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0년(2010) 8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46) 인물소개 대원종 고사 한마디 금강산 이야기 『典經』용어 28수 별자리 온고지신 그림 이야기 답사기 수기 독자코너 대순학생회 대학생코너 다시보는 우리문화 과학 그곳에서 대순논단 알립니다

독자코너 : 龍과 Dragon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龍과 Dragon
 
 

동해4 방면 선무 한수진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유일하게 상상 속의 동물인 용(龍)은 오랜 세월 인간의 문화 속에 존재해 왔다.‘ 실체가 없다’는 독특성을 지녔음에도 관련 역사가 매우 깊고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양이냐 서양이냐에 따라 형태적인 특징이나 상징성은 다르지만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은 같다.
  용은 말 그대로‘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각자가 상상하는 모습이 달랐다. 동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의인화되기도 했기 때문에 외면상의 통일은 지금도 불가능하다. 다만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들은 찾아볼 수가 있는데, 동양의 용이나 서양의 용이 지니고 있는 외면적 구조는 그 상징성만큼이나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용의 성격에 대한 정의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반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는 대체적으로 용이 흉폭하고,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독교 신화에서는 지하세계와 사탄 세력의 구현으로 간주하여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소원을 들어주거나 악귀를 물리쳐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구름을 불러 비를 뿌려주거나 바람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즉, 서양에서는 용을 부정적인 존재로 본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상서롭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한편 고난에 처한 인간을 도와주기도 하는 긍정적인 존재로 보아왔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용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시도는 수없이 행해져왔다.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을 가진 이론이 생활형태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동양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물이 중요하였다. 따라서 비를 조정한다고 믿어졌던 용은 두렵다기보다는 친근한 존재로 인식되어 인간과 공존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흔히 알고 있다시피 서양은 농경보다는 투쟁을 통해 개척하는 체제를 가졌던 사회였다. 물론 동양에서도 국토분쟁이 있었고 서양에서도 농경이 생존의 기본사항이기는 했지만, 용의 성격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용이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흉폭한 괴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게르만의 영웅 베어울프, 기독교의 전도사 성조지, 원탁의 기사 랜슬롯 등등 인류 최초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자들은 모두 용을 퇴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동양과 서양에서 가지고 있는 용에 대한 개념이 각자의 자연관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동양은 자연을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서양은 인간과 분리된 물질로 여겼다. 물론 동양이든 서양이든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 모든 자연 형성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든가 자연물 그 자체가 신이라는 개념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이른바 대항해시대와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서양의 이러한 기조가 동양에도 흘러들었고, 한동안 인간들은 이익창출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자행했다. 그 결과 자연 파괴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게 되어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양의 자연관이 서양에 흘러들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바탕이념이 되었다.
  비록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양상을 띠게 되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개념은 다르다. 이렇게 동양과 서양에서 규정짓는 용의 성격에 대한 정의나 자연관이 완전히 반대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유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용을 나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였고, 서양에서는 나와 틀린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다른 것과 틀린 것은 그 기본바탕에 깔린 생각이 전혀 다른 개념이다. ‘다르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함께 지낼 방법을 모색해 볼 대상으로 여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틀리
다’는 것은 상대방을 부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나에게 맞춰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겠다는 뜻이다.
  나와 다른 것은 배척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틀렸다고 단정 짓게 되면 끊임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활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가 생성되었고 거기에서 비롯된 다양한 관점들이‘용’이라는 개체를 인식하는 데도 적용되었다. 인류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용과 관련된 설화도 다양한 형태로 번져갔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용에 대한 인식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동양에서는 여전히 특정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나 사찰 등의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등 인간에게 이롭
고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달리 서양에서는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전통적인 외형과 성격을 지닌 용이 인간과 대립하여 싸우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한번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텐데도 오랜 세월 동안 굳어진 인식은 쉽게 바뀌지않는 듯하다.
  물론 대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용’이라는 존재를 통해서만 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타자(他者)와의 관계 맺기’를 봐도 알 수 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이 상대방을 자신과는 다르지만 함께 살아갈 대상으로 보았다면 인류역사에서 전쟁이라는 참극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해원상생 역시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단순한 이론으로 끝날지 아니면 만수도인이 원하는 대로 현실화될지 결정될 만큼‘다름’과‘틀림’의 명확한 구분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 봤을 때‘용’은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에 따라서 그 접근방식과 결과가 극명하게 차이 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예(例)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다음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