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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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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經』용어 : 『典經』 용어

『典經』 용어

 

 

교무부

 

• 공정(公庭) : 교운 1장 33절/169쪽. 예시 17절/315쪽.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일을 처리하는 정사(政事) 혹은 관청(官廳). 공정(公庭)은 원래 ‘관가의 뜰’을 이르던 말로 ‘정(庭)’은 ‘정(廷)’과 같은 글자이다.

 

 

• 과세(過歲) : 행록 3장 61절/54쪽.

묵은 해를 보내고 설을 맞이함.

 

 

• 과차(過次) : 교법 1장 17절/224쪽.

지나는 길. 지날결 즉 지나는 겨를이나 기회.

 

 

• 관건(冠巾) : 교운 1장 32절/169쪽.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머리에 쓰는 물건.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종류가 다양한데 관(冠)은 주로 머리카락이나 말총으로 엮어 만든 머리쓰개이며, 건(巾)은 두건(頭巾)처럼 헝겊 따위로 만들어서 머리에 쓰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특히 무당이 쓰는 관건은 몸주가 되는 신과 굿의 종류(굿거리)에 따라 투구, 갓, 진사립(眞絲笠), 전립(戰笠)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를 들면 대동굿이나 군웅굿에서는 갓을 쓰고, 잡귀를 쫓아내는 별상거리, 대거리에서는 전투용 전립(戰笠)이나 호랑이 수염이 꽂힌 주립(朱笠)을 주로 쓴다.

 

 

• 관묘(關廟) : 행록 4장 11절/59쪽. 권지 2장 21절/283쪽.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 : ?~219)를 모신 사당.

관우가 국가적 차원에서 무신(武神)으로 받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중기부터이다.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영락제(永樂帝)가 타타르를 정벌할 때 관우로부터 신비한 영험을 입었다고 하여 관우 신앙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도 명나라 유신(遺臣)이 타이완[臺灣]에서 일으킨 폭동을 진압할 때 관우로부터 신비한 영험을 입었다고 하여 관우를 극진히 모셨다. 지금도 관우는 민간에서 신성불가침의 우상이며 무운(武運)과 재운(財運)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관우 신앙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은 임진·정유 왜란 때에 원정 왔던 명나라 장수들에 의해서였다. 당시 한양의 남대문 밖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유격장(遊擊將) 진인(陳寅)이 진중의 뒤뜰 가옥 건물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 관왕묘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관왕 사당의 효시이다. 진인은 다시 조선 정부에도 설치를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1598년(선조 31) 4월 서울의 숭례문(崇禮門:남대문) 밖에 최초의 관묘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남관왕묘’이다. 남관왕묘(남묘)는 서울 용산구 도동1가 9번지에 있었으며, 1978년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서울 동작구 사당3동 181-1로 이전되었다.

1602년 봄, 명나라 신종의 칙령에 의해 서울에는 3년 동안의 공사 끝에 또 하나의 관묘가 준공되었는데, 이는 중국의 관묘를 그대로 본뜬 것이라고 한다. 이 관묘는 흥인문(興仁門 : 동대문) 밖에 세워졌으므로 ‘동관왕묘’라고 한다. 동관왕묘(동묘)는 현재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하고 있다. 그 뒤 고종 때에 와서 다시 서울에 북묘·서묘를 세웠지만 이 묘들은 모두 동묘에 합사되고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방에서도 1598년을 전후하여 강진·안동·성주·남원 등 4곳에 관묘가 건립되었다. 강진의 관묘는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陳璘)이, 안동 관묘는 명나라의 진정영도사(眞定營都司)인 설호신(薛虎臣)이 세웠다. 안동 관묘는 처음에는 안동 성내에 있었으나 1606년 서악의 동대(東臺)로 옮겼다. 성주의 관묘는 명나라의 장수 모국기(茅國器)가 세웠다. 처음에는 성주성 동문 밖에 있다가 1727년(영조 3) 남정(南亭) 아래로 옮겼다. 남원의 관묘는 서문 밖에 있으며 명나라의 도독 유정(劉綎)이 건립했다.

구한말에도 지방 여러 곳에 관묘가 건립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전북 문화재자료 5호로 지정된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에 위치한 관묘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관묘는 1895년 전라 관찰사 김성근과 남고산성 책임자 이신문이 제안하여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되었다. 관우장군상이 용상에 앉혀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주창, 왕보장군, 관평, 조루장군상이 시립하고 있으며 뒷면 벽에는 옥천대사, 왕천군도, 장성군도를 걸었다. 이 관묘에 모셔진 관우가 상제님을 많이 도왔다고 하여 주변 증산계파의 교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태인에도 관묘가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 관음(觀音) : 교운 1장 30절/168쪽.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약칭. 관세음(觀世音), 광세음(光世音),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자재(觀自在)라고도 함.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誓願)으로 하는 보살로,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觀)하므로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하면 곧 구제해준다고 한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함께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협시(夾侍)이며, 세상을 교화함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根機:교법을 받을 수 있는 중생의 능력)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33신(身)이 있다고 한다. 보통 6관음이 일반적인데 이 중 성관음(聖觀音)은 본신(本身)이고 나머지는 보문시현의 변화신(變化身)이다. 각각의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성관음(聖觀音): 주로 아귀도를 구제한다 ②천수관음(千手觀音): 주로 지옥중생을 구제한다 ③마두관음(馬頭觀音): 주로 축생의 고통을 구제한다 ④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주로 아수라의 고통을 구제한다 ⑤준제관음(准提觀音): 주로 인간의 고통을 구제한다 ⑥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주로 천상의 고통을 구제한다

한편 관세음보살이 왼손에 들고 있는 연꽃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상징하는데,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 것을,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는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피어날 불성을 나타낸다.

관음보살의 정토 즉 상주처는 인도 남부의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이라고 믿어졌다. 종래의 불교신앙이 자력적임에 비하여 관음신앙은 다분히 타력적 요소가 짙어서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되었으므로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도 기도대상으로 널리 신봉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기도 도량이 전국적으로 많이 산재해 있는데, 그 중 강화도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양양의 낙산사가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참고문헌은 매호마다 출처가 반복되어 기재될 수 있는 관계로 연재가 끝난 후 실을 예정입니다. 혹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교무부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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