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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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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소개(상제님 편) : 수류면(水流面), 용화동(龍化洞, 龍華洞), 환평리

상제님·도주님·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
 
수류면(水流面), 용화동(龍化洞, 龍華洞), 환평리
 
 
 

글  종단역사연구팀

 
▲ 환평리로 가는 길목에  조성된 벚꽃길
 
 
수류면(水流面)
 

◎ 해당 『전경』 구절
 
금구 수류면 평목점(金溝水流面坪木店)에서 정 괴산(丁槐山)이라는 자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로 겨우 호구하면서 매양 상제를 지성껏 공양하더니… (하략) (행록 3장 19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조선후기 이후로 크게 행정구역 개편은 다섯 번 있었다. 1789년(정조13) 김제 지방의 호구를 조사한 『호구총수』에 의하면 김제군(金堤郡)은 20개 면, 금구현(金溝縣)은 10개 면, 만경현(萬頃縣)은 8개 면, 리성현(利城縣: 전주)은 2개 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구현의 10개 면은 동도면(東道面), 서도면(西道面), 일북면(一北面), 이북면(二北面), 역양면(櫟陽面), 동면(東面), 수류면(水流面), 초호면(草虎面), 하서면(下西面), 남면(南面) 등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수류면은 금구현에 속한다.
  1895년에는 금구군으로 개편되면서 수류면 지역은 금성리, 용평리, 용정리, 장흥리, 율치리, 상화리, 금곡리, 구룡리, 시성리, 봉곡리, 봉의리, 봉암리, 계암리, 성암리, 용은리, 용흥리, 월곡리, 구암리, 구호리, 용성리, 무평리, 선동리, 원평리 등 23개 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9년 뒤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만경군과 금구군을 병합하여 김제군이 되었다. 이때 수류면은 남면의 송정리·하봉리 각 일부, 초처면의 유덕리 일부, 태인군 감산면 사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또한, 수류면 내의 금성리, 용평리, 용정리 일부가 병합되어 금산리로 개칭되어 금산리, 장흥리, 황율리, 금성리, 삼봉리, 성계리, 쌍룡리, 구월리, 용호리, 선동리, 월평리 등 11개 리로 수류면을 구분하였다.
 
▲ 정괴산이 운영하던 주막이 있던 동곡마을 전경(2014.4월)
 

  1935년이 되면서 수류면은 하리면(下離面) 용산리(龍山里)와 전주(全州) 우림면(雨林面) 청도리(淸道理)를 병합하여 현재와 같이 13개 리가 되었고 금산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여기에서 금산이라는 이름은 금산사(金山寺)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1995년에 와서는 도시와 농촌의 통합 정책에 의해 김제시로 편입되었다.
 
 
 
 
용화동(龍化洞, 龍華洞)
 

◎ 해당 『전경』 구절
 
상제께서 금산면 용화동(金山面龍華洞)의 주막에 들르셔서 술을 잡수시려고 하였으나 술이 없었기에 술을 빚었던 항아리에 물을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후에 마시고 또 종도들에게도 나눠 주시니 그 맛이 꼭 본래의 술 맛과 다름이 없었느니라. 이 일은 병오(丙午)년 정월에 있었도다.(행록 3장 29절)
 
▲ 용화동 주막이 있던 팥정이사거리(2014.4월)
 
 
◎ 지명 유래와 변천사: 용화동은 금산리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마치 커다란 용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300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약 150년 전에는 옥천 육 씨가 정착하였고, 뒤를 이어 진사 최 씨, 참봉 강릉 유 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이 번창하게 된 것은 구천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증산교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보면 용화동의 ‘화’ 자가 ‘될 화(化)’ 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1914년 행정개편 이후에는 ‘빛날 화(華)’ 자로 바뀌어 표기되었다. 용화동은 상제님 재세 시에 금구현(군) 수류면에 속하였지만, 여러 차례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지금은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속하게 되었다. 이 금산리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연마을인 용화, 계룡, 금산 등이 있다.
 
▲ 용화동 전경(2014.4월)
 
 
 
환평리
 
◎ 해당 『전경』 구절
(상략)…그 후에 그가 태인 방교(泰仁方橋)로 이사하게 되자 그 쇠솥을 수류면 환평리(環坪里) 정 동조(鄭東朝)에게 팔았더니 이로부터 괴산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정 동조는 도리어 살림이 일어나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솥을 복솥이라 불렀도다. (행록 3장 19절) 
 
▲ 전주부 금구군 수류면 환평리(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함평마을)(2014.4월)
 
 
◎ 지명 유래와 변천사: 환평리는 팥정[팥거리]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산의 모양이 고리처럼 둥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마을 이름을 ‘함평’으로 쓰고 있는데, 이 마을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이름은 ‘환평’ 이었으나 근래 와서 ‘함평’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상제님을 존경하며 따랐던 안필성이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후손들이 살고 있다.
 
▲ 옛 환평이 지금은 함평으로 사용(표지석 뒤쪽 밭에 주막이 있었다 한다.)(2014.4월)
 
 
[참고문헌]
『전경』
 디지털김제문화대전 홈페이지(http://gimje.grandculture.net/)
『김제문화』제5호, 학예사, 2000
『우리고장의 옛지명』, 김제문화원, 2000
『한국지명총람』 11-전북편 상, 한글학회, 2003
 송호열, 『한국지명변천』, 성지문화사, 2006
『한국지명요람』,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2
「호소신 공사와 복솥」, 《대순회보》109호, 2010, pp.15~16
「상제님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을 없애다」, 《대순회보》104호, 2010, pp.27사진.
 송호열, 『한국의 지명 변천』, 성지문화사, 2006, pp.115
 신상미, 「안필성과 동곡 앞 팥거리」, 《대순회보》144호, 2013 , pp.31
「모악산 청련암 중창불사 회향」, 《불교 타임즈》 2012. 12. 18
 김자권 ,『금구읍지』, 대흥정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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