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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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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經』민속자료 : 띠자리

띠자리

 

글 교무부

 

… 상제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산 제사를 받았으니 이후에 까지 미치리라.” 하시고 “자리로서는 띠자리가 깨끗하니라.”고 일러주셨도다. (교운 1장 37절)

 

 

  띠자리는 띠풀을 재료로 해서 친 돗자리로 띠적이라고도 한다. 주로 제사나 고사 때 까는 돗자리인 배석자리로 사용되었다. 이 띠자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自坐 上 略定君臣位)”라는 기록을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띠자리의 재료는 ‘띠’라는 이름의 식물로 큰 언덕의 묵정밭(휴경지)이나 산기슭에서 주로 자란다. 우리 조상들은 띠를 음력 6~7월경에 베어다가 햇볕에 이틀 정도 말려 세 군데 정도를 꼭꼭 묶어서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놓은 뒤 농한기에 띠자리를 엮었다.

 

  띠자리는 보통 띠와 띠를 마주 엮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엮을 때에는 중간부분에 띠와 짚을 위아래에 대는데 짚을 밑에 대 주어야 띠자리가 질기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한 번 접어 속으로 엮어 준 후 칼로 끊어 처리하였다. 이것을 “휘갑(구갑)친다”고 한다. 띠가 많이 부족할 경우에는 띠와 짚의 배율을 1 : 1로 섞어 사용했으며, 크기는 보통 폭 2자(60cm)×길이 4자~6자(120~180cm)로 만들었다.

  한편 가을이 되면 말린 띠의 가장자리가 넓고 길죽하게 되는데, 길쭉한 것은 띠자리용으로 쓰이고, 넓적한 것은 산방(産房: 아이를 낳는 방)에 넣어 주었다. 이유는 띠가 깨끗하여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에게 가래가 생기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계속 뻗어 나가기 때문에 자손들도 띠처럼 번성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ㆍ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ㆍ한국민속사전 편찬 위원회,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1993

ㆍ國立文化財硏究所, 『짚·풀 工藝』, 國立文化財硏究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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