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42년(2012) 11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74) 청계탑 대원종 고사 한마디 금강산 이야기 일각문(一覺文) 외부기고(한글날 특집) 나누고 싶은 이야기 동양고전 읽기의 즐거움 포토에세이 종교산책 생각이 있는 풍경 내가 읽은 책 퀴즈 및 퀴즈 정답자 대순광장 알립니다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74) : 포덕소공사

포덕소공사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8[戊申]년 11월의 마지막 날, 상제님께서는 정읍 대흥리에서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고쳐주신 후 차경석의 집에서 포덕소(布德所)를 정하는 공사를 보셨다.

  먼저 상제님께서는 황극수(皇極數) 공사부터 보셨다.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황극은 다섯 번째 항목이므로 대개 오황극(五皇極)이라 불린다.01 즉 황극의 수리(數理)는 중앙 토(土)인 오(五)이다. 또 소강절은 원회운세(元會運世)라는 역법(曆法)을 정립할 때 상수역(象數易)의 64괘와 384효를 사용하면서 384효의 각 효에 상응하여 황극이 그 다스림을 편다고 주장하였으니 384 역시 또 다른 황극의 수리가 된다. 하지만 황극수를 ‘숫자’로 이해하기 보다는, ‘황극수’의 수(數)에 이치, 도리, 법칙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황극수를 ‘황극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어느 때인가 상제님께서 동곡약방에 머무실 때 “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이르시면서 ‘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西神司命 左相右相八判十二伯 縣監縣令皇極後妃所)’라 써서 김광찬에게 “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하신 공사가 있었다.02 ‘좌상 우상 팔판 십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左相右相八判十二伯縣監縣令皇極後妃所)’는 관리들인 좌상(좌의정)과 우상(우의정), 팔판(중앙 행정직인 8명의 장관들), 십이백(지방 행정을 총책임지는 12명의 지방관들), 현감과 현령(고을의 우두머리, 큰 고을을 맡으면 현령이고 작은 고을을 맡으면 현감)들이 쭉 둘러 서 있는 가운데 ‘황극’과 후비(後妃)가 같이 있는 형국을 묘사한다. 상제님께서 이 공사를 보신 뜻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황극(皇極)은 임금의 의미로 이해된다. 고로 ‘황극수’란 임금이 정사(政事)를 펴는 원리나 법칙 등을 의미하는 듯하다.

 

 

 

  상제님께서는 황극수 공사를 위해 종도들을 모으시고 각자에게 소원을 말하도록 하셨다. 차경석의 차례에 이르자, 그는 “유방백세(遺芳百歲)를 못하면 유취만년(遺臭萬年)이 한이로다. 열지(裂地)를 원하나이다.” 하고 여쭈었다.

‘유방백세’는 옛날 중국 동진(東晉)의 대장군이었던 환온(桓溫, 312~373)에게서 나온 고사이다. 환온은 강력한 병권을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한 뒤, 제위에 있던 사마혁(司馬奕)을 무능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사마욱(司馬昱)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그가 간문제(簡文帝)인데, 간문제는 즉위한 지 불과 2년 만에 병으로 사망했다. 환온은 간문제가 죽을 때 자신에게 황제 자리를 넘길 줄 알았으나, 간문제는 그를 새 황제의 보정대신(補政大臣)으로 임명해버렸다.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망에 빠져있던 환온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밤에 베개를 만지작거리며 측근들에게 “이미 후세에 명성을 남기지 못했으니, 만년 동안 오명을 남기는 것을 되풀이해도 부족하도다.(旣不能遺芳後世 不足復遺臭萬載).”라고 한탄하였다.03 ‘유방백세 유취만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니, 즉 차경석의 말은 자신이 황제가 되지 못하면 한이 되니 자기가 직접 다스릴 수 있는 땅을 나누어 달라[裂地]는 뜻이었다. 이는 그가 과거에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04라고 한 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천자가 되기를 꿈꾸는 그의 허욕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차경석에게 “너는 병부(兵符)가 마땅하니라.” 하시니 그는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를 아신 상제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병권은 직신(直臣)05이 아니면 맡기지 못하므로 특히 너에게 맡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뒤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역대의 만고 명장들을 써 보라고 명하셨다. 차경석이 “창업군주도 명장이라 하오리까?” 여쭈니 상제님께서는 “그러하니라.”고 일러주셨다. 차경석이 황제헌원(黃帝軒轅)으로부터 은나라 탕왕(湯王)·주나라 무왕(武王)·강태공(姜太公)·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등을 차례로 열기하고, 맨 끝에 전명숙을 써서 상제님께 올리니, 상제님께서는 “전명숙을 끝에 돌린 것은 어찌된 일이뇨?” 하고 물으셨다. 차경석이 “글을 왼쪽부터 보시면 전명숙이 수위(首位)가 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말을 인정하시고 종도들에게 “전명숙은 만고 명장이라. 백의한사(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도다.”라고 알려주셨다.

 

 

 

  전명숙(全明淑)은 전봉준(1855∼1895)을 말하는데, ‘명숙’은 그의 초명(初名)이다. 그가 일으킨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번에 게재한 바 있으므로06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전봉준이 왕좌를 꿈꾸었던 다른 동학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욕심을 버린 채 오직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잘 되게 하는 데 힘썼다는 사실만 지적해 둔다. 그런 전봉준이었기에 그는 능히 천하를 움직일 수 있었고, 사후에는 잘 되어 조선의 명부까지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07

 

 

 

  상제님께서는 전봉준으로 인해 천하의 난이 동했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으셨는데,08 그 경위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본다.09

  1894년 2월에 전봉준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이를 막아낼 힘이 없었던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일본 역시 조선 내에 거주하고 있는 자국민과 공사관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했다. 이로써 조선에는 청·일 두 나라의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고, 두 나라는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것이 1894년 7월의 청일전쟁이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간단히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시 한반도를 장악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쪽의 러시아가 한반도를 욕심내며 들어왔고 결국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압도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러시아는 세계의 동쪽인 한반도를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이 좌절되자, 할 수 없이 서쪽으로 눈을 돌려서 발칸반도와 근동지역을 통해 남하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지역을 놓고 독일·오스트리아와 대립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무렵인 1914년에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세르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에 항거하는 뜻으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하여 살해한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는 즉각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 민족인 러시아는 이에 맞서 세르비아를 지원하며 참전하였다. 그러자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오스트리아의 배후에 있던 독일 역시 전쟁에 참가하였고, 이후 이들과 경쟁 관계에 있던 영국·프랑스 등도 참전하게 되면서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전봉준은 선비이자 농부로서 아무런 벼슬도 힘도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당시의 잘못된 세태에 맞서 오직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잘 되게 해주기 위해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다. 조선의 궁벽한 시골에서 시작된 이 반봉건·반외세 운동은 우리 역사상 최대이자 최초의 민중 항쟁으로서 근·현대를 뒤흔든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상제님의 말씀과 같이 지구촌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여진은 점점 확대되어 전 세계까지 뒤흔들었던 것이다.

 

 

 


01 자세한 내용은 「황극(皇極), 그리고 『정역(正易)』」, 『대순회보』 106호, 2010, 98~121쪽 참조.

02 『전경』, 공사2장 20절.

03 풍국초 지음, 이원길 역, 『중국上下오천년사』, 신원문화사, 2005, 58~61쪽 참조.

04 『전경』, 공사2장 16절.

05 나라에 이로운 여섯 종류의 신하를 육정신(六正臣)이라 하니, 성신(聖臣: 인격이 훌륭한 신하), 양신(良臣: 어진 신하), 충신(忠臣: 충성을 다하는 신하), 지신(智臣: 지혜로운 신하), 정신(貞臣: 지조가 곧고 바른 신하), 직신(直臣: 강직한 신하)을 말한다.(유향 지음, 『설원』 상권, 임동석 옮김, 동문선, 1997, 55~56쪽).

06 「동학농민운동 1」, 『대순회보』 79호, 2008, 18~27쪽; 「동학농민운동 2」, 『대순회보』 80호, 2008, 12~19쪽 참조.

07 『전경』, 공사1장 7절, 교법1장 2절.

08 앞의 책, 교법3장 30절.

09 상세한 내용은 『대순소식』29호(2006)의 「천하의 난(亂)을 동(動)케 한 전봉준」 참조.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