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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經』민속자료 : 디딜방아
디딜방아
글 교무부 “…강 태공(姜太公)이 부국강병의 술법을 천하에 내어놓아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룬 자가 있되 그 공덕을 앙모하나 보답하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강태공 조작(庚申年庚申月庚申日姜太公造作)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리에 합당하리요.…”(예시 22절)
디딜방아는 발로 밟아서 곡식을 찧거나 빻는 농기구이다. 곡식 이외에도 떡이나 고추를 빻는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데에 요긴하게 쓰였으므로 부엌과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지방에 따라 디딜방애, 딸각방아, 발방아, 돈방아, 드딤방아, 드딜방아, 손방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구려의 생활상이 잘 묘사된 안악 제3호분 벽화에서 디딜방앗간의 장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에 디딜방아가 쓰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중국 이름인 ‘대()’라 하였고, 우리말로 적은 최초의 책인 『원각경언해』에 ‘방아’라 기록되어 있다. 디딜방아에는 다리가 가위다리 꼴로 갈라진 ‘양다리방아’와 다리가 곧게 뻗은 ‘외다리방아’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대륙, 일본, 네팔, 인도 등에는 외다리방아뿐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양다리방아를 써왔다. 양다리방아는 독창성과 편리성을 가진 것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가 없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외다리방아를 나란히 설치하였지만 우리나라처럼 양다리방아를 만들어서 사용하지 못하였다. 형태는 나무의 끝에 공이를 끼우고, 공이 반대편에는 두 갈래로 된 나무를 양쪽으로 세워서(볼씨), 그사이에 굵은 나무(쌀개)를 가로로 대어 방아의 받침을 설치한다. 확은 돌로 만들어 속이 파여져 있는데 작은 절구통을 땅에 묻어 대신하기도 한다. 이외에 곡식을 꺼내거나 공이 부분을 괴어 놓을 때 사용하는 괴밑대가 있다. 양다리방아로 곡식을 찧을 때는 볼씨(받침점)와 다리(힘점) 사이가 가까워서 다리에 힘을 가할 때는 좀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리(힘점)의 운동에너지가 방아공이(작용점)에서 극대화되기 때문에 몇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보통 1명이 방아에 올라서서 힘을 주면 다른 1명은 계속 확에 곡식을 집어넣는다. 4명까지도 올라갈 수 있고 넘어지지 않도록 위에서 늘어뜨린 방아줄을 붙잡고 방아를 찧는다. 디딜방아는 협동이 잘 되어야 효율성도 높고 힘이 적게 든다. 일할 때는 방아타령을 불러 신명을 돋우기도 하였다.
이 방아가 웬 방아냐 보은 속리 문장대에 에 헤 방아 헤(받는 소리) 세조 대왕 놀아 있고 강태공의 조작이로다 우리들은 놀 디 없이 기산 영수 별건곤 이 방아로 놀아 보세 소부 허유 놀아 있고
- 전라북도 익산 지방의 방아타령
참고문헌 ㆍ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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