공사를 통해 심어진 후천 문명의 씨앗이 시간의 흐름과 도수에 따라 개화되는 과정도 그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으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온 세상에 동시적으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도전님의 “앞으로의 세계를 지상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출발지로서, 상제님께서는 한국 땅에 오신 것이다” 26라는 말씀 속에서도 그 의미가 나타나듯이 문명개화(文明開花)는 상생(相生)의 마음이 내포된 한민족의 어진 성품27과 문화 창조력의 토대 위에 우리나라의 국운과의 연관성 속에서 실현되어 가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그런 까닭에 천지공사 이후 한국에서 전개되는 상생의 사회문화적 흐름 속에서 상제님 말씀과 공사에 따른 후천 문명의 특징이 엿보이며, 한국은 지상천국의 출발지이자 새로운 문명의 선도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상제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문명개화(文明開花)의 의미는 기존의 ‘서구적 근대화’를 의미하는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다르며, 지향하는바 또한 큰 차이가 있다. 당시의 문명개화(文明開化)는 서구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근대화를 이루려는 흐름을 말한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문명개화 삼천국’을 언급하시며 ‘문명개화(文明開化)’가 아닌 ‘문명개화(文明開花)’라고 표현하신 것은, 이를 통해 당시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던 시대 조류와 달리 천지공사를 통해 상생의 후천문명의 기초가 갖추어지고 이로써 새로운 문명이 세상에 펼쳐지게 되는 더 큰 흐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장차 천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28라는 말씀에 비추어볼 때, ‘문명개화 삼천국’이라는 표현에서 삼천국은 ‘온 세상’ 또는 ‘천하’의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러므로 “만국 활계 남조선, 문명 개화 삼천국”이라는 말씀에는 상제님께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상극적 소용돌이에서 천지공사를 통해 후천 상생 문명의 씨앗을 심으셨으니, 세계와 인류를 살릴 계책 즉 해원상생의 진리가 우리나라로부터 출현하고 새로운 문명이 도수에 따라 세계만방에 꽃을 피우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때, 『대순전경』 등 대다수의 다른 경전들이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취지나 방향과 맞지 않는 문명개화(文明開化)라는 한자 표기를 한 반면, 『전경』에서는 문명개화(文明開花)라는 한자 표기를 함으로써 상제님의 말씀과 천지공사의 취지에 부합하는 적확(的確)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01 이완교, 『예언의 원리 그 신비를 찾아』, (서울: 한솜미디어, 2006) 참고. ‘금산사가(金山寺歌)’는 정북창(鄭北窓, 1506~1549)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내용이나 형식, 시기를 볼 때 그의 저작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02 『선도진경』(1965)과 『전경』(1974)에 문명개화(文明開花)로 표기되어 있다.
0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04 동도서기론은 “1876년 개항을 전후로 하여 형성된 서양 문명에 대한 수용 논리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과 기기만을 수용하여 국가의 자강(自强)을 이루자는 것”을 의미하고, 유교개신론은 “근대 관념과의 조화 속에서 유교의 보편적 장점을 취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개신(改新)하여 현실에 확대ㆍ구현하려는 주장”을 말하며, 이와 관련된 학자로는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등이 꼽힌다. 「동도서기론」, 『두산백과』; 김형만, 「도하 김형만의 한국 유학 이야기」, 《목포시민신문》, 2022.02.11 참고.
05 정용화, 「문명개화론의 덫」, 『국제정치논총』 41-4 (2001), p.297.
06 에도ㆍ메이지 시대의 계몽 사상가(1835~1901)로서 봉건 시대 타파와 서구 문명의 도입을 주장하였으며, 특히 자연과학과 국민계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일본이 근대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근대사상을 상징하며 일본 일만엔권 초상화의 인물로도 유명하다.
07 「문명개화」, 『문학비평용어사전』 참고.
08 「문명개화」, 『두산백과』 참고. 개화사상은 동도서기론을 바탕으로 동양의 사상적 전통을 지키며 서양의 기술 문명을 받아들이자는 온건개화파와 기술 문명뿐만 아니라 사상 및 정치체제와 제도까지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개조해야 한다는 급진개화파로 구별되는데, 급진개화파의 주장과 흐름이 문명개화(文明開化)의 의미에 가깝다.
09 김도형, 「대한제국 초기 문명개화론의 발전」, 『한국사연구회』 121 (2003), p.199.
10 「갑오개혁」, 『두산백과』.
11 김도형, 앞의 글, p.172 참고; 「대한제국기의 개혁사업」, 《우리역사넷》.
12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 『문화원형백과』.
13 정용화, 앞의 글, p.300.
14 정용화, 같은 글 참고.
15 교운 1장 9절.
16 예시 24절.
17 『네이버 한자사전』
18 『네이버 한자사전』 화(華); [한자로드(路)] 신동윤 | (삽화) 변아롱, 박혜현.
19 동인, 「동인 선생의 역경 강좌 (4)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 《광주매일신문》, 2016. 11. 28.
20 “大方=大道, 常道”, 「大方」,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 “大方=大道理”, 「大方之家」,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 手机版(모바일버전 app.3.0)
21 공사 3장 5절.
22 공사 3장 6절; 신제희, 「地氣統一公事에 관한 小考」, 《대순회보》 25 (1991), p.5 참고.
23 교운 1장 65절.
24 권지 2장 37절.
25 예시 12절.
26 「도전님 훈시」(1991. 8. 26).
27 공사 2장 4절, “인 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
28 교운 1장 17절.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