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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코너 : 등신불(等身佛)의 교훈
등신불(等身佛)의 교훈
오천1 방면 평도인 조광희(대진연합회 학술부 차장)
11월 22일 서울 충무로 유스호스텔 미지센터에서 대진연합회 학술부 모임이 있었다. 그날 학술부장의 추천으로 ‘등신불’이란 드라마를 보았다. 태평양 전쟁에 학도병으로 끌려 나간 주인공이 학도병에서 탈출하여 정원사란 절에 몸을 의탁한 뒤 불교에 귀의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 중간에 삽입된 ‘등신불’에 얽힌 ‘만적선사’의 불교 설화에 작품의 무게 중심이 실려 있었다. 이 영상물은 모 TV프로그램에서 부처님 오신 날에 방영되었던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인 김동리 선생님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관동군으로 남경(南京)에 주둔해 있다가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이때 그는 정원사란 절에 들러 손가락으로 혈서(血書)를 써 보이며 불교에 귀의코자 한다. 주지 스님의 허락을 얻은 주인공은 그 절에 머물면서 지내던 중 스님들과 신도들이 매우 신성시하는 금불각(金佛閣)의 등신불을 몰래 엿보게 된다. 그 불상은 옛날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었다. 주인공은 우연히 금불각 안에 비치된 만적 스님이 등신불이 되기까지의 사연이 적힌 한 권의 책을 접하면서 이야기는 다시 만적 스님이 살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개가(改嫁)하여 새로운 가정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집안 노복과 통정하여 남편을 독살하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복 남매마저 없애려고 하자 남매는 집을 떠나버린다. 이에 만적은 큰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하다가, 집을 나간 이복 남매인 신과 여옥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끝내 그들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속세의 인연을 끊고자 불가에 귀의한다. 10년 후 어느 날, 자기가 그토록 찾았던 신과 여옥이 문둥병이란 천형(天刑)에 고통 받고 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죄를 대속하고 그 남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부처님 전에 소신공양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그가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소신공양하던 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남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질병이 치유되고 여러 가지 이적(異蹟)이 일어난다. 이때부터 새전(賽錢: 신령이나 부처 앞에 바치는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해 삼 년이나 그치지 않았다. 그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金佛閣)을 지었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 불상에 인간적 고뇌의 슬픔이 서려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주인공에게 원혜대사(原惠大師)는 절에 와서 혈서를 쓰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하며 미소 짓는다. 대사의 미소 속에서 주인공은 ‘만적’의 소신공양뿐만 아니라 손가락 하나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맹세한 자신 또한 참된 불제자임을 깨닫는다. 이 드라마를 본 후 등신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품의 내용 중 소신공양을 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극적인 전개를 위한 허구였지만 중국에 실재로 등신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구화산 육신전(肉身殿)의 등신불이 있다. 그런데 이 육신전의 주인이 신라 왕자 출신의 김교각(金敎覺, 696∼794) 스님이란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는 당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구화산에서 75년간 수행하다가 열반에 들었는데 삼 년이 지나도 몸이 썩지 않았다. 그래서 그 절의 스님들이 몸체에 금박을 입혀 등신불을 봉안하니 중국 불자들이 그를 “지장왕보살”로 추앙하며 받들고 있다. 불교에서는 최고 경지로 수행하면 입적한 후 육신이 썩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용어로 이를 ‘전신사리(全身舍利)’라고 하는데 이런 경지는 물론 일반적인 수행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입적 후 등신불이 된 고승들을 중국에서는 ‘육신보살(肉身菩薩)’이라 부르고, 국내에서는 등신불, 혹은 즉신불(卽身佛)로도 알려져 있다. 당송 이후 많은 ‘등신불(等身佛)’이 나타났지만 유감스럽게도 혜능선사 이후 천 년 동안 전란이 빈발해 많은 명산대찰들이 파괴되고 승려들이 흩어져 대부분의 등신불이 보존되지 못했다. 더구나 근대에는 문화대혁명이란 사상 최대의 문화재 파괴로 인해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등신불의 수량은 더욱 적은 실정이다. 그 중 몇몇 불상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등신불에 대해 조사해 보고 나서 인의사태나 석은련처럼 얼마 전에도 이런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등신불이 나타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등신불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등신불은 고도의 수행을 통해 높은 경지에 도달한 수도승의 상징이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보살과 같은 존재로서 기복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등신불’에 나오는 만적스님처럼 어머니의 죄를 사하기 위해 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것,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부처되기를 포기한 지장보살처럼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마음. 그것에 사람들이 무한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란 짐작을 해본다. 지금은 비록 사심(私心)에 사로잡힌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깨달음을 얻고 득도(得道)하여 이 우주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픈 것이 어찌 보면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의 영원회귀성 추구 또는 인간본질이라고도 한다. 인간본질 중의 하나가 ‘이타심’, 곧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인데 이에 대한 자각(自覺)은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했을 때 가능하다. 만적스님처럼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있을 때, 남은 물론 자신도 잘 된다는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평상시 작은 것부터 이웃과 나눌 줄 알고 양보하며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소신공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의 작은 것부터 베풀 줄 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밝고 건강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등신불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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