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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개태사(開泰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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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전경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개태사(開泰寺)는 계룡시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논산을 향하는 길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후백제 견훤(甄萱)의 아들인 신검(神釖)을 이곳 연산에서 무찌르고 삼국통일을 완성하였다.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을 하기 전에 왕건은 도선국사의 진언에 따라 적군을 무찔러 주기를 하늘과 부처님에게 빌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병사들이 나타나 왕건의 군사들과 함께 싸우니 신검의 군사들을 무찌르고 승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왕건은 삼국을 통일한 것이 부처님의 가호와 하늘의 도움이라 여겨, 산의 이름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 하였다. 또 이곳에 절을 짓게 하고, 친히 발원문을 불전(佛前)에 바치고 개태사(開泰寺)로 명명하였다. 절 이름을 개태(開泰)라 한 것은 모든 부처와 하늘의 도움으로 만세태평(萬歲泰平)의 운을 개벽(開闢)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개태사는 태조 왕건의 영정(影幀)을 모신 전각을 둔 고려 최대의 호국 수호사찰로 전성기에는 전국의 모든 사찰을 통괄하였다고 한다.
절을 향해 들어가면 일주문 같기도 한 천왕문이 있는데 대들보에 불기(佛紀) 3007년 경신(庚申, 1980)이라 씌어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일반 가정집의 대문이 나타나고 경내의 모든 건물이 한눈에 들어와 이웃집이나 친척집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왼쪽으로 개태사중창공덕비와 5층석탑이 있고 그 뒤로 용화대보궁(龍華大寶宮)이 위치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뫼 산(山)자 모양의 우주당(宇宙堂)이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창운각(創運閣)이자 정법궁(正法宮)이며, 그 옆으로 팔각정 모양의 용화전(龍華殿)과 개태사 철확(鐵鑊)이 있는 우주정(宇宙井)이 있어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용화대보궁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아미타불, 좌협시불은 대세지보살, 우협시불은 관세음보살이라 하여 아미타삼존불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의 본존불은 미륵불이었고, 좌협시불을 지장보살, 우협시불은 관세음보살로 이루어진 미륵삼존불이었다고 한다. 개태사는 고려말 왜적(倭賊)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고, 조선시대의 억불(抑佛)정책에 의해 절터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쇠락하여 폐찰(廢刹)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개태사 용화대보궁 자리에 관세음보살만 홀로 있던 것을 김광영(金光榮) 부인(이하 부인)이 무인(戊寅, 1938)년에 삼존법당(三尊法堂)을 지어 나머지 두 존불(尊佛)을 함께 모셨다고 한다. 부인이 관세음보살에게 정성을 들이기 30여 년인 경오(庚午, 1930)년에 관세음보살의 계시(啓示)로 미륵불(아미타불)과 지장보살(대세지보살)을 발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부인은 1945년에 절 이름을 개태도광사(開泰道光寺)라 하고, 1946년에 용화전을 준공하고 나반존자(那般尊者)를 봉안하였으며, 개태사지(開泰寺址)에 있던 오층석탑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1947년에 창운각을 건립하고 우리의 국조(國祖)인 단군(檀君)을 모셨으며, 1950년에 우주당을 신축하여 관성제군(關聖帝君)을 모셨다. 1981년에 부인의 딸 유진팔이 연산공원에 있던 개태사관성제군을 모셨던  철확을 옮겨와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관성제군을 모셨던 우주당 전경
 

개태사 철확은 직경이 3m, 높이가 1m, 둘레가 9m인 거대한 솥으로, 개태사 전성기에는 3천 명의 승려들의 음식공양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폐찰(廢刹)이 된 후 방치되고 있었다가 고려말 때 왜적의 침입시 솥을 우리 군사들을 위하여 다시 쓰게 되었는데, 이 솥으로 지은 밥을 먹은 군사들은 이상하게도 잘 싸워서 그때부터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1887년(고종 24)에 대홍수로 떠내려 가 묻혀있던 솥이 1909년에 발굴되어 경성박람회에 출품되었다. 1935년 일제는 이 솥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부산까지 가지고 갔는데, 솥에서 큰 소리가 나서 조선총독부로 옮겼고, 논산에서 가뭄의 피해가 계속되자 다시 개태사로 옮겼다고 한다. 그후 1944년 일제가 이 솥을 무기로 만드는데 사용하려고 징발하였다. 일본인들이 솥을 깨려고 내리치는 순간,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어나고 세찬 소나기가 내리면서 날이 갑자기 어두워지므로, 일본인들은 모두 무서워 도망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새로모신 나반존자상
 

창운각이자 정법궁은 가로 3칸의 건물이다. 우측 칸은 단군을 모시는 창운각이고, 가운데 칸은 불상을 모셔놓은 정법당이며, 좌측 칸은 현판이 없이 관성제군과 김광영 부인의 영정을 같이 모셔놓고 있다. 개인 사찰이었던 개태도광사는 부인이 죽은 후에 불교 조계종의 사찰이 되었고, 우주당은 본래의 모습인 산(山)자의 형태를 갖춘채 개축되어 지금은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우주당에 모셔져 있던 관성제군은 지금 창운각이자 정법당으로 옮겨져 있다.
용화대보궁에는 미륵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개태사 철확[鼎]과 우주당(山字 형상)이 나란히 있어 도주님을 가르켜 주고 있는 것 같아 우리의 연원(淵源)과 종통(宗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 용화전에 있던 나반존자상은 1996년 이후에 사라지고, 새로운 나반존자상을 만들어 다시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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