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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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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잘남과 못남의 역설, 그리고 소통

잘남과 못남의 역설, 그리고 소통
 
 
 

청송 2방면 교정 이승재

 
 
어느새 입도한 지 15년이 훌쩍 지났다. 옛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나의 수도 생활 역시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말은 그 동안의 수도 생활에 있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와 변수가 있어왔다는 뜻이다. 특히 몇 년 전 나와 수반들이 처하게 된 새로운 변화는 여간 힘들고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왜 이런 상황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곱씹어보게 할 뿐더러 다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수도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위의 문제들에 대해 많은 대화와 토론의 기회를 가졌고,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도우들과 함께 나눈 대화와 토론 내용 중 “대순진리회의 모든 수도인들이 수도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인 ‘오만과 탐욕’이다”라는 주제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입도 후 힘든 수도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직위가 상승하게 되면 그에 따라 수반들도 점점 늘어나기 마련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이때부터는 더욱더 겸손과 성찰의 미덕이 중요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겸손함보다는 권위주의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권위주의에 빠져드는 것은 곧 오만의 길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듯하다. 대개 권위주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상대와의 원활한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지위가 높아질수록 권위를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와 습성은 더욱 더 커질 수 있다. 사고방법과 행실이 여기에 치닫게 되면 급기야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믿음 속에 갇히게 되고 이 경우에는 첫째,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하며 둘째, 단순한 권위의식을 넘어 오만의 늪으로 빠져듦과 동시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위의 즐거움과 혜택에 젖어 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권위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권위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만과 사욕(私慾)의 관점에서 진리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대순지침』을 살펴보면 도전님께서도 “삿된 방법을 감행하는 것은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기(正氣)는 물러가고 사기(邪氣)가 선동하여 허령(虛靈)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의 이면에 존재하는 오만과 탐욕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서적 한 권이 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인 『문명의 붕괴』에서 그는 사회 실패의 원인에 관해 진단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모든 몰락에는 오만이 선행한다.”는 속담의 관점에서 강대한 문명의 몰락은 자기 힘에 대한 과신과 그 과신이 빚어낸 오만이 자신의 잘못을 못 보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만과 탐욕이 위기를 초래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위기를 자초한 당사자의 내면에서도 ‘당신은 현재 오만과 탐욕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으니 이를 빨리 깨닫고 대처하라.’는 양심의 소리가 잔잔히 들려오기도 한다. 즉, 자신으로 인해 어떤 위기가 초래되고 있음을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감지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주변인들도 위기를 감지하여 그 심각성을 자각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만과 탐욕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진심어린 간언(諫言)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위기는 점점 심각해져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오만과 탐욕에 빠진 당사자는 주변의 진심어린 충고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오만과 탐욕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적으로 듣기 싫어하고 거부하는 말의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되는 경우,
 둘째, 자신이 과신하고 있었던 능력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경우,     
 셋째, 평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경우,     
 넷째,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기득권)을 일정 부분 버릴 수밖에 없는 경우,     
 다섯째, 결정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당사자가 자신이 속한 단체나 사회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되는 오만’과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을 결코 버릴 수 없다는 탐욕’에서 비롯되는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소통의 부재가 위기와 실패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권위의식에서 오만과 탐욕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통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오만과 겸손, 그리고 불통과 소통이 어떤 결과로 드러나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제왕은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왕자는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패자(覇者)는 훌륭한 신하를 거느리는 법입니다. 예의를 다하여 상대방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하여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다면 자기보다 백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듭니다. 그러나 의자에 기대어 곁눈질이나 하면서 지시하고, 화를 내고, 혼낸다면 소인배와 노복들만 모일 뿐입니다.”
(『사기』, 「燕세가」중, 소왕과 곽외의 대화)
 
 
왕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 죽이니 나라 안팎에서 여왕을 비난하는 사람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여왕이 기뻐하며, “보라. 이제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세상은 태평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소공이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다만 입을 열지 않고 있음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물을 막고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물이란 막았다가 터지면 반드시 큰 재앙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입을 막는 것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꼬를 터놓아 통하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들의 입을 열어 놓아 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기』, 「周본기」중, 여왕과 소공의 대화)

                                 
  위 일화에서 우리는 불통과 소통의 결과를 극명하게 비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물을 강제로 막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렇게 막힌 물은 계속 불어나 제방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자신과 주변에 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오만과 탐욕에서 비롯되는 개인과 집단의 실패를 막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타인과의 소통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오만과 탐욕에 빠져있는 사람은 소통에 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도전님께서도 “사람이 하는 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이니 임원이라도 외수 내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도 한쪽에서는 수반의 입장에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선각의 입장에 있다. 15년 이상 수도해 오는 동안 수반의 위치에서는 선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 있었고, 선각의 위치에서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다. 이 관계가 바람직한 방향을 잃지 않고 바르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선후각이라는 지위를 떠나 수도인이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터놓고 서로가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막히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면 상호 겸손과 인정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관계형성을 통해 진리토론 및 교화 등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소통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선후각 관계를 유지하면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상생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사상에 관해 토론하는 진리토론회의 경우에 이러한 방법을 적용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순진리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소통에 임하는 겸손한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반성하면서도 주변을 돌아보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 게다가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추켜세우는 오만한 사람보다 특정 능력은 부족할지라도 수도인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에 부합되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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