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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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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이야기 : 겁액(劫厄)을 극복하라

겁액(劫厄)을 극복하라
 
 
글 교무부
 
 
 여주본부도장 정각원 2층 벽화
 
  이 벽화는 한 사람이 험준한 벼랑을 힘들게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닥치는 겁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겁액(劫厄)이란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장애를 말합니다.01 위협할 겁(劫)은 갈 거(去)에 힘 력(力) 자를 합한 글자로 내가 가려고 하는데 어떤 큰 힘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입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장애를 연상시킵니다. 재앙 액(厄)은 벼랑(厂)에서 굴러떨어져 다쳐서 쪼그리고 있는 사람(㔾)의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재앙(災殃)입니다.
 
 
겁액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성공의 과정
  도전님께서는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으니 이것을 겁액이라 한다.”02 하시며, “겁액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성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03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이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데서 탈선이 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앞길을 막아 버리는 사례가 많다.”04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서나 우리의 도(道) 사업에서 성사(成事)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기 마련이고, 지혜와 용력(勇力)으로 이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곧 성공의 과정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부족하면 운명론(運命論)에 치우치거나 포기론(暴棄論)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운명론은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이고, 포기는 자포자기의 준말로 절망에 빠져 하던 일을 중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탈무드』에 「우유 통에 빠진 개구리 세 마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구리 세 마리가 마을에 갔다가 우유 통에 빠졌는데, 한 마리는 그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여 이내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발버둥 치고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죽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치다보니 우유가 치즈로 변하여 살아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인간은 운명론이나 포기론자가 아니라 자조론자(自助論者)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도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을 성공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또한, 겁액을 통하여 나 자신이 연성(煉性)이 되고 단련이 된다는 것도 이해하여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맹자(孟子)』 한 절을 일러 주시면서 그 책에서 더 볼 것이 없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할 때는 필히 먼저 그 심기를 어지럽히고, 몸을 힘들게 하며, 굶주리게도 하고 궁핍하게도 하며, 하는 일을 분란하게 하는데 이는 참을성을 키우고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니라(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행록 3장 50절) 보통 사람들은 과오를 저지른 뒤에야 고치게 되고, 마음으로 곤란을 당하며 생각대로 잘되지 않은 뒤에야 분발하며, 일의 기미를 보고는 알지 못하고 일이 뚜렷하게 드러나야 깨닫게 되므로 하늘이 겁액을 베풀어 사람을 기르는 고난의 깊은 섭리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겁액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성공의 과정이라는 것과 하늘이 내리는 고난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생존(生存)의 이치’와 ‘화복(禍福)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존(生存)의 이치
  도전님께서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置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음과 같이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은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할 것이다.”05라고 하셨습니다.
  ‘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은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 나오는 한신(韓信)의 말입니다. 한신은 얼마 안 되는 군사로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맞아 싸울 때 배수진을 이용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때 부하 장수들이 “병법에 말하기를, 산과 언덕을 뒤로 하고 물과 들을 앞으로 하라고 하였는데, 지금 장군께선 배수진으로 조나라 군사를 물리쳤으니 이것은 도대체 무슨 전법입니까?”라고 물으니, 한신은 “이것도 역시 병법에 있는 것이다. ‘사지에 빠진 연후에 살게 되고, 망하는 지경에 놓인 연후에 남게 된다(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고 하지 않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지에 빠지고 망하는 지경에 놓이면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분투노력하게 되므로 그 과정에 생존(生存)의 이치를 터득하게 됩니다. 생사(生死)와 존망(存亡)은 서로 음양(陰陽)의 관계로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고 하지(夏至)에 일음(一陰)이 시생(始生)하는 것처럼 생사와 존망은 서로 뿌리가 되고 유전(流轉)합니다. 
  특히 수도인은 유교의 72현(賢)과 불교의 500나한(羅漢), 기독교의 12사도(使徒)의 고역(苦役)을 생각해보고, 『전경』 예시 83절에서 10년 동안의 진심갈력의 농사 끝에 다시 목숨을 건 믿음을 통하여 신선이 되어 천상에 오른 머슴이야기를 생각해 볼 때, ‘함지사지이후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에 존(存)한다.’는 격언은 곧 우리 자신의 일임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화복(禍福)의 이치
  도전님께서 ‘함지사지이후에 생하고 치지망지이후에 존한다.’는 말은 복(福)을 복마(伏魔)로 풀면 화복(禍福)이라는 말과 대등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복(福)이 홀로 오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화(禍)를 앞세우고 오거나, 복 뒤에 바로 마(魔)를 달고 옵니다.
  자고로 화가 오고 복이 오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입니다. 화와 복은 한가지로, 당하는 화를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복도 능히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살아서 능히 화를 감당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해서 그 화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화는 복의 껍질이니 당하는 화가 클수록 복도 그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복의 이치이며 천리(天理)입니다.
  상제님께서 “자고로 화복이라 하나니 이것은 복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이 이르느니라.”(교법 1장 19절) 하시고, “나는 해마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교법 2장 15절)고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전 우주를 주재 관령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므로 상제님 말씀은 곧 천리(天理)입니다. 인사(人事)는 천리에 부합해야 성공이 있습니다. 천리에 순응하는 것은 순리(順理)라 하고, 천리에 역행하는 것을 역천(逆天)이라 합니다. 고래로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당하는 화를 잘 견디어 복이 이른다 하더라도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복에는 마(魔)가 따르는 법이니 방심은 금물입니다. 마에는 인마(人魔)와 신마(神魔), 심마(心魔)가 있습니다. 인마는 사람을 통하여 오는 것이고 신마는 척신(慼神)의 작용이며, 심마는 내 마음 안에서 발동하는 마장(魔障)입니다. 인마와 신마는 내 몸 밖에서 발동해서 밀고 들어오는 것이지만 내가 짓지 않은 것이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므로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교법 1장 56절)와 “척을 맺는 것도 나요 척을 푸는 것도 나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풂으로써 상대는 스스로 풀리게 되니, 양편의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06라는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하여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고 대함으로써 풀어나가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07 인마와 신마보다 내 마음 자체에서 발동하는 심마는 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발동하는 복마이자 자신의 겁액인 줄을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수도인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남에게서 허물이 보이면 나 또한 그러한 모습이 없는지 살펴서 나를 고쳐나가야 합니다.
  상제님께서도 남을 비방하는 데 대해서 “사람마다 제 노릇 제가 하는 것인데 제 몸을 생각지 못하고 어찌 남의 시비를 말하리오.”(교법 1장 20절)라고 하시며,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고 당하여도 큰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를 힘쓰라”(권지 2장 24절) 하셨으며, 까닭 없이 오해를 받고 구설을 사서 분개하는 사람에게는 “바람도 불다가 그치나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동정에 때가 있나니 걷힐 때에는 흔적도 없이 걷히나니라.”(교법 1장 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을 지키기도 죽기보다 어려운 법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 자신의 허물이었음을 언젠가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마음은 언제나 정직하고 진실한 인성(人性)의 본질인 양심(良心)을 회복하기에 힘쓰고, 몸은 언제나 예법과 도리에 합당케 해야 합니다.
 
 
겁액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그러면 일을 도모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겁액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겁액을 극복하는 방안은 우선, 앞서 언급한 화복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생사의 이치와 화복의 이치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자신이 하는 일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중에 하차하는 일 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먼저 화를 겪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정한 천리(天理)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겁액을 극복하는 방안은 다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일심(一心)을 갖는 것입니다. 일찍이 상제님께서는 일심의 효용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공(成功)은 일심(一心)에 달려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한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한할 것이로다.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교법 2장 5절)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도들 앞에서 서양의 우사를 불러 마른 하늘에 검은 구름이 일며 큰 비가 내리게 하신 후에 “너희들도 지성을 다하여 수련을 쌓으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권지 2장 35절)고 하셨습니다.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복을 베풀어주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 하시며,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교법 2장 13절) 하셨습니다. 
  겁액을 극복하는 방안은 다음으로, 당하는 겁액이 크면 클수록 성(誠)경(敬)신(信)을 더욱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대순진리를 닦아나가는 요체(要諦)는 성경신에 있습니다. 우리 도(道)의 일뿐만 아니라 인간사 모든 일이 성경신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08 성경신으로 해원상생을 이루며 생사판단도 결정되는 것입니다.09 인간의 복록과 수명도 성경신에 있으니, 도전님께서 “복록 성경신, 수명 성경신이라 하셨으니 복록 수명이 성경신에 있느니라.”10고 하셨습니다. 일하는 과정에 겁액이 닥치면 추호도 굴복하지 말고 성경신을 더욱더 지극히 함으로써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겁액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곧 성공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겁액을 극복하는 방안은 또한, ‘도적(道的) 낙관주의’로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도주님의 포유하신 인도에 따르라.”11 하시며,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의 임의(任意)에 맡기라.”12 하셨습니다. 이것은 겁액을 극복하는 데서나 도심(道心)을 유지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도인의 마음가짐입니다.
  도적 낙관주의는 나 자신이 상제님을 믿고 도를 닦는 한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달관한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수도과정을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과 장애가 있어서 당시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밑거름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하는 화 역시 먼 훗날 돌이켜보면 나에게 덕이 되는 것임을 자각한다면, 화는 복의 껍질임을 알고 안심(安心)안신(安身)을 이루고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과정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오직 심기를 바르게 하고 의리를 세우며 심령을 구하여 모든 일을 상제님의 임의에 전적으로 맡기고 성경신을 다할 뿐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경우에는 언제나 다음 경구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겁액을 극복하라, 그것은 성공의 과정일 뿐이니!
 
 

01 『대순지침』, p.93 참조.
02 『대순지침』, p.93.
03 상동.
04 『대순지침』, p.94.
05  『대순지침』, p.94.
06 『대순지침』, p.27 참조.
07 교법 2장 6절 참조.
08 『대순지침』, p.54 참조.
09 상동.
10 『대순지침』, p.38.
11 『대순지침』, p.90.
12 『대순지침』,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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