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Home
고사한마디
교주고슬(膠柱鼓瑟)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교주고슬(膠柱鼓瑟)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연주함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조사(趙奢)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매우 영리하여 병서를 가르치자 곧 병법에 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사는 그의 아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사의 아내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결전(決戰)으로, 괄처럼 병법을 이론적으로만 논하는 것은 장수가 가질 태도가 아니오. 우리나라가 괄을 장수로 삼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를 장수로 삼았다가는 분명 그 애가 우리 군대를 망하게 할 것이오.”

  조사가 세상을 떠난 뒤, 어느 날 조나라는 진(秦)나라의 군대와 장평(長平: 지금의 산서성 고평현 서북쪽)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조나라는 염파(廉頗)를 장군에 임명하여 진나라를 상대하게 하고 있었는데, 진나라가 여러 차례 조나라의 군대를 공격하였지만 조나라 군대는 방벽을 굳게 할뿐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에 진나라는 조나라에 첩자를 보내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진나라는 조나라의 염파장군이 늙어서 싸움을 하기 싫어하므로 두렵지 않지만,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은 혈기가 왕성하니 그가  장군이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진나라가 몇 번이나 싸움을 걸어와도 염파가 끝내 응전하지 않으므로, 조나라 왕은 진나라 첩자가 퍼뜨린 소문을 믿고 조괄을 염파 대신에 장군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때 충신 인상여(藺相如)가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왕께서는 조괄의 명성만으로 그를 쓰려고 하시는데, 그것은 거문고 기둥을 풀로 붙여둔 채 거문고를 타려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다만 그의 부친이 남긴 병법서만 읽었을 뿐이며 융통성 있는 임기응변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조괄은 염파를 대신하게 되자 그날로 병서에 적혀 있는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켜 전부터 내려오는 군영들을 뜯어고치며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기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결국 실전 경험이 없던 조괄은 이론만으로 작전을 감행하다가 진나라의 함정에 빠져 40만 대군을 모두 잃는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거문고를 연주하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음률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거문고의 기둥을 풀로 붙여 버리면 한 가지 소리 밖에는 나지 않는다. ‘교주고슬’은 『사기』「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는 말로 실전 경험 없이 배운 이론만을 맹신하고 변화와 응용을 할 줄 모르는 꽉 막힌 사람을 경계하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