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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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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 (97) 총석정 금란굴전설 - 사람들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불로초

(97) 총석정 금란굴전설


- 사람들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불로초

 

글 교무부

 

 

 

  총석정에서 해안을 따라 동남쪽으로 약 7km 내려가면 연대산(해발 86.5m)의 해안절벽에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천연 동굴이 있다. 일종의 해식동굴인 이 굴이 통천군 금란리 북쪽 해안의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있는 금란굴이다. 이 해안절벽의 암석들은 화산 분출로 형성된 현무암이고 총석정처럼 육각형 돌기둥을 이루고 있지만, 가늘면서 흰색에 정결한 것이 특징이다. 동굴의 높이는 5∼7m이고 폭은 3∼4m, 깊이는 15m 정도이나 안으로 들어가면서 높이는 높아지지만 폭은 좁아져서 낚싯배를 타고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동굴 속 물의 깊이는 입구에서 약 3m이고 안쪽 끝에는 50cm 안팎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7∼8쌍의 돌고드름이 물에서 한 뼘가량 뜬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주상절리01의 돌기둥들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 파괴되어 형성된 것이다. 앞의 기둥들은 길고 붉은색을 띄는 데 반해, 뒤의 기둥들은 짧고 푸른색을 내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다. 그래서 이곳에 살던 주민은 금란굴에서 붉은빛이 강하게 발하면 ‘굴이 핀다’ 하여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고려 말의 시인 안축(安軸, 1282~1348)은 동굴 끝의 석벽 무늬가 촘촘하고 누런빛을 내는 것이 마치 스님이 입는 가사(袈裟)의 금란(金幱: 상하의가 하나로 이어진 금색 옷)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 굴을 금란굴(金幱窟)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연대산도 한때는 금란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금란굴은 예로부터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항상 거처하는 곳이며, 사람이 지성으로 귀의하면 관음보살이 현신하고 파랑새가 날아온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 사람들이 신성한 장소로 존숭해 오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금란굴 바닥에는 흰 바둑알처럼 둥근 돌들이 깔려 있어 파도가 밀려오면 돌들이 마치 조개무늬나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린다. 그 사이에 성게, 놀래기, 곤들매기 등이 서식하고 있어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들어 시와 노래를 남기곤 하였다. 동굴 끝은 왼쪽으로 약간 휘어졌기 때문에 안쪽은 언제나 칠흑같이 어둡다.
  입구로 되돌아 나와 물밑을 살펴보면 배의 바닥처럼 둥그스름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그 옛날 ‘불로초(不老草)’를 뜯으러 왔던 외국선박이 징벌을 받았다는 ‘배바위’이다. 그 유명한 불로초는 지금도 입구 천장의 바위틈에서 하늘에 뿌리를 두고 아래로 드리운 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길이 30cm 정도인 불로초는 소금기에도 죽지 않고 추위와 더위도 잘 견디기 때문에 풀포기가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해 눈길을 끈다. 예로부터 몇 뿌리밖에 없었다고 전해오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대개 높은 곳에 있어서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만약 망령되게 캐려고 한다면 곧 우레가 진동하는 하늘의 위엄이 있고 화(禍)가 그 사람에게 미친다고 한다. 이곳 주민은 이 불로초를 ‘금란(金蘭: 금난초)’이라 일컬어왔으며, 금란이 있는 굴이란 뜻에서 금란굴(金蘭窟)로도 불러왔다.
  금란굴의 동쪽 바닷가에는 바위를 인공적으로 깎아낸 것같이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이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선녀목욕터’이다. 그 옆에 선녀가 화장하던 곳이 있으며, 빗을 놓았던 자리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선녀목욕터에서 그곳으로 가려면 톱날처럼 뾰족한 바윗돌을 지나야 하고 맨발로 걸으면 발이 아파서 ‘아야발바위’라고 일컫는다.
  한편, 옛 성터가 있는 연대산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전망도 일품이다. 바닷가에는 부드러운 흰모래들이 쭉 깔려 있고 안쪽에는 소나무 숲들이 길게 뻗어 있으며, 멀게는 알섬(물새들이 모여들어 알을 많이 낳는 섬)까지 바라보인다. 서남쪽으로는 작은 금강이라 불리는 백정봉의 하얀 봉우리들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금란굴 일대는 금강산의 이름난 곳 중에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명승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금란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양쪽 벽이 나직하게 합해져 있고, 내려다보면 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원래 수심이 깊고 물기에 젖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으슥하고 축축하며 바람이 일면 놀란 물결이 들끓어 접근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금란굴 앞의 배바위와 관련하여 이웃 나라의 임금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사람들을 보냈으나, 우레와 극심한 풍랑으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 총석정

 


  통천군 금란리의 북쪽 해안에 금란굴이 있었다. 이 굴의 입구 천정에는 잎사귀가 방울꽃 잎사귀처럼 생기고 대칭을 이룬 채 붙어 있는 식물 3~4포기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예나 지금이나 포기 수는 늘지도 줄지도 않고 시들거나 마르지도 않았다. 바위가 꽁꽁 얼어붙는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사나운 동해의 풍랑이 집어삼킬 듯 덮쳐도 결코 흔들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가뭄에도 시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신선들이 마신다는 감로수를 자양분으로 자라는 불로초라고 이름 지었다. 이 신비한 풀은 금강산의 명성과 함께 당(唐)나라를 비롯한 이웃 나라에도 전해졌는데, 보로국의 군신들도 그것을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믿고 있었다.
  당시 새롭게 제위에 오른 보로국의 왕에게는 커다란 근심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말갈족의 공격이 거세져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외동딸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었지만 어떤 약을 써도 차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딸의 병이 낫기만 하면 말갈족의 추장에게 후실로 보내어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공주의 건강은 국가의 안녕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하의 명약이라는 그 어떤 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고, 딸은 날이 갈수록 점점 야위어만 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매일 같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보로국의 왕에게 문득 해동국의 신산(神山)인 금강산에 불로초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다음 날 나라의 대신들을 대궐로 불러들여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말갈족들이 매일같이 쳐들어와 나라의 존망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였는데 공주의 병세는 날로 위독해져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 듣기로 해동국 금강산에 금란이란 굴이 있어, 그 안에 불로장생하는 약초가 있다 하니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대신들은 왕의 말을 듣고서 비로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지만, 그중 한 대신은 엎드리며 이렇게 아뢰었다.
  “제가 듣자오니 금란굴의 불로초는 하도 신비스러운 풀이어서 누가 뜯으려고 하면 곧 큰 풍랑이 몰려와 접근할 수 없다고 하니, 뜻을 이루기 어려울까 심히 염려되옵니다.”
  이 말에 왕의 안색이 몹시 흐려지고 실망과 분노로 살결이 푸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도 이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듣건대 바닷길로 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자가 없으며, 육로로 금란굴에 이르는 연대산의 12개 돌문을 넘어선 자가 없었다. 오죽하면 불로초가 내외에 알려진지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의연히 무사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위험을 어찌 사직의 안녕에 비길 수 있으랴. 왕의 생각을 알아챈 늙은 대신이 마른기침을 하며 서둘러 아뢰었다.
  “옛날 맹자는 백성을 바다에 비유하면서 임금은 그 위에 떠 있는 배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은 바다요, 상감마마의 옥체는 돛단배이며, 공주님의 옥체는 동남풍인 줄 아옵니다. 배가 실하고 동남풍이 불어와야 사나운 풍랑을 가르며 바다 기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즉, 상감마마와 공주님에게 무병장수를 가져다 줄 금란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캐와야 지당한 줄 아뢰오.”
  많은 대신들도 내심 난감했지만 이런 중대사를 목전에 두고 주저할 수는 없었으므로 입을 모아 “지당한 줄 아옵니다.” 하고 되뇌었다.
  그러자 흐려졌던 임금의 얼굴에 이내 화색이 돌았다. 그는 이 일을 재상이 책임지고 조치하도록 명하고 서복(徐福)02과 같은 낭패가 없도록 엄하게 타일렀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는 불로초를 캐오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십 명의 인원과 수많은 식량, 그리고 온갖 기자재를 실은 한 척의 커다란 배가 강의 부둣가에서 닻을 올렸다. 배는 곧바로 동해를 향해 출발하였고 열흘 만에 총석정에서 눈부신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었다. 모든 선원은 갑판 위에서 이 눈부신 경관에 도취되어 “과연 금강산이로구나!” 하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어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이번 일의 책임자는 닻을 내리고 전투 준비를 서두르는 한편, 장인들에게는 채취용 도구를 정비하도록 재촉하였다. 바다는 잠자는 듯 고요하여 실오라기만 한 파도조차 없었다. 책임자는 서둘러 작은 배를 내리고 채집꾼들과 함께 금란굴 입구로 다가갔다. 위를 자세히 쳐다보니 정말 이상한 풀 서너 포기나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이제 가까이 다가가 캐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작은 배에 사다리가 놓이자, 이내 날고 기는 채집꾼들이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난데없이 번개가 번쩍이더니 “우르르, 꽝!” 하는 천둥소리가 금란굴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불로초를 캐려고 사다리를 오르던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한꺼번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책임자는 다른 채집꾼들을 사다리로 올려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지가 시커멓게 흐려지더니 곧바로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고, 잠자던 바다는 사나운 태풍과 함께 집채만 한 파도를 몰고 왔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성난 파도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쪽배와 사람들을 삼켜버렸다. 두 번째 파도는 동굴 앞에서 멀찍이 있던 큰 범선을 칼날처럼 모가 난 금란굴의 바위에 처박았다. 배는 물론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윽고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조용해졌고 하늘도 밝게 빛났다.
  이처럼 수천 년간 고이 간직되어 온 불로초는 어느 누구의 손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금강산을 지키는 초병처럼 꿋꿋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 금란굴 입구의 바닷물에 엎어져 있는 배바위가 바로 그때 불로초를 캐기 위해 들어왔던 이웃 나라의 배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01 마그마가 냉각 응고함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여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

02 중국 진나라의 방사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3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거느리고 불로초를 찾으러 바다 끝의 신산(神山)으로 배를 타고 떠났으나 중국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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