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0년(2010) 4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42) 청계탑 『典經』속 역사인물 『典經』속 지명 인물소개 고사 한마디 금강산 이야기 『典經』용어 『典經』민속자료 도장 둘러보기 28수 별자리 수기 독자코너 독자사연 대학생코너 다시 보는 우리문화 상생의 길 알립니다

독자사연 : 네가 없으면 내가 못사는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네가 없으면 내가 못사는

 

 

원평36 방면 교감 김수남

 

  몇 호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회보 ‘영화 속으로’에 소개된 ‘워낭소리’를 읽고 한번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절에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려 하니 평소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무슨 영화냐며 주변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경상도의 시골마을에서 자란 제게 영화 속 장면은 아주 친근했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의 모습 역시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고집스럽고 말 없는 경상도 사나이, 마음의 정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본 적 없는 그 모습이 제겐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만큼 익숙했습니다.

  벼농사만으로는 자식들 학비 대기가 어려워 참외 농사까지 하시던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은 농사짓는 힘든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며 그 힘든 일들을 묵묵히 하셨던 것 같습니다. 허리가 아파도, 다리가 아파도 밭에 일하러 나가셨습니다. 몸이 아파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당신 안 하면 누가 대신하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시절 저는 밭에 가기 싫어 공부 핑계를 대고 학교에서 늦게 오기도 했습니다. 밭일을 하기 싫어 꼴 먹이러 소를 몰고 산으로 다니며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산등성이 주인 모를 무덤가에 앉아 놀거나 글을 쓰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억들이 있는 제게 다리가 아파서 밭을 기어 다니면서 일하고, 그렇게 일하다가도 꼴 베러 가는, 소에게 먹인다며 약에 쓰는 민들레를 뽑는 장면에 아버지가 오버랩 됩니다.

  “이 소하고 내하고 같이 죽을 꺼래.”

  “소가 머여 죽으면 우얄 참인겨? 장사 지내 주니껴?”

  “치러줘야지. 내가 상주질 할 낀데.”

  내 부모 초상에도 상주 노릇하기 힘들어 고개를 내젓는 세상에 소 한 마리가 뭐라고 장사 치러주고 상주질까지 한다는 주인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할아버지가 소에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매질을 해도 꼼짝도 안 합니다. 소는 여물통을 등지고 앉아 밥도 안 먹으려나 봅니다. 수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도 더 넘었을 소가 안쓰러운 할아버지는 더 살릴 방법이 없냐고 묻습니다. 수의사도 마음이 짠합니다. 할아버지는 소의 고삐와 코뚜레를 끊고 워낭도 떼어냈습니다. 세상과의 인연줄을, 그리고 남아 있는 미련줄을 끊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가거든 가면 좋은데, 같이 가면 될 텐데.”

  자기가 떠난 이 겨울 한 해만큼이라도 영감 할매 따뜻하게 불 때고 살라고 울타리 가득 나무를 해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달구지 끌고 나가던 그 밭 산자락에 묻혔습니다. 봄이면 민들레 피는 그 밭에.

  할아버지는 소가 있어야 밭에도 가고 읍내도 갑니다. 할아버지 논에는 물방개가 삽니다. 할아버지가 꼴 베는 곳은 청개구리가 뛰어다닙니다. 옆 논에 이앙기가 모를 심어도 할아버지 논은 늙은 소를 부려 써레질을 합니다. 콤바인이 벼를 베는 논 옆에서 일일이 낫으로 벼를 벱니다. 기계를 쓰면 나락이 많이 떨어진다고 낫으로 베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십니다. 여덟 살 때 침을 잘못 맞아 힘줄이 오그라들었다는 왼쪽다리가 유난히 가늘어 보입니다. 걷지도 못하고 논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낫질을 합니다. 고집이 쇠 힘줄입니다. 소의 다리를 빌려 30년을 살다 보니 성격도 소를 닮아 가나 봅니다.

  소는 할아버지가 꼴을 베어다 쇠죽을 끓여 줘야 먹고 삽니다. 다른 소들이 사료 먹을 때 늙은 소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 오랜 세월의 정을 먹고 삽니다. 다른 소들은 15년 살아도 오래 살았다는데 이 소는 40이 넘어 멍에 메운 등뼈의 살이 벗겨졌어도 할아버지의 “훠~훠” 소리에 힘겨운 걸음을 옮깁니다.

  할아버지는 소가 없으면 못 삽니다. 소도 할아버지 없이는 못 삽니다. 말은 못 하지만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압니다. 말 안 해도 압니다. 네가 없으면 내가 못 살고, 내가 없으면 네가 못 살 듯이 늙은 소와 그 늙은 주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답을 하며 삽니다.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은 오랜 세월 같이 해온 동반자처럼 같이 해야 하는 것일 겁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소를 향한 고집은 어려운 시절 같이 지내온 올드 파트너에 대한 우정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10년을 넘게 같이 수도해 온 선·후각과의 사이를 돌아봅니다. 정말 뜻을 같이 하며 고생도 즐겁게 함께 했던 것인지, 정말 네가 없으면 내가 못 살고 내가 없으면 너도 못 사는 수도였는지를. 더 늦기 전에 상제님의 덕화로 만난 선·후각 사이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