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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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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소개(상제님 편) : 팥거리, 청련암(靑蓮庵), 용안대

상제님·도주님·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  

팥거리, 청련암(靑蓮庵), 용안대
 
 
글  종단역사연구팀
▲ 팥거리 팽나무 주막 터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77-1)
 
 
팥거리
 
◎ 해당 『전경』 구절:
안필성이 상제를 모시기를 기뻐하여 종종 음식을 대접하였도다. 어느 날 그가 동곡(銅谷) 앞 팥거리에서 상제를 만나 대접하려고 하는지라. 상제께서 그 뜻을 알아차리시고 “내가 반찬을 마련하리라” 하시고 못을 휘어서 낚시를 만들어 팥거리 근처에 있는 작은 웅덩이에 던지시니 잉어와 가물치가 걸렸도다. 이것으로써 반찬을 만들어 잡수시면서 필성과 함께 한때를 보내셨도다. (행록 4장 2절)
◎ 지명유래: 팥거리는 용화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들판에 있는 정자가 팥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팥정이’ 또는 ‘두정(豆亭)’이라고 한다.
◎ 『전경』과 관련된 곳:
팥거리 주막은 팥정이 사거리에 있는 공터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이곳 주막 주인은 상제님께서 술을 아무리 많이 드셔도 취하질 않으셔서 놀라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01 그리고 팥거리[팥정이] 사거리를 지나 동곡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큰 팽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옆에 또 다른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02 상제님께서 안필성에게 쉬어가며 일하라고 씨나락(볍씨)을 땅에 뿌리신 곳03이 여기다. 안필성이 상제님을 대접하려는 것을 아시고 상제님께서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셨던 작은 웅덩이는 금평저수지 쪽 아래에 있는 환희교(歡喜橋) 근방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련암(靑蓮庵)
 
◎ 해당 『전경』 구절:
금산사 청련암(靑蓮庵)의 중 김현찬(金玄贊)이 전부터 상제의 소문을 듣고 있던 차에 상제를 만나게 되어 명당을 원하니 상제께서 그에게 “믿고 있으라”고 이르셨도다. 그 후 그는 환속하여 화촉을 밝히고 아들을 얻었느니라. 그리고 김병욱(金秉旭)이 또한 명당을 바라므로 상제께서 역시 “믿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도다. 그 후 그도 바라던 아들을 얻었느니라. 수년이 지나도록 명당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기에 병욱은 “주시려던 명당은 언제 주시나이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바라던 아들을 얻었으니 이미 그 명당을 받았느니라”고 이르시고 “선천에서는 매백골이장지(埋白骨而葬之)로되 후천에서는 불매백골이장지(不埋白骨而葬之)니라”고 말씀을 하셨도다. 그 후 얼마 지나 현찬이 상제를 뵈옵고 명당을 주시기를 바라므로 상제께서 “명당을 써서 이미 발음되었나니라”고 말씀이 계셨도다. (행록 1장 37절)
◎ 지명유래와 변천사:
청련암은 종도 김현찬이 스님으로 있을 때 기거하였던 곳으로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산4번지에 위치한다. 이곳은 모악산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금산사 소속의 암자로 금산사에서 동남쪽 1.5㎞ 거리에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고 정유재란 이전 청사굴(靑社窟)이라고 불렸다. 한국전쟁(6.25사변) 중 소실되는 위기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였다.04 1959년 극락전과 삼성각, 그리고 두 동의 묘사(廟祠)[제사를 모시는 사당]를 지었고, 1962년에 대법화보살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2010년에 와서 삼성각 해체 보수와 요사채, 극락전을 완공하였다.
 
▲ 청련암
 

용안대
 
◎ 해당 『전경』 구절: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을 이끌고 모악산 용안대(龍眼台)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셨도다.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교통이 두절되고 따라서 양식이 두 끼니의 분량만이 남으니라. 상제께서 종도들이 서로 걱정하는 것을 듣고 남은 양식으로 식혜를 짓게 하시니 종도들은 부족한 양식을 털어서 식혜를 지으면 당장 굶게 되리라고 걱정하면서도 식혜를 지어 올렸도다. 상제께서 종도들과 함께 나누어 잡수시는데 눈이 멈추고 일기가 화창하여 쌓인 눈도 경각에 다 녹고 길도 틔어 종도들과 함께 돌아오셨도다. (권지 1장 31절)
 
▲ 용안대 터

 
◎ 찾아가는 길:
용안대는 모악산 심원암 부근에 있는 눌연계곡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금산사에서 심원암쪽으로 가는 길에 모악정이 나오고 그 뒤쪽으로 『전경』 권지 1장 31절처럼 험하고 좁은 산길을 올라가면 용안대 터가 나온다. 현재 용안대는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축대만 있고 주위에 기와가 널브러져 있어 건물의 흔적만 있을 뿐 빈터로 남아 있다.

▲ 용안대로 가는 길에 있는 모악정
 
 
[참고문헌]
『전경』
『김제문화』 제5호, 학예사, 2000.
『우리고장의 옛지명』, 김제문화원, 2000.
『한국지명요람』,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명총람』 11-전북편 상, 한글학회, 2003.
김자권, 『금구읍지』, 대흥정판사, 1981
송호열, 『한국지명변천』, 성지문화사, 2006.
신상미, 「안필성과 동곡 앞 팥거리」, 《대순회보》144호, 2013 , pp.31
「호소신 공사와 복솥」, 《대순회보》109호, 2010, pp.15~16.
「상제님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을 없애다」, 《대순회보》104호, 2010, pp.27 사진.
「모악산 청련암 중창불사 회향」, 《불교 타임즈》 2012. 12. 18
디지털김제문화대전 홈페이지(http://gimje.grandculture.net/)
 

 
 

01 안필성 손자의 인터뷰
02 안필성 증손자의 인터뷰
03 『전경』 행록 2장 24절 내용
안 필성(安弼成)이 못자리를 하려고 볍씨를 지고 집을 나서려는데 상제를 뵈었도다. 상제께서 “쉬었다 술이나 마시고 가라”고 말씀하셨으되 필성이 사양하는지라. “못자리를 내기에 바쁜 모양이니 내가 대신 못자리를 부어주리라” 하시고 지게 위에 있는 씨나락 서너 말을 망개장이 밭에 다 부으셨도다. 그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주시는 술을 마시면서도 근심하였도다. 주모가 들어와서 씨나락은 가지고 온 그릇에 그대로 있는 것을 알리는도다. 필성은 이상히 여겨 바깥에 나가 뿌려서 흩어졌던 씨나락이 한 알도 땅에 없고 그대로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전보다 한층 더 상제를 경대하는도다.
04 「모악산 청련암 중창불사 회향」, 《불교 타임즈》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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