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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화고
종교 간의 화합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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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6월 서울에서 2006 세계종교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우리 종단과 더불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각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종교 간의 벽을 넘어 세계평화 와 종교화합의 실현을 약속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마 치 먼 곳의 친지들이 어렵게 모여 묻어두었던 마음을 나누 듯, 행사장에서 느껴지는 정감은 진정한 화합의 예감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각기 다른 신앙체계를 가진 종교인들이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세계사에 깊이 뿌리내린 종교 간의 불협화음이 우리의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질리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카슈미르 분쟁의 영향으로 테러의 위협이 그치지 않는 인도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쟁의 폭풍에 불안감을 잊기 힘들다.

  하지만, 조금씩 종교 간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선한 기대감을 유발시킨다. 이 같은 현상은 종교 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이론을 통해 이해해 볼만하다. 종교 다원주의는, 종교가 각 나라 문화의 근간이 되어 여러 종류로 흩어져 있지만 그 근본은 하나이므로 여러 종교가 동등한 자격으로 이 세계에 함께 공존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철학적 원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데, 쉽게 말해 하나의 근본이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알라, 유대교의 야훼, 기독교의 하나님 그리고 가톨릭의 천주는 하나의 절대자에 대한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전경』 예시 79절에, “동학 신자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종교 다원주의는 각 종교의 합일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신앙이란 완전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타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자기 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격이 된다. 또한 모든 종교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왜 굳이 자신이 특정 종교에 귀의해야만 하는가라는 회의감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이 종교 다원주의를 쉽게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결국 종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는 대안에 이르게 한다. 모든 종교에는 공통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대신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에서 자기 종교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 고유한 독창성이야 말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될 것이며 그 종교를 믿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올해, 방송매체를 통해 ‘부처님 오신 날’ 기념행사가 열린 한 사찰에 유명한 교회 목사가 강연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화합을 위해 어렵게 손을 내밀고 반갑게 그 손을 잡아준 두 종단의 이야기가 왠지 흐뭇하게만 느껴졌다. 이때쯤이면 우리의 모습도 되짚어 보아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포덕하면서 마주치는 다른 종단의 신도들을 다퉈 이겨야할 경쟁상대로 보진 않았는지, 혹은 우월감을 앞세워 상대를 무시하진 않았는지 진솔한 마음으로 돌이켜보자. 만약 배타적인 태도와 우월감으로써 타종교를 경계하고 비하했다면 상생의 마음으로 달라진 태도를 가져야 하겠다. 상생의 실천은 비단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와 종교 사이에도 이루어져야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천을 묵묵히 먼저 수행해나갈 때 종교 간의 어울림 속에서 우리 종단만의 고유한 가치는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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