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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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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 김일부(金一夫)의 영가무도(詠歌舞蹈)

김일부(金一夫)의 영가무도(詠歌舞蹈)
 
 
 

연구원 신상미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 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 그는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던 중 어느 날 일부가 꿈을 꾸었도다. 한 사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일부에게 강 사옥(姜士玉)과 함께 옥경(玉京)에 오르라는 천존(天尊)의 명하심을 전달하는도다. 그는 사자를 따라 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가니라. 사자는 높이 솟은 주루금궐 요운전(曜雲殿)에 그들을 안내하고 천존을 배알하게 하는도다. 천존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상찬하고 극진히 우대하는도다. 일부는 이 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도다. 일부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도다. (행록 2장 2절)

      
  상제님께서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이가 김일부(金一夫, 1826~1898)였다. 김일부는 상제님을 뵙게 될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었다. 그는 후천역(後天易)이라고도 하는 정역(正易)을 찬술한 인물로 훗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실 때에 김일부에게 청국(淸國)의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직책을 맡기기도 하셨다.01 『대순회보』에서는 김일부의 생애와 정역사상02에 대해 여러 차례 다루었으나 그의 영가무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김일부의 영가무도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 김일부 생가 마을 전경(충북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소재)
 

1. 영가무도의 유래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깨달음  
  김일부는 조선조 성종 때 좌의정을 지냈던 광산(光山) 부원군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13세 후손으로 아버지 김인로(金麟魯, 1801~1845)와 어머니 대구서씨(大邱徐氏, 1804~1853)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족보명은 재일(在一)이고, 초명(初名)은 재악(在樂)이요, 자(字)는 도심(道心), 초호(初號)는 관벽(觀碧), 개명(改名)은 항(恒), 개호(改號)는 일부(一夫)였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 오도산(五道山)의 기슭이었다.03

 
 
  
  김일부는 여느 선비처럼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35세에 연담(淵潭) 이운규(李雲奎, 1804~?)를 스승으로 모시고부터는 스승은 물론 공자(孔子, BC 551~479)를 존경하며, 『서경(書經)』과 『주역(周易)』을 연구하였다. 일각에서는 영가무도의 교법을 연담에게서 전수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스승 이운규가 영가무도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김일부 제자 김영태(金永台, 1863~1945)의 수제자인 박상화(朴相和, 1910~1994)의 주장에 따르면 김일부가 스승의 가르침을 깨우치면서 영가무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상화는 김일부 영가무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영가무도는 김일부가 36세 이후부터 스승 이운규가 전해 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04의 뜻을 19년 동안 참구하여 형성된 수련이다.”05 김일부가 사색(思索) 중에 영감(靈感)을 얻어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불렀을 뿐이며 또한 부르지 않고는 못견딜 만큼의 충동적인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그 창법이 나왔다고 한다.06 영가무도라는 명칭은 김일부의 제자이자 고종사촌인 권종하(權鍾夏)가 지어준 것이다.
  물의 이치를 중요시했던 김일부의 스승 이운규는 유수(流水)를 찬탄한 공자07와 맹자08의 말씀 중에서 천지일월(天地一月)의 변화지도(變化之道)를 내용으로 하는 천도(天道)와 이에 순응하는 성인(聖人)·군자지도(君子之道)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김일부가 맹자의 도학정신(道學精神)을 올바르게 깨달음으로써 천심월(天心月)이 영동(影動)하여 황심월(皇心月)이 체성(體成)되는 ‘천지역수(天之曆數)’ 변화원리(變化原理)를 깨닫길 바랐다.
  김일부의 나이 54세(1879)때에 영가무도를 수련하던 어느 날 눈앞에 이상한 괘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후천 세계를 상징하는 정역팔괘(正易八卦)였다. 영동천심월의 뜻을 깨달은 김일부는 『정역(正易)』 『십오일언(十五一言)』에 요임금 때의 일년은 366일, 순임금으로부터 현재까지는 365 1/4일 역(曆)을, 자신이 말하는 정역시대의 일년은 360일임을 알렸다.09 그리고 선천의 16일 계미(癸未)·계축(癸丑)이 후천에 초하루가 되고 선천 초하루인 무진(戊辰)·무술(戊戌)이 후천에 16일이 됨을 밝혔다.10 그의 영가무도가 영동천심월의 뜻을 19년 동안 참구하여 형성된 수련이기에 ‘영동천심월’의 깨달음이 영가무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2. 영가무도 수행법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의미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일부가 창안한 영가무도의 수련방법은 현재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어떤 한 가지만을 옳다고 볼 수 없기에 영가무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몇 가지 소개해 보겠다.
  영가무도를 연구하는 유영준 박사는 영가무도가 기본적으로 오행(五行)과 오장(五臟)에 배당된 오음(五音), 즉 ‘궁·상·각·치·우’의 소리인 ‘음·아·어·이·우’ 다섯 가지 소리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것을 하나씩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느리게 소리를 내다가 점차 빠르게 소리를 내면서 손과 발을 움직여 자연스러운 몸동작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통한 수련방법이라 주장하였다.
  전 서울대 교수인 이애주는 영가무도가 길게 소리를 내어 부른다는 의미의 영(詠)과 노래한다는 의미의 가(歌), 춤을 춘다는 의미의 무(舞), 뛴다는 의미인 도(蹈)로 이루어져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말 그대로 길게 늘여 소리 내어 읊조리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는 것으로 소리 지르고 몸을 움직여 자기를 다스리고 찾아서 깨달음에 이르는 동적인 선(禪)의 행위라고 하였다.
  영가무도를 주제로 박사 학위논문을 작성한 김현주는 오장육부(五臟六腑)에서부터 발생하는 ‘음·아·어·이·우’의 다섯 가지 소리를 말로 읊조리다가 흥이 나면 읊조리던 말이 노래가 되고, 더 흥이 나면 춤으로 변하며, 흥을 이기지 못하면 뛰며 춤추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반복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심신 수양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동욱은 영가무도를 ‘음·아·어·이·우’ 오음의 소리를 통하여 몸 안에 진동을 일으켜 장부(臟腑)와 공명(共鳴)을 하여 심신(心身)을 건강하게 하고 수련하는 소리기공법이라고 설명하였다.11
  김일부의 증손자인 김효수 씨는 영가무도를 ‘울림(영가)과 놀림(무도)’이라 칭하며, ‘음·아·어·우·이’의 다섯 가지 소리를 10번 정도 하면 느낌이 이상해지며 점점 빨라지는데, 그러다 일어나서 춤을 추게 된다고 하였다. 이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 서로 부딪치는 것도 모를 정도로 춤에 심취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단계인 단가(短歌)에 이른다고 하였다.12 단가에 대해서는 무극대종교13 7대 교주 홍성준 또한 언급했다. 그는 영(詠)을 궁성(宮聲), 가(歌)를 팔음성(八音聲)이라 하여 영가무도의 단계 중에서 매우 빠르게 부르는 단계를 단가라 하였다.14
  위의 내용과 같이 영가무도는 오음을 각각 한 차례씩 부르면서 여러 차례 연이어 부르는 방식으로 현재도 소리를 통한 수행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오음의 곡조에 대한 주장은 조금씩 다르다. 박상화는 오행의 상생 원리를 적용하여 ‘음·아·우·어·이’의 순서가 맞으나 온전한 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궁·상·각·치·우’의 발성법과 일치한 ‘음·아·어·이·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40년  《조선일보》에 ‘평조, 계면조 이야기(1)’라는 글을 쓴 김석구는 유가 선비들이 영가무도에서 ‘음·어·아·이·오’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항공대 교양학부 우실하 교수는 ‘궁·상·각·치·우’ 오음의 발성법과 동물의 울음소리를 종합하였을 때 ‘음·아·우·이·오’가 가장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일부 증손자는 집안에서 전해온 바로는 ‘음·아·어·우·이’라고 주장한다.15 오음의 중심소리인 ‘음’을 제외하고는 조금씩 다른 주장을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정호 박사는 김일부가 생존시에 다른 사람 앞에서 영가무도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영가무도인들이 하는 음율과 곡조가 제각기 다른 것이라 보았다.16
  대부분의 연구가는 영가무도의 오음(五音)을 중국 음악의 다섯 가지 소리인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발성법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의 <표 1>17은 두 오음의 발성법과 여러 견해를 간단히 비교한 것이다.
 
 
 
  김일부의 제자인 권종하는 영가무도는 본시 영가(詠歌)로 심법(心法)을 기르고 무도(舞蹈)로 혈맥(血脈)을 길러서 더러운 것을 맑게 하고[청융사재(淸融渣滓)] 방탕하고 사악하며 더러운 것을 씻는 것으로[탕척사예(蕩滌邪穢)] 전해왔다고 하였다. 그러다 주자(朱子)가 영가무도를 시(詩)·서(書)·예(禮)·악(樂)의 묘리(妙理)를 체득하는 위학(爲學)의 방법으로 강조하였지만18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김일부를 통해 영가무도가 다시 알려진 것이라 주장하였다.19
  한편, 영가무도는 도덕적 심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법이며, 천지자연 ‘오음’을 통한 참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가무도의 창법은 어떠한 조건도 필요 없이 혼자 또는 여럿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무도를 할 때 땀을 흘리며 흥겹게 자유로이 하게 되므로 체육활동으로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종교인들에게는 후천세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수행법으로도 알려졌다. 
 

3. 종교에 끼친 영향
 
  영가무도를 종교적 성향의 수행으로 보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남학[南學, 1862년(철종 13)]과 여기서 파생된 대종교(大宗敎)와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를 들 수 있다. 남학은 동학의 발생과 때를 같이하고 교리가 거의 비슷하면서도 방법이 다르다고 본 사람들에 의해 동학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불린 교단의 명칭이다.
  남학은 후천세계의 지상낙원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운규(李雲圭)의 후천개벽 역리(易理)를 인식하고 오음의 주송수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영가무도의 오음(五音)은 오행(五行) 근본의 천성(天聲)에 따라 양률음려(陽律陰呂)로 장부(臟腑)에서 나오는 것이니 혈기(血氣)가 화평하면 노래도 하고 읊기도 한다.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게 되어 자연히 심정이 영허(靈虛)해지고 신명(神明)이 부응하여 조화의 이치와 격에 맞는 공(功)을 깨달아 통하게 된다고 보았다.20 이 계통의 신자들은 영가무도로 병을 고치고 상제·신명을 맞이하여 재앙에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남학에서 나뉘어 형성된 대종교는 하상역(河相易)이 창도한 교단이다. 대종교에서는 오음의 효과를 영가로써 무도하면 천인상감(天人相感)하며 신인동도(神人同度)하게 되며, 인심(人心)을 기르고 혈맥을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21 1960년경 송철화(宋喆和)에 의해 창설된 영가무도교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새로운 이해를 근거로 정역(正易)의 원리와 실천으로써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우주의 원리인 오행성(五行聲)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춤추다가 무아지경에 가게 되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보았다.
  종합해 보면 유교적 성향의 영가무도는 선비의 정신 수양을 위한 운동법이었다. 김일부의 증손자 또한 유교적 성향의 영가무도를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영가무도를 종교적 성향의 수행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후천세계에 갈 수 있는 하나의 주문 수련법으로 보았다. 이에 따르면 달의 위상(位相)으로 선천세상은 가고 후천세상이 올 것을 깨달은 김일부는 영가무도를 후천세상으로 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된다. 이러한 엇갈리는 주장은 『정역(正易)』에 관한 성학적(聖學的) 연구보다 김일부의 후학들이 김일부를 개인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교단의 교주로 삼아 연구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김일부의 영가무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저서인 『정역(正易)』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역(正易)』을 통해 후천세상이 올 것을 알렸던 김일부는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실 것 또한 암시하였다. 이러한 식견을 지닌 그였기에 상제님께서 그를 찾아가신 것이고, 상제님을 뵙기 전에 꿈을 통해 상제께서 광구천하(匡救天下) 하심을 알게 되었던 것22이 아닐까 생각한다.
 
 
天地淸明兮 日月光華     하늘땅이 맑고 밝아 해와 달이 빛이 나네.
日月光華兮 琉璃世界     해와 달이 빛이 나니 밝고 맑은 유리세계 되는도다.
世界世界兮 上帝照臨     유리세계 되고 보니 상제께서 오시어 굽어 살피시는 것이로다.

 

 『정역(正易)』 「십일음(十一吟)」 후면(後面)에서

 
 

01 공사 1장 7절.
02  대순회보 20, 84, 85, 88호 참조.
03 그의 증손자(1942년생)는 현재 김일부 선생의 묘소(충남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 608번길 25-24 부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탄강지라고 하였다. 그곳은 대나무 숲이 울창한 곳으로 건양학원(충남 논산시 양촌면 황산벌로 608번길 27-1) 주변이다. (2014. 08. 02 김일부 증손자 김효수 씨 인터뷰 내용 中에서)
04 “관염(觀淡)은 막여수(莫如水)요 호덕(好德)은 의행인(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① 증손자의 해석: 맑다고 생각한다면 물과 견주어 보고, 덕을 좋아한다면 인을 행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리하면 없는 것 같은 하늘도 네 앞에 보일 것이니, 자네에게 권하니 하늘을 만나보게나.
   ② 박상화의 해석: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니라. 천심월(天心月)이 어른거리노니, 예컨대 그대여 이 진리를 찾아보소.-(박상화, 『정역과 한국』, 경인문화사, 1978 참고)
05  충청남도역사문화원 충청학연구부, 『민속과 현대문화』 (충남: 국제인쇄사, 2005), p.629 참조.
06  박상화, 『正易을 바탕한 詠歌와 平和遊戱』 (서울: 우성문화사, 1981), p.115. 
07  『論語』, 「子罕」,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08  『孟子』, 「盡心章句上」, “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 觀水有術, 必觀其瀾. 日月有明, 容光必照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09 『正易』, 「十五一言」, “帝堯之朞 三百有六旬有六日. 帝舜之朞 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一夫之朞 三百七十五度 十五尊空 正吾夫子之朞 當朞三百六十日.”
10 『正易』, 「十五一言」, “五度而月魂生申 初三日, 月弦上亥 初八日, 月魄成午 十五日望 先天. 月分于戌 十六日,    月弦下巳 二十三日, 月窟于辰 二十八日, 月復于子 三十日晦 后天, 月合中宮之中位 一日朔.”
11 정유창ㆍ김영희, 「영가무도에 대한 문헌고찰 및 대체의학에서의 연구방향」, 『선도문화』 16 (충남: 한국학술정보, 2014), pp.267~268 참조.
12 2014. 08. 02 김일부 증손자 김효수 씨 인터뷰 내용 中.
13 ‘대종교’라고도 하며, 영가무도계열로 1909년에 창시된 나철(羅喆)의 대종교와는 구분해야 한다.
14 유영준, 「律呂로서의 詠歌舞蹈의 心身治癒에 관한 硏究」, 『선도문화』 13 (충남: 한국학술정보, 2012), p.400.
15 2013. 12. 05; 2014. 07. 21; 2014. 08. 02 김일부 증손자 김효수 씨 인터뷰 내용 中.
16 이정호, 『정역연구』 (서울: 국제대출판부, 1983), p.232 참조.
17 유영준, 「律呂로서의 詠歌舞蹈의 心身治癒에 관한 硏究」, 『선도문화』 13 (충남: 한국학술정보, 2012), p.392 참조.
18 『小學』, 「小學題辭」 “通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19 류남상, 『일부전기와 정역철학』 (대전: 원광출판사, 2013), pp.35~39 참조.
20 이능화, 『조선도교사』 (서울: 성보문화사, 2000), p.335 참조.
21 유영준, 「민족종교 무극대종교(無極大宗敎)의 영가무도(詠歌武道)」, 『종교연구』 56 (2009), p.287.
22 상제께서 광구천하하심은 김 일부의 꿈에 나타났으니 그는 상제와 함께 옥경에 올라가 요운전에서 원신(元神)이 상제와 함께 광구천하의 일을 의논 하는 것을 알고 상제를 공경하여야 함을 깨달았도다. (예시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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