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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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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풍경 : 까마귀 아닌 까마귀

까마귀 아닌 까마귀



교무부 김현진




  『이솝우화』에 물병에 담긴 물을 먹기 위해 돌을 넣어 차오르는 물을 마시는 똑똑한 까마귀가 나온다. 실제 까마귀는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 훈련받는다면 6~7세의 지능을 자랑한다. 다른 까마귀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할 수도 있어 도구를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개량할 수 있다고 한다. 까마귀의 이런 특성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 풍자한 우화가 있다.


  까마귀들이 모여 살았다. 배가 고프면 먹이를 잡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깍깍대며 놀거나 간혹 멋을 부리는 녀석들은 깃털에 윤을 내기도 했다. 어느 날 까마귀들 앞에 새빨간 머리 깃털을 가진 까막딱따구리가 나타났다. 까막딱따구리의 빨간 깃털 몇 개가 훌륭한 새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평소 깃털에 윤을 내던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통에 붉은 나뭇잎 하나를 꽂고 나타났다. 발 빠른 까마귀 몇이 부지런히 붉은 나뭇잎을 주워 모아 따라 했고 다른 까마귀들도 빨간 잎을 꽂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주책을 부린다고 욕을 했던 까마귀들까지 까막딱따구리와 비슷해졌고, 빨간 잎을 꽂지 않으면 까마귀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까막딱따구리 다음으로 꾀꼬리가 나타나자 최초로 꾀꼬리처럼 꾸민 까마귀들은 며칠간의 달콤한 우월감을 즐겼고 까마귀들이 대부분 비슷해졌다. 그리고 아직 꾀꼬리처럼 꾸미지 않은 까마귀들을 게으르다고 비난하거나 그들의 모습이 불쾌감을 준다며 윽박지르고 괴롭혔다. 곧 모든 까마귀가 비슷해졌다.
  그다음 닭이 나타났다. 이미 꾀꼬리 비슷해지기에도 지친 까마귀들은 내심 닭을 흉내 내는 까마귀가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극성스럽게 부지런한 몇 놈이 몇 날 동안 가지각색의 이파리와 꽃잎을 긁어모아 닭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까마귀들은 바빠졌다. 닭처럼 꾸미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고 뒤늦게 꾸미려고 한 까마귀들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도 줄여야 했고 무거워진 몸 때문에 쉴 때조차 힘이 들었다. 머지않아 모든 까마귀가 닭과 비슷해졌다. 까마귀들은 늘 지쳐 있고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누구 하나 전보다 행복하지 않은 그저 그렇게 닭 비슷한 까마귀들이 필사적으로 살고 있었다. 닭 비슷해지기 대열에 동참하지 않을 때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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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까마귀의 모습을 보여준다. 까막딱따구리를 따라 할 때는 머리에 빨간 나뭇잎 하나였지만 꾀꼬리에서 닭으로 갈수록 할 일이 많아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지쳐갔다. 주책을 부린다고 욕을 하던 까마귀들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뻐 보이는 다른 새를 흉내 내는 분위기에 휩쓸려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본모습을 잊어버린 채 까마귀 아닌 까마귀가 되어 갔다.
  이 우화를 읽으니 남 일 같지 않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학부모들과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학부모 중 명품을 뽐내는 부류가 있었는데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이 굉장해서 학원을 서너 개씩 보내고 있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명품을 걸친 사람과 아닌 사람을 달리하였다. 한 학부모는 아이 생일잔치에 내 아이를 일부러 초대하지 않거나 서로 만날 기회를 줄여서 친했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였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볼 때는 왜 저럴까 했는데 내 일이 된 것이다.
  평소 나는 아이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게 하고 싶어서 학원은 하나만 보내고 비싼 물품을 걸치는 것보다는 그저 깨끗하고 단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또래들보다 뒤처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더욱이나 능력이 없어 아이 교육을 못 시키냐는 주변 학부모들의 말에 경제적 여유가 없음에도 어느샌가 학원을 더 알아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학부모가 명품 옷이나 가방, 좋은 차를 타고 올 때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유치원 행사에 갈 때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아이도 안다고 생각하니 아이가 혹시나 이런 분위기에 상처받아 주눅이 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 인용문에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 우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공작이 나타난 것이다! 공작 한 마리가 아주 화려한 꼬리를 거만하게 접었다 폈다 하며 까마귀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때의 까마귀들 표정을 상상해 보니 너무 우스웠으나 한편으로는 내 모습과 겹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정작 하나를 얻고 나면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눈에 보일 것이고, 점점 그렇게 따라 하다 보면 내 정체성이 사라져 마음이 공허해질 것 같았다.
  모두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중한 존재임에도 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력으로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 세태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더 나아 보이는 주변 사람이나 여건을 좇으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나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 상황도 있다. 소중한 내 아이가 부족한 내 경제력에 따라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소중함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내면의 소중함을 알고 사람 사이에서 지혜를 조금씩 배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경』에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가느니라”(교법 2장 17절)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까마귀 아닌 까마귀가 되지 않도록 수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삶을 고민해 본다. 오늘도 나는 아이를 보며 한 뼘 성장한 것 같다.





01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경기: 사계절출판사, 2013), pp.177-18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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