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Home
대원종
사천왕(四天王) 설화를 따라서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사천왕(四天王) 설화를 따라서

 

  여주본부도장 숭도문(崇道門) 양쪽 외벽과 정각원(正覺院) 2층 왼쪽 벽에는 사천왕 벽화가 있다. 사찰에서 흔히 봤던 사천왕의 모습이 도장 벽화를 통해서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천왕 이야기를 따라 그것을 더듬어 보자.

  사찰에서는 대개 일주문(一株門)과 본당(本堂) 사이에 천왕문(天王門)을 세우고 그림이나 나무로 조각한 사천왕(四天王)을 장식한다. 그것은 악귀 잡귀를 막아 절 구석구석 청정한 기운을 지키고, 절을 찾는 이의 마음에 경건함을 불어넣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천왕은 한때 천상의 온갖 귀신을 부려 부처를 방해했던 못된 신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설법이 그들을 감화시켜 결국은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선한 신으로 변케 하였다. 그 후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있으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킴과 더불어 천하를 돌며 인간의 선악을 살폈다.

  사천왕 중 동쪽 하늘을 지킨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그는 손에 칼을 쥐고 선인에게는 상을 악인에게는 벌을 준다. 서쪽 하늘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의 삼차극(三叉戟), 왼손에는 보탑으로 죄인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것도 죄인에게 도심(道心)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남쪽 하늘의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오른손에 용을,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다. 그 위엄(威嚴)과 덕(德)은 만물의 생장을 돕는다. 북쪽 하늘의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는다하여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는 별칭과 함께 왼손에 든 비파로 어둠을 헤매는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수도한다. 각기 동서남북에 맞는 오행의 색을 얼굴에 가진 그들의 모습은 사찰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사천왕은 우리나라 역사서 『삼국유사』에는 호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중국 당나라는 신라가 그들의 도독부(계림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신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당나라는 수십 만의 대군을 태운 함대를 이끌고 경주 앞의 동해 바다로 쳐들어 왔다. 이에 문무왕이 명랑법사에게 적을 막을 수 있는 계책을 구하자, 이곳 경주 낭산(狼山)의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의 힘을 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의 침략으로 절을 완성시킬 시간이 없게 되자, 임시로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춘 뒤 사천왕상과 12신장을 모시고 밀교의 비법인 ‘문두루비법(文豆婁泌法)’1)을 썼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갑자기 풍량이 크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 (『삼국유사』권2 文武王法敏條)


  사천왕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들이 이제 천지신명과 더불어 우리 종단의 한편에서 자신의 뜻을 다하고 있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불법과 나라를 수호하는 그 기상 그대로 도장 벽화 속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흔히 느끼던 사천왕의 위협적인 모습도 우리 도장에서 만큼은 수도인들과의 거리를 좁히듯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늘 우리에게 뜻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악귀 잡귀로부터 부처의 법을 지켰듯이, 우리도 상제님의 진법을 해하려는 자들로부터 그 법을 함께 지켜주기를 바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1) 어떠한 자연 재해도 막을 수 있고, 악한 사람의 마음까지도 자비롭게 변화시키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비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