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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견수
상생의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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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 정기성 기자

  대순진리회가 국내 최대 민족종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반인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최근 현대인의 화두인 ‘상생’이 이미 대순진리회에서 사회적 실천 윤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놀라움은 배가 될 것 같다.

  요즘 현대사회로 오면서 나타나는 부정적 변화 가운데 특히 여러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기주의일 것이다. 이미 정치는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핵가족이 가져다 주는 부작용 역시 갖가지 만만찮은 사회악으로 곧잘 부메랑이 돼 나타나고 있다. 또 이 같은 변화는 이미 개개인 마다 일반화 돼 있다시피 못 박혀 있다는 말이 지나친 표현은 아닌듯 싶다.

  아마도 현대는 과학 발전이 인간에게 편안한 물질적 삶을 제공해 준 대신, 상생의 본질인 사랑과 이해가 급속히 사라지면서 원한과 욕심이 가득 찬 사회적 반작용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정의로 포장되고 어느 곳에서는 합리라는 그릇에 담겨 그럴 듯하게 통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불어 서로 함께 하는 삶. 이런 삶의 본질을 상생이라고 볼 때 대순진리회가 내걸고 있는 보편적 사회윤리는 더욱 우리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우연히 여주본부도장에서 펴낸 「대순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순소식」엔 다른 종교단체 홍보책자와 달리 길지는 않아도 순간순간 회한과 감동을 주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고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실천적 깨달음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필자의 눈길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 윤리를 사회적으로 폭넓게 실천해야 된다’는 글귀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것은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이었다. 자신과 가족, 친지들의 안녕과 복을 비는 종교는 많이 접해 보았지만 사회가 베푼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헌신과 봉사로 보은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는 종교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성 종교들은 제한된 범위 안에 포함된 신자들만을 가족으로 포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현대의 많은 종교들이 이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마당에 대순진리회가 표방하고 있는 내용들은 어찌 보면 100년 전 쯤 전에나 가능했을 비현실적 교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처럼 약아빠지고 자신만을 내세우는 세상에 남과 함께 복을 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디 쉽사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난해 대순진리회의 3대 중요사업 통계 현황이 눈에 들어온 순간 이런 판단은 곧바로 잘못 됐다는 부끄러움으로 나타났다. 대순진리회는 3대 중요사업을 통해 철저하게 상생을 실천하는 덕목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종단에서는 지난해 교육과 구호자선, 사회복지사업 등에 무려 69억여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타서 쓰는 시나 군이 지출하는 복지기금의 열배, 스무배가 넘는 규모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출된 예산은 모두 도인들의 성금으로 마련된 것이라 하니 이런 것이야 말로 상생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순진리회에서는 “성금의 덕은 나라에 미치고 나아가서는 전세계 인류에 달할 것”이라 믿고 있다하니 그런 믿음 역시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의 짧은 공부 결과 우리나라 최대 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의 진리가 “남을 잘되게  하면서 함께 살아나가자”는 것으로 요약 됐다. 이런 생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대순진리회의 ‘상생’ 윤리는 다른 종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천적이고 실체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내가 거둔 작지만 의미 있는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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