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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正月)의 세시풍속(歲時風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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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여 행하는 특수한 생활행위인 세시풍속은 세시(歲時)·세사(歲事) 또는 월령(月令)·시령(時令)이라고도 하며, 단조로운 연간 생활 과정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여 생활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대체로 계절에 따라서 세시풍속의 내용이 결정되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농사와 관련된 날짜(농업의 개시, 파종, 제초, 수확, 저장 등)에 따라서 세시풍속이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시풍속의 역사는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삼한의 춘추농경의례 등과 같은 기록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세시풍속이 널리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농업이 생활의 중심이었던 시절엔 세시풍속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였으나 산업사회가 진행되고 외래문화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부터 세시풍속의 전승(傳承)은 변화하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어떤 민족을 침략하면 제일 먼저 그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을 말살하여 영원한 속국으로 삼으려 했던 침략자들의 시도를 떠올려 본다면, 세시풍속은 우리가 적극 보존하고 계승해야만 하는 소중한 민족의 정신이자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다.

정월은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인만큼 그 중요성도 크기 때문에 많은 세시풍속 행사가 집중되어 있다. 4대 명절(설, 대보름, 단오, 추석) 가운데 원단과 대보름이 들어 있고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인 입춘도 들어 있어 사람들은 한 해의 시작을 즐거운 명절 기분에 싸여 시작할 수 있었다. 마침 원단, 대보름, 입춘이 모두 우리 종단의 치성행사가 있는 날이므로 각각의 날에 대해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 원단(元旦)

1년의 첫 날인 원단은 여러 명절 중의 으뜸이다. 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설 또는 설날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과거 일제가 설날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양력 1월 1일에 신정 쇠기를 강요하였고, 해방 후에도 정부에서 신정 쇠기를 유도하였지만 ‘설날’은 결국 없어지지 않았고, 1995년부터는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설날은 한자로 ‘愼日’이라고 쓰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보통 축제의 성격을 가지는 다른 명절들과는 달리 설날은 세장(歲粧: 설빔)을 하고 ‘조심하고 삼가는’ 자세로 조상에 대한 차례를 지내며, 1년 농사와 관계된 여러 가지 축원을 하는 날이었다.

한편 설날 하루 전날인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새우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수세(守歲)라 하였다. 이날 잠을 자게 되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집 안의 곳곳에 불을 밝혀놓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특히 부뚜막 솥 뒤에 불을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부엌의 조왕신(  王神)이 하늘에 올라가 천신(天神)에게 그 집에서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이 보고한다고 믿고 조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설날이 밝으면 아침 일찍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유교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에서는 아직도 사당에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까지 4대조의 신주를 모셔 두고 이날 순서대로 차례를 지내며, 5대조 이상의 신주는 각기 분묘 옆에 묻어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10월에 있는 시제 때에 제사를 지낸다.

원근(遠近)에 있는 자손들이 모두 장손 집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는 오랜 관습에 의해 지금도 설과 추석 때만 되면 전 국민의 대이동이 벌어진다. 그리고 설날 차례는 떡국이 주식이 되기 때문에 팔월 한가위의 송편차례에 대하여 ‘떡국차례’라고도 한다. 떡국은 설날의 대표적인 절식이기도 한데 이 날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 것으로 쳤다. 이북지방에서는 떡국 대신 만두국을 먹는다고 한다.

차례가 끝나면 참여했던 모두는 자리를 정돈하고 웃어른께 세배를 한다. 집안에서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세찬과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일가친척이 먼 곳에 살 경우에는 수십 리 길을 찾아가서라도 세배를 드리는 것이 예의였으며, 새해를 맞이하고서도 세배를 할 줄 모르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세배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의 기간 동안에만 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하였다. 세배를 주고받을 때는 보통 세배를 받은 측이 세배 온 사람에게 “모시고 과세 잘 했나?” 라든지 “올해에는 아들 낳을 꿈이나 꾸었나?” 등 상대방에 맞는 덕담을 해 주는 것이 관례이다. 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절이 끝나고 아랫사람이 먼저 어른께 “새해에 더욱 건강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등의 인사를 드리면 “금년에는 소원성취 하게.”라든지 “금년에는 복 많이 받게.” 등의 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세배를 받은 측에서는 덕담 외에도 세배를 한 사람이 어른일 경우에는 주식(酒食)을, 아이일 경우는 과일과 돈을 준다.

그밖에 설 풍속으로 복(福)조리를 매다는 풍습이 있다. 섣달 그믐날이 저문 뒤에 복조리 파는 소리가 여기 저기 들리면 집집마다 복조리를 사들여 붉은 실로 매어서 문 위나 벽에 걸어둔다. 이것은 그 해의 복을 복조리로 건진다는 뜻이다. 또 다른 풍속으로 야광귀(夜光鬼)를 물리치는 행사도 있다. 야광귀는 초 하루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두루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 버리는데, 신을 잃은 주인은 불길하다 하여 초 하루날 밤에는 아이들이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또 체를 마루 벽이나 뜰에 걸어둔다. 그러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침 닭이 울면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 입춘(立春)

때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나 대체로 정월에 들기 때문에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가 되었다. 입춘은 24절기 중의 첫 번째 절기이고,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가 될 때 봄이 시작되기 때문에 특히 그 시각을 입춘시(立春時)라고 하였고 입춘날 입춘시가 되면 행복을 나타내는 글귀인 입춘축(立春祝)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였다. 가장 널리 쓰이는 입춘축은 다음과 같다.


立春大吉 建陽多慶, 國泰民安 家給人足,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萬家, 門迎春夏秋冬福 戶納東西南北財


농가에서는 입춘 날에 보리 뿌리를 캐어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 그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대궐에서는 이날 원단(元旦)에 문신(文臣)들이 지었던 연상시(延祥詩:상서로움을 맞이하는 시, 곧 새해를 맞는 시. 新年詩)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서 내전의 기둥과 난간에다 써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라고 불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계사년에는 12월에 입춘을 맞이하였다. 승정원에서 ‘난리가 나서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입춘대길 넉 자만을 써서 붙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상주하였는데 왕이 이를 허락하여 그리 시행하였다. 오늘날 간단히 ‘立春大吉’ 네 자만을 입춘축(立春祝)으로 쓰는 풍습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 대보름

정월 15일을 상원(上元) 또는 대보름이라 한다. 이 날은 설에 시작되었던 세수(歲首)명절이 끝나는 날이자 새해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하지만 당일은 명절이라 쉬고 다음 날인 16일은 귀신 날로 일손을 놓게 되니 실제 농사의 시발행사(始發行事)는 14일에 하게 된다.

14일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서 퇴비장에서 퇴비 한 짐을 져다가 논에 갖다 붓는다. 이것은 금년 농사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이며, 금년도 이렇게 부지런히 농사를 시작하였으니 풍년이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의 뜻도 담겨 있다. 낮이 되면 남자는 나무를 9짐 해야 하였고, 부인들은 삼베를 9광주리 삼아야 하였다. 또 14일에는 1년간 집에서 쓸 수수 빗자루를 매는 날이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이렇게 14일 하루 동안 분주하게 일을 하므로 이 날을 ‘여름날’이라고도 불렀다.

대보름날이 되면 이른 새벽에 날밤·호두·은행·잣·무 등을 깨물며 “일 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하고 축수한다. 이는 작절(嚼癤:부럼 깨물기)이라고 하기도 하고 고치지방(固齒之方:이를 단단하게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또 새벽에 청주(淸酒)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귀밝이술(明耳酒)을 마시는 풍습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른 사람을 보면 급히 불러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곧, “내 더위 사가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해서 더위를 팔면 그 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賣暑] 그러므로 이날 사람들은 온갖 애교로 불러도 여간해서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보름날에는 오곡(쌀, 보리, 콩, 조, 팥)밥을 지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데 이날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으면 좋다고 하여 가능한 한 여러 집을 돌아다닌다. 또 진채(陳菜: 묵은 나물)라 하여 박나물, 버섯, 콩나물 순 말린 것, 오이고지, 가지, 무, 시래기를 햇볕에 말려 두었다가 이날 무쳐 먹는데 이를 먹으면 한여름에도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정초부터 대보름날까지 연날리기를 하는데, 대보름이 되면 액연(厄鳶)을 띄운다 하여 연에다 액(厄)자를 쓰기도 하고 송액(送厄)이나 송액영복(送厄迎福) 혹은 ‘집안 식구 아무개 무슨 생, 몸의 액을 없애 버린다.[家口某生厄消滅]’라고 써서 연을 띄우다가 해가 질 무렵 연줄을 끊어 버린다. 이렇게 하여 그 해의 재액을 멀리 쫓아 보내는 것이다.

마침내 저녁달이 뜨면 대보름 행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달맞이가 시작된다. 이날 대보름달이 솟을 때에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하여 추운 겨울임에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산에 오르며 이 때 정월 13일경부터 만들어 놓은 달집을 태우기도 한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은 한 해 운이 좋아서 총각은 장가를 가게 되고 결혼한 남자는 아들을 얻게 된다고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산에 오른다. 또 대보름달로 한해 농사를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붉으면 가뭄, 희면 장마의 징조이며  달의 사방이 두꺼우면 풍년, 엷으면 흉년, 조금도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될 징조라고 한다. <교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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