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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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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코너 : 중국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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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나다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석사과정 김의성

 

  얼마 전 나는 학과 선후배와 보름간 중국에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다. 출발하는 당일 먼저 가 있는 일행을 만나기 위해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다. 아침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날부터 바리바리 싸둔 짐들을 챙기고 비장한 각오로 배낭을 메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이 처음이라 조금은 두려웠지만 일상을 벗어난다는 느낌이 신선했다. 인천공항에서 베이징[北京]을 경유하여 약 6시간 동안 비행해 중국의 남쪽 윈난(云南)성의 쿤밍(昆明)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에 내려 1주 전에 미리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선후배와 같이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는 쿤밍을 거쳐 기차를 타고 꾸이린(鷄林)으로 이동한 후 베이징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움직였다. 중국에 와서 세계지도를 보니 한국이 정말 작아 보였다. 기차를 타고 20시간을 여행해 본 적이 있다면 중국이라는 대륙의 크기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을듯하다.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여행을 가기 전 내 머릿속에 중국은 ‘made in China’라고 쓰인 많은 물건들의 잡다한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차창 밖의 수많은 빌딩과 자동차들을 보면서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내 마음속에는 중국을 낮잡아 보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얼마 안 되서 녹아내리고 말았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나에게 남은 중국의 이미지들은 정말로 활기찼다.

 

 

 

  우리가 양쑤워(陽朔)라는 지방에 갔을 때 그곳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쟈오양(焦洋)’이라는 나와 나이가 같은 중국인이 있었다. 그녀에게 한국을 거쳐 중국에 온 어느 덴마크인이 중국은 정말 ‘exciting’ 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조금은 공감했다. 빨간색 오성기, 천안문과 자금성, 사회주의 이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6억의 인구, 판다 곰, 태극권,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행렬,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이런 이미지들이 나의 눈 속으로 직접 들어왔다. 경제도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빠른 변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아무데서나 심지어는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모습을 떠올렸고,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데서나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형과 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차멀미를 하는 아줌마들,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음식을 남겨야 미덕인 여유, 길거리의 값싼 음식들, 고향으로 내려가는 신랑신부의 모습, 까치집을 짓고 있는 사내들의 뒷머리, 시골 버스의 냄새, 썩은 도심의 도랑, 뿌연 황사와 매연의 도심, 젊은 사내와 시골 아줌마의 다툼, 땀 흘리는 여성들의 카리스마, 젊은이들의 과장된 헤어스타일…. 이와 비슷한 것들을 내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우리 일행이 싼장(三江)이라는 조용한 마을에 갔을 때의 일화이다. 그곳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리는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중국인 여성,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일본인 학생,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경영을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인 학생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종교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소개했고 ‘대순진리회’라는 한국의 종교를 신앙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가를 맞아 여행 왔다는 중국인 여성은 자신은 기독교를 신앙한다고 하면서 중국에서는 기독교인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유학을 하면서 기독교의 신앙을 갖게 된 듯했다.

  우리는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에 대한 얘기도 조금 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 학생은 서강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경영을 공부하는 중이었는데 자신의 집안은 모두 가톨릭 신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가톨릭에 대한 신앙보다는 하늘의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만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우리에게 종교라는 영역이 매우 광범위한데 공부할 때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았는데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일본인 친구는 자신의 꿈이 중국에서 일본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국에 유학을 와서 국제무역을 공부하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본의 ‘신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나 일본인 친구는 종교보다는 우리나라 연예인에 관심이 있어 보였고 그룹 ‘카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뒤늦게 대화에 합류한 그곳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였는데 자신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중국의 다른 곳에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은 이런 게스트 하우스를 더 많이 경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틈틈이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는데 덕분에 음식값을 좀 싸게 해주었다. 그날 저녁에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여행하면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또한 만났던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앙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설레임을 갖게 해 주었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사람들과의 벽을 무너뜨리고 쉽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내가 잘못 이해했던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을 직접 만날 때의 느낌과 감정들은 훨씬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이런 것 때문에 배낭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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