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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不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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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거(指南車)

불초(不肖)

불초(不肖)란 말에서 초(肖)는 小(작을 소)와 肉(고기 육)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잘게 썰어 놓은 고깃덩어리를 말하는데 고기를 잘게 썰어 놓으면 고기의 종류에 관계없이 대체로 비슷해 보여 구분이 힘들어지기에 이로부터 초(肖)는 ‘작다’는 뜻 이외에도 ‘닮다’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한다. 보통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불초소자(不肖小子)라 하는데 훌륭한 부모를 닮지(肖) 않은(不) 못난 자식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러한 의미에서 대개 불초한 사람이라 하면 어리석고 쓸모없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역사상 대표적인 불초한 인물은 전경에도 등장하는 수양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경 행록 1장 1절에는 중국 광동 강씨보(中國 廣東 姜氏譜)의 기록이 인용되어 있는데 ‘公佐太祖 以定天下後 煬帝纂位 公以退野(공좌태조 이정천하후 양제찬위 공이퇴야)’의 문장이다. 그 뜻을 해석해 보면  公(공 : 강이식 장군)이 太祖(태조 : 수문제)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후에 煬帝(양제 : 수양제, 문제의 아들)가 왕위를 찬탈하니 공이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나라 사람인 강이식 장군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진주 강씨의 시조가 된 사연을 대략 알 수 있다.

수양제의 왕위 찬탈은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기에 수나라 개국 공신이었던 강이식 장군이 중국을 등지고 고구려로 귀화하여 진주 강씨의 시조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부자간인 수문제와 양제의 일생을 대략 살펴볼 필요가 있다. 6세기 말까지 중국은 정치적으로 거의 300년 가까이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의 시기였다.

이 오랜 분열의 시기를 막 내린 수나라 개국황제인 수문제 양견(楊堅)은 북주(北周)의 공신(功臣) 수국공(隋國公) 양충(楊忠)의 아들이다. 수문제는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여 분열시기의 유물인 많은 제도적 잔재를 털어버리고, 통일된 국가와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였는데, 북방과 남방을 통일하여 남북 분열국면에 종지부를 찍고, 황하와 장강 유역이 마침내 한 왕조의 통치권 안에 들게 했으며, 정치 개혁, 민족 융합 추진, 남북경제 교류의 활성화, 화폐와 도량형 통일 등의 조치를 실행하여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추진했다. 그가 정한 균전제(均田制), 부병제(府兵制)등은 후에 당나라의 율령(律令)이 되어 당나라의 경제와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된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그의 아들 수양제 양광(楊光)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사상 최고의 폭군의 한사람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제위(帝位)에 오르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시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정을 연발하여 수왕조의 역사를 불과 37년 만에 끝나게 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수양제의 여러 실정은 호화 방탕한 생활, 3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遠征), 대규모 토목공사 등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주변 이민족이 참조(參朝)할 때면 전국에서 악공을 소집하여 궁전 정문에서 갖가지 피로연(披露宴)을 베풀었는데 관현(管絃)을 연주하는 자만 무려 1만8천명에 이르렀고, 한 달에 걸쳐 매일 찬치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으니 아버지 수문제가 비축했던 많은 부(富)도 금방 바닥이 났고, 이에 따라 많은 부역과 세를 짊어 질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의 원성은 드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수나라 멸망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고구려를 세 차례에 걸쳐 침공했던 사건이다. 전국 각지에서 1백만이 넘는 군사를 징집하였는데 군량운반에 종사하는 인원만 2백만에 달했다. 그런 대군을 거느리고 친정(親征)을 감행했지만 그때마다 고구려에 패했고 이로 인하여 국내의 불만이 폭발,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측근들로부터 목이 졸려서 죽음으로써, 수왕조는 불과 2대(代) 37년만에 멸망했다.

뛰어난 임금으로 평가 될 수도 있었던 수문제는 불초한 아들 양제로 인해 역사적으로도 인망을 잃었다. 수문제는 당나라 번영의 기초를 놓은 수나라의 개국 황제로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희대의 폭군이었던 수양제의 아버지로 더 널리 기억되고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제는 아버지 문제에게 있어 정말로 불초(不肖)한, 전혀 닮지 않은 아들이었다. 진실로 불초했던 양제의 말로(末路)와 이 양제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수나라를 떠나 고구려로 귀화하여 진주 강씨의 시조가 된 강이식 장군의 일화는 불초하지 말것과 불초한 자와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우리의 주문을 보면 도문소자(道門小子)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소자(小子)란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도문소자는 도문에 들어온 수도인 각자가 양위 상제님께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 되며 결국 수도인들이 양위상제님의 자식들임을 의미한다. 부모님의 덕을 훼손하여 그 이름을 욕되게 하는 불초한 행위가 큰 허물인 것처럼 우리 수도인의 언행(言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양위상제님의 덕화가 손상되어 그 이름에 누를 끼친다면 이러한 수도인은 수양제와 같은 정말 불초한 자식이 되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수도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사람들이 양위상제님을 들추게 하고, 종단의 평을 나쁘게 만드는 행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도를 위해서 그 같은 행위를 했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라 하셨음을 우리 수도인들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지침과 훈시를 통해 도전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은 도문소자(道門小子)의 길이며 불초소자(不肖小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민원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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