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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야기
2. 외금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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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만냥골에 깃든 이야기  

 

 

  망양대를 뒤로하고 동남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육화암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한하계의 물줄기를 따라 다시 온정리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의 중관음봉 중턱에 있는 높이 37m의 관음폭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폭포 윗목에는 ‘만냥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강원도 양양땅에 박씨성을 가진 노인이 있었다. 그는 운명이 기구하여 어릴 때 이 고을의 어느 양반집에 끌려와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이제 늙고 병들어 쇠약해지니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박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고향에서 보내려고 금강산 온정리로 갔다. 머슴의 신세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일가친척 하나 없이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가 가진 재산이라곤 허리에 찬 곰방대와 담배쌈지가 전부였다.

  박노인은 우선 선친들의 무덤이나 한번 찾아보자고 생각하며 관음폭포 윗목에 있는 골짜기로 들어갔다. 워낙 골이 깊고 숲이 무성한 비탈길이어서 올라갈수록 힘들고 숨이 찼다. 그래서 노인은 밤나무 밑에 앉아 한동안 쉬었는데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몹시 갈증이 났다.

  마침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물 흐르는 소리가 나서 노인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떤 것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깜짝 놀란 노인이 무엇인가 하고 유심히 보았더니 칼자루만한 풀뿌리가 비죽이 땅 위에 솟아 있었다.

  풀뿌리라면 혹시 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노인은 흙을 파헤쳐보았는데 파면 팔수록 그것의 몸통이 굵고 땅 속에 깊이 박혀있어서 캐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 그것과 씨름하여 겨우 파냈더니 과연 새하얀 뿌리는 무보다 더 컸다.

  이때 약초 캐러 다니던 사람 몇 명이 숲 속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박노인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수십 년째 금강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지만 이렇게 큰 산삼은 처음 보았다며 부러워했다. 그제야 박노인은 그것이 삼(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그 귀중한 산삼을 캤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또 삼이란 말을 듣고 보니 생김새는 삼 모양과 비슷한데 이렇게 큰 것도 있나 싶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다음날 박노인이 큰 산삼을 캤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경꾼들은 너무나도 큰 산삼을 보자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나중에는 부러워하면서 이런 산삼을 한번 캐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둥 임금에게 바치면 큰 상을 받겠다는 둥 별의별 소리를 다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처자도 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노인을 동정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산삼 구경은 어느덧 흥정으로 변해갔다. 구경 온 사람들이 원래 금강산 약재들은 효능이 높아서 비싼 값에 팔리는데 이런 산삼이고 보면 그 값이 상당하리라고 말했다. 그러고들 있을 때 금강산 구경을 왔던 어떤 부자가 돈 만 냥을 내놓고 그 삼을 가져갔다.

  노인은 그 돈으로 밭을 사고 조그마한 과수원도 하나 마련했다. 그리고는 힘에 부치지 않을 정도로만 참외를 심고 수박도 얼마간 심더니 가을에는 만물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정자를 하나 지은 다음 그 앞에 가게를 차려놓았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노인이 예나 다름없이 헌 옷을 입고 다니며 끼니도 생기는 대로 때운다는 것을 알고는 돈이 생기면 사람이 인색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장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정자에 앉아서 금강산 구경을 오는 사람들을 청해 들여 손님들한테 옛말도 하고 듣기도 하다가 수박이며 참외를 권하는데 돈을 받는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상한 노인이라는 말들이 돌았지만 점차 지나가는 길손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박노인의 정자에 들러 쉬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박노인은 고역에 시달리며 늙어온 몸인데다가 본래 지니고 있던 병까지 도져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더 나누지 못한 채 얼마 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노인의 임종시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갔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한숨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말년에 돈이 생겨 불쌍한 노인을 하늘이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밥 한 끼 변변히 잡숫지 않고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일찍 가십니까!”

  그랬더니 노인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어려서부터 머리가 흴 때까지 양반집 시중이나 들면서 한 세상을 보냈소. 그래서 사람들을 위해 한 일 없이 한(恨) 많은 귀신이 될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런데 산삼을 캔 덕에 그래도 웃으며 저승에 가게 되었으니 그 값을 돈 만 냥에 비기겠소.”

  그 후 사람들은 노인의 일을 회고할 기회가 생기면 만 냥짜리 산삼을 캔 이야기도 함께 꺼내곤 하였는데, 그렇게 세월이 가는 동안 그 골짜기는 어느덧 ‘만냥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교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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