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3년(2013) 4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79) 청계탑 대순칼럼 전경지명답사 고사 한마디 금강산 이야기 일각문 참관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 동양고전 읽기의 즐거움 인문고전 산책 생각이 있는 풍경 종교산책(한국종교편) 지남거 대순문예(가작) 퀴즈 및 퀴즈 정답자 알립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 자세, 폼(form), 그리고 수행자

자세, 폼(form), 그리고 수행자

 

산동9방면 교감 유근준

 

  군대에 갔을 때였다. 강원도 인제에서 6주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을 당시에, 나는 처음부터 총 쏘고 달리고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장면을 떠올리고 입대했다. 첫 교육이 시작되었을 때 잔뜩 긴장한 우리 훈련병들을 상대로 교관이 처음 가르친 것은 바로 제식 훈련이었다. 옆에서 조교가 구령을 부르고 한 사람 한 사람 자세를 교정해 주면서 큰소리로 하는 말이 ‘앞으로 갓!’, ‘뒤로 돌아 갓!’, ‘좌향 앞으로 갓!’ 하는 말들이었다. 사실 살짝 실망했고 싱겁기도 했었다. 이런 훈련은 이미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배웠던 터라 별 감흥이 없었고 명색이 군인인데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런 우리에게 조교가 했던 말이 바로 자세 즉, 폼(form) 이었다. “폼생폼사 군인은 자세에 죽고 산다. 자세가 되어야 모든 실전 훈련이 가능하다. 눈은 전방 15°, 가슴은 펴고, 목은 당기고, 입은 다물고, 걸음은 11자로…, 바른 자세가 되어야 정신력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바른 자세를 무척 강조했었고 팔자걸음에 익숙했던 동기생 몇 명은 훈련 때마다 얼차려를 받았다. 그렇게 거의 1주일을 보내고서야 총에 대한 실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좋은 옷에 멋진 차에 남과는 좀 다른 헤어스타일을 떠올리는 그런 말이 아니었다. 군인 정신은 바른 자세에서 나온다는 정신 무장을 투철히 하기 위한 자세였던 것이다.
  유격대에서 유격 조교 교육을 받을 때였다. 우리가 조교 교육을 받고 다시 부대원들을 교육하는 방식이었다. 그때 교관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까지의 생각은 잊어라. 정신은 여기서 새롭게 만든다. 몸을 바르게 함으로써 그 정신이 새로워질 것이다. 몸으로 배운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그날 교관의 그 눈매는 정말 기억에 오래갔다.
  PT 체조, 밧줄 타기, 장애물 넘기, 활차 타기 등 여러 가지 훈련이 시작되었다. 구르고 뛰고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교관의 지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자세였다. 일단 자세가 좋아야 다치지 않고 유사시에 신속한 작전이 가능하며 또한 훈련의 성과는 올바른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이 교관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다. 우리를 교육하는 조교들은 어떻게 몸을 L자로 만들어 장애물을 넘는지 체조선수도 아니고 때론 아름답기까지 했다. 필자는 자세가 나왔던지 PT 조교로서 따로 교육을 받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들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만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바른 자세에서 바른 정신이 나온다.” 그 자세를 만들기 위해 힘든 기색이라도 보이면 교육기간 내내 교관이 했던 말이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즐기기는 어려웠다. 
  분대장 교육을 갔을 때였다. 일반 병사를 하사로 진급시키고 분대장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교육 첫 시간의 교관이 상사였다. 그 당시 40대 중반의 나이였으니 거의 아버지뻘이었다. 교육내용은 군인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군인 정신이란 무엇인가?” 뻔한 질문이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눈만 껌벅 꺼리고 있었다. “군인 정신이란… 제정신이 아니다.” 잠시 있다가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생각해 보면 가장 핵심을 찌른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총알이 날아 오는 적진을 향해 지휘관의 진격 명령이 떨어지면 누가 앞으로 나가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앞선 사람이 총알받이라도 되어야 뒷사람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제정신이 들겠는가? 그 일을 제정신 가지고 하겠는가? 유사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군인의 숙명을 군인의 자세를 역설적인 이 한마디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분대장 교육을 마쳤을 때 선임 분대장의 첫 마디가 군복과 군화였다. 군화는 항상 광을 낼 것이며 군복은 반드시 다림질해서 입어라. 사실 군대에서 광을 내봐야 군화고 다림질해봐야 군복일 뿐이었지만 그런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를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전방 경계근무를 할 당시에는 아침 식사를 빵으로 대신했다. 말은 햄버거지만 사실 조금 부실했다. 정량은 2개였는데 후임병들이야 얼마나 배고픈 시절이겠는가? 그때 선임병들은 주로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후임병들 차지였다. 배고픈 그 마음을 헤아렸는지 아니면 많이 먹이고 일을 많이 시키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선임들은 배고프다고 먼저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후임병 앞에서 건빵 먹는다고 면박 주던 선임병도 있었다. 군대에서 나오는 병사들의 정량이긴 하지만 최소한 그런 모습에서 선임병이 지녀야 할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그 작은 노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서 가장 듣기 싫은 첫 번째 말이 군대 이야기, 두 번째가 축구 이야기, 세 번째가 군대에서 한 축구 이야기라는 우스갯말이 있었다. 젊은 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의 수행 모습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것 같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인간이 안 된 자에게는 전해질 수 없다). 그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않고 진짜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 오만함이 있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만함이겠는가? 병자를 진정으로 긍휼히 여기는 심의(心醫)가 되어야 하며 의술로써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원이 지녀야 할 자세 아니겠는가? 그러한 사람이 아니면 의술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아들에게도 전하지 않은 것을 허준에게는 전했던 것이다. 
  몇 해 전에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이 부자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오직 세상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그 많은 존경을 받게 했던 것이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장좌불와의 수행을 실천한 성철 스님 역시 수행자의 바른 자세를 보여준 분이었다. 우리도 다른 종교처럼 부처님 오신 날의 행사를 여의도 광장같이 큰 곳에서 하고 스님도 종정이신데 매스컴에도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제자의 말에 나 같은 산승(山僧)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한 마디로 제자를 물리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낮추고 또 낮추고 숙이고 또 숙이어 바닥 없는 밑에까지 내려갔더니 어느 날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도력 높은 고승이 했던 말이다. ‘함께’라는 것은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지금 꼭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소통이 필요한 때라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진정 소통되게 만드는 힐링(healing: 치유)을 말하기도 한다. 수행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는 말들이다.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한복 자락 여미며 고개 숙이고 양손을 모으고 오늘도 도장에 오르는 수도인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경건한 마음일까? 그 내딛는 걸음조차 겸손하다. 정성스런 수도인들의 공경한 모습들. 때론 넉넉한 엄마 같고 든든한 형님 같고 어떤 응석도 다 받아 줄 것 같은 할아버지 같고 개구쟁이 동생 같은 한 사람 한 사람들…. 아름답지 않은가?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