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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종 : 절후(節候)와 철부지
절후(節候)와 철부지 
 
 
연구위원 김주우
 
 
또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모르고 있나니라. 시속 말에 절후(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 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나이 많은 노인일지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어린아이와 같다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34절)
 
  우리는 지난한 삶의 과정을 때로 ‘천하의 근본’이라 여기는 농사(農事)에 비유하곤 한다. 특히 훌륭한 자식의 성장과 교육을 일러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하였다. 성숙한 인격체를 위한 교육은 적절한 시간과 환경의 조건이 맞아야 하듯이 농사도 제철을 알아야 기대만큼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사에서 크고 작은 일은 명확한 시간인 시의성(時宜性)이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생활의 지혜가 곧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과거 역사에서 개인의 생사와 더불어 국가의 흥망은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천문(天文)을 관찰하고 역법(曆法)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권한이라 여겼다. 또한, 천자국을 자처하는 나라는 천명사상(天命思想)에 근거하여 역법을 반포하고 타국과 군신(君臣)의 사대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오랜 과거부터 ‘때’를 알기 위해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태양이나 달과 같은 천체였다. 천체 중에서 태양이 가장 밝지만, 매일 그 모양과 뜨는 위치나 시각이 확연하게 변하는 것은 달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월력(月曆)인 태음력을 사용하였다. 태음력은 날짜를 세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힘들어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태음력을 보완하기 위해 태양의 움직임을 살펴서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예측한 것이 절기(節氣)인 24절후(節候)이다. 즉 달의 움직임을 통해 날을 알고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계절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후 중국과 조선,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역법체계는 통상적으로 음력이라 불리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01을 사용하였다.
  24절후가 성립된 시기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천문학적 정의에 따르면 2분(춘분, 추분) 2지(하지, 동지)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절후의 모든 명칭이 최초로 기록된 문헌은 기원전 139년에 완성된 『회남자(淮南子)』이다.02 『회남자』의 24절기 체제와 명칭은 중국 최초의 공식 반포력인 태초력(太初曆: 기원전 104년)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이래 모든 역법의 기준점이 되었다.03 우리나라에서는 백제가 남북조시대 송(宋)나라의 원가력(元嘉歷)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볼 때 삼국시대에 절후가 도입된 것으로 유추된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지리, 인사 등에 널리 사용되었다.04 그러나 절후는 중국의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반도의 계절에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의 성군(聖君)인 세종(世宗, 1397-1450)은 명(明)나라의 견제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기준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인 칠정산(七政算)을 개발하게 된다. 그만큼 농업이 국가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역법제정이 절실한 과제였다. 물론 조선의 역법제정은 주권국을 표방하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이처럼 계절을 가늠하는 기준인 24절후는 위도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천문관찰로 이루어낸 위대한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24절후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일기 변화를 매우 잘 반영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절후라는 대자연의 시계에 맞춰 삶을 보다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었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계절의 변화과정인 철[절후]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시되었다. 절후를 기준으로 인체의 생리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규율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철은 개인의 삶을 반추해 내는 역할도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은 어린아이를 거쳐 노인에 이르게 되는 생물학적인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인격체의 내면 성숙도를 말할 때 몰지각한 어린아이를 ‘철부지[철을 모름]’라고 부른다. 만약 어린아이라도 지각 능력을 갖추면 철을 안다고 하고, 노인이라도 철을 알지 못하면 ‘철부지 어린아이’라 여겼다. 따라서 철부지라는 말은 지각이 들지 않은 어린아이를 뜻하나 대체로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은 어린아이인 사람을 지칭한다.
  흔히 철부지는 천진난만함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유아(幼兒) 수준의 자기중심적인 집착으로 피해망상을 비롯한 불안감, 무력감 등 보편적인 심리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문제로 지각이 유아기 상태라면 항상 부모와 같은 마음의 보살핌에 목말라 한다. 그리고 과실(過失)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 전가를 서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철부지는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서 조화(調和)와 상생(相生)을 해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철부지를 개인의 병리로 파악한다. 나아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타다 다마미(片田珠美)는 아이는 물론 어른도 성숙을 거부하는 사회를 ‘철부지 사회’라고 진단한다.05 이러한 철부지 사회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천하개병(天下皆病)”이라는 당시의 사회진단에 일말의 연결고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속(時俗)에 회자한 철부지는 특정한 지역과 시간을 넘어 항상 존재하였던 인간 내면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어지럽고 복잡한 일상에서 계절과 인격의 성숙함을 뜻하는 ‘철들다’라는 말을 애써 외면한 것 같다.
  『전경』에 “인사(人事)는 기회가 있으며 천시(天時)는 때가 있다”06는 말씀이 있다. 만물이 결실을 이룬 후천(後天)의 이상세계는 구성원 모두가 성숙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다가올 미래세계는 철부지보다 개인의 성숙함이 더욱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를 자각하고 철부지의 잔상을 지우는 것은 일상에서 자신의 과부족(過不足)을 살펴 고치는 수도와 무관하지 않다. 내일도 한결같이 태양은 뜨고 계절은 변화를 거듭한다. 이제 대자연의 성숙함을 마주하고 인간 완성을 위한 수도의 담금질을 시작할 때다. 그 담금질 속에 세상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성숙함이 담기길 염원해 본다.
 
 
 

01 태음태양력은 달의 모양 변화 주기를 기준으로 정한 역법으로 윤달을 두어 태양년과 일치시키는 역법을 말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역법은 조선 26대 왕인 고종(高宗, 1852~1919)이 서양의 ‘태양력(太陽曆)’을 1896년에 도입한 뒤로 국내에 정착되었다.
02 김태우 외, 「24절기와 세시 체계의 의미와 상관성에 대한 연구」, 『민속학 연구』 40 (2017), p.196.
03 김일권, 「전통시대 기상예측의 자료와 점후론 구조」 『정신문화연구』 36 (2013), p.233.
04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 고려시대 사료> 『고려사』, 『고려사절요』 참고.
05 가타다 다마미, 『철부지 사회』, 오근영 옮김 (서울: 이마, 2015), p.115 참조.
06 공사 2장 24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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