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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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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코너 : 인간관계의 다각적(多角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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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다각적(多角的) 이해

 

 

동해4 방면 선무 한수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관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단면적(斷面的)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다각적(多角的)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가령 ‘선(仙)’이라는 글자는 신묘한 술법에 통달해 늙어도 죽지 않는 ‘신선(神仙)’이라는 존재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지만, 더 찾아보면 뜻밖에도 ‘죽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01

  의외로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은 글자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흔히 읽어오는 동화나 우화(寓話) 역시 그렇다. 예를 들어 『토끼와 거북이』는 ‘착한 거북이’와 ‘나쁜 토끼’라는 대립적 존재를 통하여 ‘성실이 재주를 이긴다’는 교훈을 주는 우화이다. 거북이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여 결국 승리하고, 토끼는 잔꾀를 부리다 달리기 시합에서 패배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거북이가 정말로 착했다면 낮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깨웠어야 하지 않는가? 거북이는 분명 자신이 질 것을 알면서도 경기를 시작했지만, 잠든 토끼 곁을 그냥 지나침으로서 게임의 공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즉, 경기 상에서의 ‘착한’ 행동인 페어플레이(Fair play)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모순점이 있다.

  이렇듯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면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시각을 다양화 시킬수록 기존에 인식하고 있던 정보의 내용은 달라져 가고, 그로인한 사고방식의 전환도 가능해진다. 글자나 우화뿐만 아니라 일반 사물, 사회 현상에 걸쳐 모든 분야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 및 평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역발상’이라는 용어가 부각되거나 동양과 서양의 견해 차이에 대한 연구물이 출판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각화로 보려는 여러 대상 중에서도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화두로 오르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사물이나 사건의 정보는 단면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여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낭패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사회나 국가 역시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려는 노력은 역지사지(易地思之)02라는 말이나 삼강오륜(三綱五倫)03이라는 정책으로 장려되어 왔을 만큼 중요한 당면과제인 것이다.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상대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견해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 개인에 대한 관점이 모여 공론화가 되면 단면적인 형태로 굳혀지기가 쉽다. 예를 들어 이웃에게 상냥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도 열심인 A라는 사람이 있다면, 동네 사람들은 쉽게 그를 ‘좋은 사람’으로 단정 짓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A씨가 인면수심(人面獸心)04의 범죄자라고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냉랭하고 먹을 것 하나 안 사주는 B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변으로부터 ‘인색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B라는 사람이 자신이 번 돈 모두를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인(善人)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악인(惡人)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떻게 노력 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을 이해하려면 ‘결과’보다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은 단편적인 모습만을 볼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일방적으로 상대방만을 향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야 한다. 즉, 원만한 인간관계는 관점을 다양화하여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서만 실현이 가능하다.

  우리의 수도(修道) 역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 「수칙」의 마지막 조항이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반성한다는 것은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고, 오늘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으며 그것이 초래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자신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어야 그것이 연습이 되어 상대방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정보의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자신을 반성하는 한편, 상대방에게 서운한 일이 생겨도 마음의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살펴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또한 좋지 않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과정’과 ‘이유’를 살펴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의 일반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바로 해원상생(解相生)이 실현되는 세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01 선화(仙化) : 신선(神仙)이 된다는 뜻으로, "늙어서 병이나 탈이 없이 곱게 죽음"을 일컫는 말.
선유(仙遊) : ‘신선이 되어 자유로이 놀러 다닌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미화한 말.

02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이루(離婁)」에 나오는‘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말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뜻이다.
03 유교(儒敎)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
대순진리회에서도 수칙 二조(條)에서‘삼강오륜은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도덕의 근원이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04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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