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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1년(2011)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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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고전(古典)은 나의 힘 어느새 나의 중심이 된 『전경(典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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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문예 입상작 ③

 

고전(古典)은 나의 힘

 

어느새 나의 중심이 된 『전경(典經)』

 

 

 

자양57 방면 평도인 장건

 

 

 

도주께서 갑오년 가을에 박 한경에게 사략 상하권(史略上下卷)과 사서삼경(四書三經)의 구판을 구하게 하시므로 이때에 통감(通鑑) ⋅ 소학(小學) ⋅ 대학(大學) ⋅ 논어(論語) ⋅ 맹자(孟子) ⋅ 시전(詩傳) ⋅ 서전(書傳) ⋅ 중용(中庸) ⋅ 주역(周易)의 구판을 구하여 올렸더니 이 책들은 그 후에 도장에 비치되었도다. (교운 2장 53절)

 

 

나에게 있어 유교경전(儒敎經典)은

  세상을 살다보면 ‘나에게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혹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자신의 삶에 대해 또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 원망하며 괴로워하며 삶의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고전(古典)은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유교의 경전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해주며 친구 이상의 조언자 또는 그 이상의 스승이 되어준다. 사서삼경(四書三經) 혹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대변되는 유교의 경전은 성현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참다운 삶의 메시지다. 그래서 도주님께서는 유교경전을 도장에 비치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한 고전은 단순한 해석이나 의미 분석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우리의 삶 혹은 나의 삶과 연결하고 그 의미를 공감할 때 비로소 그 구절의 뜻을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겪는 우여곡절이 나 역시 있었고, 그러면서 내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려운 상황에 닥치거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고전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고 삶의 지혜를 고전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누구나 사춘기 때 하는 생각을 성인이 되고 나서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춘기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항상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잘난 것이 없던 초라한 나의 모습에 매번 놀라고 절망했다. 과연 나란 존재가 이 정도뿐이었던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당시 나의 멘토(mentor)와 같은 유교경전을 읽어도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도(道)에 입문, 『전경』을 접하다

  그러한 생각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나는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그랬을까? 나는 나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철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수업을 들어도,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어도, 선배님의 조언을 들어도 그 물음의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왜 여기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학과 선배의 권유로 도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대순진리회의 최고 경전인 『전경』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도를 접하기 전과 접한 후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남을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흔히 경쟁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사회에 있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과 경쟁하여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보다 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모든 일에서도 친구와 경쟁해서 이겨야 하며 무엇을 하든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할 때에도 남과 경쟁해서 반드시 이겨 사회적으로 출세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전경』을 읽다 보니 남을 보는 관점이 나와는 달랐다. 『전경』에서는 남을 내가 밟고 이겨야 하는 경쟁상대로 보기보다는 남을 잘 되게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01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쾅’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남을 잘 되게 하라니 나 하나 잘되기도 벅찬데…’ 하며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선각자의 교화를 듣고 대순사상에 관련된 자료를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셨도다.02

 

 

  이처럼 대순진리회의 교리에서는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곧 나를 잘 되게 하는 것인데 그 말은 교법 1장 11절 나왔듯이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른다.”라고 되어 있다. 『전경』에도 강조된 부분이고 훈회에도 역시 남을 잘 되게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요람(大巡眞理會要覽)』에 훈회와 관련되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五. 남을 잘 되게 하라.

 

남을 잘 되게 함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基本原理)요 구제창생(救濟蒼生)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라. 남을 위해서는 수고(手苦)를 아끼지 말고, 성사(成事)에는 타인(他人)과의 힘을 합(合)하여야 된다는 정신(精神)을 가져 협동생활(協同生活)에 일치(一致) 협력(協力)이 되게 하라.03

 

 

남을 잘 되게 하자

  나는 남을 잘 되게 하라는 부분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것이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동인(動因)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중심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내가 품고 있었던 물음에 조금은 답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을 잘 되게 하는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봉사활동을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사회복지학과 복수전공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좀 더 나의 중심을 잡기 위해 책과 고전, 그리고 『전경』에 점점 빠져 들었다.

 

 

속담에 “무척 잘 산다”이르나니 이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이라.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04

 

 

  남과 관련되어 눈에 띄는 구절이었다. 바로 교법 1장 11절이다. ‘무척 잘 산다’를 풀이한 것이 언어유희적 표현으로 재밌으면서도 나는 척을 짓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척’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남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훈회에도 “척을 짓지 말라”고 나와 있고 『전경』에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씀이 있다. 무척 가슴에 와 닿았다.

  이와 같이 『전경』에 나온 구절이라든지 교화를 들으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우리가 도와 관련지어서 해석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전경』에서 나의 길을 찾으라는 조상님의 덕(德) 때문인지 나에게 신명(神明)이 응하셨는지는 몰라도 나는 도를 만나고 군대를 전경(戰警: 전투경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의 뜻을 빨리 찾고 싶어 이런저런 이유로 군대에 있으면서도 『전경』을 시간이 날 때 마다 더 많이 읽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과 함께 말이다.

 

 

 

『대학(大學)』에서 찾은 나의 행복상생(幸福相生)

 『전경』에는 특히 『대학』을 강조하는 부분이 곳곳에 많이 나온다.

 

 

그 후에 상제께서 종도들의 지혜를 깊게 하는 일에 골몰하시더니 어느 날 종도들에게 “대학우경(大學右經) 일장을 많이 외우라. 거기에 대운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05

 

 

상제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서전(書傳)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 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하셨느니라. 상제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06

 

 

대학(大學)에 “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하니 지소선후면 즉근도의(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라 하였고 또 “기 소후자에 박이오 기 소박자에 후하리 미지유야(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라 하였으니 이것을 거울로 삼고 일하라.07

 

 

상제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이르셨도다.08

 

 

  이처럼 『전경』에서 『대학』을 강조하는 부분이 많아서 군대를 전역하고 예전에 읽었던 『대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대학』을 단순히 읽는다기보다 『전경』을 바탕으로 좀 더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어 보기로 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교법 2장 51절에 나온 그 구절과 같았다.

 

 

물(物)에는 근본(本)과 말단(末)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깝다.09

 

 

 

 

 『전경』에서 나온 구절이라서 그랬을까? 이 한 구절을 읽고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기운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에서 형광등이 반짝하고 켜지는 느낌을 경험했다. 매우 유명한 문장이고 분명히 전에도 읽었던 문장인데 예전에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너무나 고민스러웠던 당시의 막연한 앞날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었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근본과 말단을 찾는 일에 몰두하기로 했고 그것으로 인해 내 불안한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평소 쉽게 지나쳤을 법한 고전의 한 구절이 당시의 심각했던 삶의 고민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과연 그렇구나!’를 외치며 나는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즉 근본을 찾기로 한 것이다. 나의 근본은 도이고 그 다음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찾았다. 고민하던 결과 내가 생각한 근본의 가치는 ‘행복’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 행복에 앞서는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아도 불행하면 그 돈은 소용없다. 명예가 있어도 불행하면 그 명예는 소용없다. 권력이 많아도 불행하면 그 권력은 소용없다. 학벌이 높아도 불행하면 그 학벌은 소용이 없다. 외모가 뛰어나도 불행하면 그 외모는 다 소용없다. 돈, 명예, 권력, 학벌, 외모는 행복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나의 근본은 행복이다. 도통(道通) 역시 행복한 것이라 생각한다.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되어 상제님께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삶을 살아가고 도를 닦는다. 누구나 불행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 혼자 행복한 것이 진짜로 행복한 것인가? 혼자만 행복하다면 그 행복은 의미가 없다. 우리의 도는 남을 잘 되게 하고 서로의 원한(怨恨)을 풀며 서로 같이 잘 살자는 것인데 혼자만 행복하게 살자니 그것은 아니다. 나는 가능하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 그렇다면 나도 즐겁고 너도 즐겁고 우리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전경』에도 나와 있고 『대순지침』에도 나와 있는 대순진리회의 종지(宗旨) 중에 하나인 해원상생(解?相生)이라 생각한다. 상극(相克)에 쌓여있는 원(?)을 풀고 서로 같이 사는 것이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할 수 있는 것,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런 해원상생을 실천하며 수도하는 내가 되고 싶다.

 

 

 

수도는 『중용(中庸)』처럼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온 길에서 벗어나 참다운 인생길을 찾느라 방황했다. 그러다가 도를 만나 남과 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최종목표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내가 가야할 길은 저절로 결정되었고 가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던 때의 번민은 저절로 없어졌다.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되면 모든 사물과 일에 대해 정확하게 잘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내가 하는 일은 능률적으로 진행되며 그 결과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일은 미리 준비되면 이루어지고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어그러진다. 말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착오가 생기지 않고 일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곤란치 않게 되며, 행동하는 것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탈이 없게 되고 방법이 미리 정해지면 궁하지 않게 된다.10

 

 

  목적지가 없이 표류하는 배는 항상 제자리이다. 나는 도통으로 내 인생의 목적지를 정하고 수도를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노를 저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성난 파도를 만나 배가 전복될 위기도 있겠지만 위기는 『전경』이라는 나침반을 가지고 미리 대처할 것이다. 후천(後天)을 미리 준비하게 된다면 『중용』에 나온 말처럼 착오가 생기지 않고 곤란치 않게 되며 탈이 없고 궁하지 않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도를 알았고 수도를 시작한지 몇 년 안 되었다. 그래서 내공이 아직 부족하고 대순사상(大巡思想)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나는 『중용』의 다음 구절을 벗 삼아 내가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히 분별하며 돈독하게 수행한다.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운다면 능해지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묻는다면 알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하면 얻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분별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별하면 밝히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하면 돈독해지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한 번해서 그것에 능하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백 번하고 남이 열 번해서 그것에 능하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천 번을 한다. 과연 이러한 도에 능하게 된다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현명해 질 것이며, 비록 유약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11

 

 

  이 문장은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하며 돈독하게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수도인(修道人)이라면 배워야 하지 않을까? 도와 관련되어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하며 돈독하게 ‘수도’를 한다면 상제님 곁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은 상제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고 돈독하게 행하라는 것은 실천적 수도방법으로 볼 수 있다. 이 인식과 수도과정은 애초에 자포자기를 하면 모르지만 일단 하기로 작정하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몰라도 배우기로 작정하면 다 배울 때까지 계속하고, 묻지 않으면 몰라도 일단 묻기로 하면 다 알 때까지 끝까지 묻는다. 또 생각하지 않으면 몰라도 생각하기로 작정하면 다 알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생각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몰라도 일단 분별하기로 작정하면 완전히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한다. 그리고 수도에 있어서도 일단 수도를 하기로 하면 끝까지 독실하게 돈독하게 수도한다. 남이 하나를 하면 나는 백을 하며 남이 열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는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 즉 끝까지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수도하기를 남보다 백배 노력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나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지고 결국엔 도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중심은 『전경』

  이처럼 한 마디의 고전 한 구절이 인생의 행로에 깊은 영향을 주듯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 때문에 어려워하고 힘들어할 때 힘과 용기를 주는 구절이 있다. 고전(古典)은 2,000년이 넘게 사람들에게 읽혀온 이야기로써 그만큼 깊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 그리고 거기에 따라 시대의 흐름을 더 잘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경』은 상제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말씀과 그 종지를 종도들에게 밝히신 말씀의 기록이다. 나는 이러한 상제님의 뜻이 담긴 『전경』을 읽고 도라는 나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고전은 나에게 더 큰 힘이 되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다.”12라 하여 자신의 도는 인(仁)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것이라 언명하였던 것처럼 나는 도를 중심으로 일이관지 할 것이다. 어느새 내 중심이 되어 버린 『전경』 속에 있는 상제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고전과 『전경』을 읽는다.

 

 

 


01 교법 1장 2절.

02 교법 1장 11절.

03 『대순진리회요람』, p.20.

04 교법 2장 44절.

05 교운 1장 55절.

06 교법 2장 26절.

07 교법 2장 51절.

08 권지 1장 15절.

09 『대학』,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10 『중용』,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 道前定則不窮.”

11 『중용』,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己百之, 人十能之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12 『논어』 「이인」, “吾道一以貫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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