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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쌍계사(雙磎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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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지리산 남쪽에 위치한 쌍계사(雙磎寺)는 도주님께서 1957년(丁酉)에 공부하셨던 곳이다. 쌍계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하동은 화개장터로 유명한 곳이다. 화개장터에서 지리산을 향하는 15리길은 ‘화개꽃길’이라 이름하며, 길을 따라 무성하게 늘어서 있는 제주왕벚꽃나무가 봄이면 벚꽃터널을 만들어 장관을 보여준다. 이 길의 끄트머리에 쌍계교가 있다.

  쌍계교를 건너 주차장에서 옛날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길 좌우에 ‘쌍계(雙磎)’와 ‘석문(石門)’이라 새겨진 큰 바위를 볼 수 있다. 이 글씨들은 신라시대 대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팡이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삼신산 외청교(外淸橋)가 보이고 바로 쌍계사 일주문이 있다.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밀적금강이 좌측에 모셔져 있고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와 나라연금강이 우측에 모셔져 있다. 다시 내청교(內淸橋)를 건너면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있으며, 계단을 오르면 쌍계사 구층석탑과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를 기념하는 팔영루(八詠樓)가 나란히 보인다. 팔영루 옆의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 앞마당이 보이며, 마당 한 가운데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다. 그 뒤로 계단 위에 쌍계사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 대웅전이 거의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단을 이용하여 조금씩 높아져 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대비(大悲) 및 삼법(三法) 두 화상이 당(唐)나라에서 선종(禪宗)의 육조(六祖)인 혜능(慧能)스님의 정상(頂相 : 머리)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 곡설리 갈화처(智異山谷雪里葛花處 : 지리산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대로 범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절을 지어 봉안한데서 비롯된다. 그 뒤 문성왕 2년(840)에 중국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한 진감선사(眞鑑禪師) 혜소(慧昭)가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여 옥천사(玉泉寺)라 하였고, 헌강왕은 ‘진감선사대공령탑’이라 추시(追諡 : 죽은 다음에 시호를 추증함)하여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정강왕(886∼887년)이 이웃 고을에도 옥천사가 있으므로 쌍계사(雙磎寺)라는 이름을 내리며, 이때 대공탑비의 비석을 건립하게 된다.

국보 47호로 지정된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는 고운(孤雲) 최치원이 비명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刻字)하여 만들어진 최치원의 사산비(四山碑) 중 하나이다. 현재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왜적들에 의해 파손되어 지지대의 도움으로 간신히 서 있으며,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최치원의 화려하고 유연한 글씨가 눈에 띤다.

  이 대공탑비를 가운데 두고 정면으로 대웅전이 있으며, 우측에는 설선당(說禪堂)과 명부전(冥府殿)이 나란히 있고, 좌측으로는 요사채인 적묵당(寂    堂)과 나한전(羅漢殿)이 위치한다.

  대웅전 동쪽에는 큰 암석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어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두껍게 양각한 마애불이 있다.

  전경에 “박한경이 이해 八월에 충청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화에 힘을 다하고 있던 중에 급히 도장으로 귀환하라는 도주의 분부를 받고 류철규와 함께 돌아오니 도주께서 지리산 쌍계사(智異山雙磎寺)에 갈 터인데 배종할 것을 분부하시니라. 다음날에 박한경·류철규·한상덕·김재복이 도주를 모시고 절에 이르러 정하신 바에 따라 청학루(靑鶴樓)의 뒷계단 위에 있는 영주각(瀛洲閣)의 정결한 방으로 주지의 안내를 받았도다. 도주께서 이렛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생각하였던 바와는 달리 쉽게 마쳤다고 하시고 「趙鼎山來智異應 一布衣來白日寒」이라고 말씀하셨다.”(교운2-60)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 중 청학루는 혜능조사의 정상을 모신 금당(金堂) 일원 전각들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는 2층 누각이며, 한때 초심자들의 수양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청학루 옆의 건물이 도주님께서 공부하셨던 영주각(瀛洲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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