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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東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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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東鶴寺)

 

  국립공원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동학사(東鶴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위치하고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약 1.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동학사는 경내에 미타암, 관음암, 길상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박제상(朴堤上)을 모신 동계사(東鷄祠)와 포은(圃隱)·목은(牧隱) ·야은(冶隱)을 모신 삼은각(三隱閣), 그리고 단종을 모신 숙모전(肅慕殿)이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계룡산은 조선조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하였던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계(鷄)와 용(龍)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를 대표하는 산으로, 통일 신라시대에는 오악(五岳)중 서악(西岳)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岳) 중 중악(中岳)으로 봉해질 정도의 명산이다. 본래 태조는 이곳에 조선의 도읍을 정하려고 하였으나, 정씨의 도읍이라는 도참설 때문에 서울에 도읍을 옮겼다고도 하고, 뱃길과 교통이 불편하여 도읍으로 적당치 않다는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고도 한다. 신도안은 계룡산 남쪽에 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꼽혀 예부터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도읍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동학사 경내를 알리는 일주문을 지나면 일반 사찰과는 달리 홍살문이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홍살문은 본래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陵), 원(園), 묘(廟), 궁전(宮殿), 관아(官衙)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이다. 동학사가 충신열사들을 모셔놓은 곳이기에 그 충절을 기리고자 홍살문을 세워 그 불굴의 기개를 표창한 것이 아닌가 싶다.

  724년(신라 성덕왕 23)에 상원조사가 입적한 후 그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쌍탑(남매탑)을 건립하고, 풀집을 이어 동학사의 전신인 상원사(上願寺)를 창건하였다. 그후 921년(고려 태조 4)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를 중창하여 고려 태조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고 한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신라의 대승관이었으며 고려의 개국공신인 류차달(柳車達)이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박제상(朴堤上 ; 눌지왕 때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하고 그곳에서 순절한 충신)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이곳에 동계사(東鷄祠)를 짓고 절을 확장한 후 동학사(東鶴寺)라고 하였다.

  고려가 멸망한 직후인 1394년(조선 태조 3)에는 고려 유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인 운선(雲禪)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과 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그후 1399년(정종 1)에 고려 유신 류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포은 정몽주(鄭夢周), 목은 이색(李穡), 야은 길재(吉再) 등 삼은(三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그 이듬해에 공주 목사 이정간(李貞幹)이 삼은각(三隱閣)을 세웠다.

  1455년 왕위가 세조에게 넘어가고, 그 이듬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시신을 김시습(金時習)이 노량진에 묻고 바로 이곳으로 와서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다. 1457년에 세조가 이곳에 들렀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자와 고려 역대 왕 및 고려 말에 죄없이 죽은 자들의 천도를 축원하였다고 한다.

단종이 죽임을 당한 후에 영월 향리인 엄홍도가 왕의 옥체를 수습하고 장사를 지낸 뒤 임금의 도포를 받들고 도망다니다가 김시습을 만나게 되었고, 김시습이 엄홍도와 함께 단종의 제단을 만들어 초혼제사를 지냈다. 1458년 세조가 다시 이곳을 들러 초혼각(招魂閣)을 세울 것을 명하고 사액을 내리고 세조 찬위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명단을 비단에 적어 주며 유불(儒彿)이 공사(共祀)토록 하였다.

  1728년 신천영이라는 사람이 절을 불태워 초혼각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서 없어지게 되었으며, 1864년(고종 1)에 만화(萬化)와 보선(普善)이 사찰과 초혼각 2칸을 중건하였다. 1904년(광무 8) 나라에서 초혼각을 고쳐 숙모전(肅慕殿)이라 사액함으로써 역대 충혼들을 모시는 곳으로 승격시키는 조치가 있었다. 1956년에 비구니 전문 강원(講院)이 설립되면서부터 비구니들만의 도량(道場)이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에 유림(儒林)들은 류방택(柳芳澤)을 삼은각에 추배하였고, 1924년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죽헌(竹軒) 라계종(羅繼從)을 삼은각에 추배하였으며, 1956년에 아사(鵝沙) 류차달(柳車達)을 동계사에 추배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동계사에는 박제상과 함께 류차달이 모셔져 있고, 삼은각에는 정몽주, 이색, 길재, 류방택, 이숭인, 라계종의 6위(位)가 모셔져 있다. 숙모전은 정전(正殿)과 동·서무(東·西 )의 세 건물로 이루어져 정전(正殿)에는 단종이, 동무(東 )에는 안평대군 외 46위, 서무(西 )에는 송현수 외 47위가 모셔져 있다.

  동학사는 신라, 고려, 조선 삼대(三代)의 충의 지사를 초혼하였으니 많은 한(恨)을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1956년(丙申) 3월에 도주님께서는 이곳 동학사의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렛 동안 신명 해원을 위주로 한 공부를 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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